[기자의 시각] 새 軍 교재에도 백선엽이 없다
국방부가 지난해 우리 고유 영토인 독도를 ‘영토 분쟁 지역’이라고 기술해 전량 회수한 군 정신 전력 교육 기본 교재를 최근 새롭게 펴냈다. 대다수 언론은 ‘독도’에만 집중했지만 교재를 살펴보니 6·25전쟁 관련 기술 문제도 심각했다. 있어야 할 이름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20쪽 분량의 6·25 전사(戰史)에는 백선엽(1920~2020) 장군이 등장하지 않는다. 6·25 당시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려는 북한군을 사투 끝에 막아낸 다부동 전투는 언급하지만 정작 “내가 후퇴하면 너희가 나를 쏴라”라고 말하며 작전을 승리로 이끈 백 장군은 등장하지 않는다. 전쟁 발발 당시 1군단장으로 한강선과 낙동강선에서 지연전을 벌이며 유엔군이 참전할 시간을 번 김홍일(1898~1980) 장군에 대한 설명도, 춘천-홍천 전투에서 북한군 진공을 차단하며 김일성의 전쟁 초기 전략을 좌절시킨 6사단장 김종오(1921~1966) 장군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사단 활약상은 소개하면서 부대 지휘관 이름은 적지 않았다.
국방부 관계자는 “전역(戰域·campaign) 단위 지휘관만 서술한다는 원칙 아래 6·25전쟁의 큰 줄기를 설명하다 보니 개별 지휘관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기준에 따라서 미8군 사령관 워커 장군의 낙동강 전선 사수와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결행은 교재에 담겼다고 한다. 우리 군 교재에 맥아더·워커는 있지만 백선엽은 없다. 우리 군 영웅들은 오히려 푸대접을 받고 있다.
교재에는 우리 군 관련 지휘관 이름도 사진도 실려있지 않다. 그렇지만 미국 출신 종군기자 마거릿 히긴스는 사진과 함께 ‘유비무환’을 강조하는 인용구로 등장한다. 생전 백선엽 장군도 유비무환을 수없이 강조했다. 참전 군인 육성보다도 외국인 기자를 택한 까닭은 알기 어렵다. 백 장군 등 우리 국군 영웅을 조명하는 설명이 들어가야 할 자리로 보인다.
6·25 때 활약한 무수한 국군 장병 중 백선엽 장군은 특히 우리 군 최초 4성 장군이다. 역대 주한 미군 사령관조차도 입을 모아 ‘한국군의 아버지’라 칭송했다. 하지만 그는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교재에도, 2018년 문재인 정부 시절 교재에도, 2023년 윤석열 정부 교재 2권(개정 전·후)에도 없다. 국방부는 그동안 별도 참고 자료를 작성해 백 장군의 업적을 교육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50만명에 이르는 장병을 교육하려고 국방부가 편찬한 ‘바이블’인 정신 전력 교재에서는 언급조차 없다.
지난해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이 벌어졌을 당시 백 장군 흉상을 그 자리에 건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했고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한 백 장군을 육사 생도들이 본받아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정신 전력 ‘기본’ 교재에 마땅한 백 장군의 자리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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