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의 Energy 지정학] 에너지 자급률 13% 일본… 태양광 승부수 성공할까
일본이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양국을 오가는 관광객은 2023년 907만명에 이르면서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산업계에서도 다시 일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양국 기업 간 투자와 협력 방안을 위한 논의가 과거에 비해 활발해지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많은 기업과 조직에 있던 ‘일본통’들이 이제는 거의 사라져서 한·일 양측의 본격적인 협력은 아직 서먹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일본은 에너지 빈국이라는 관점에서 여러모로 우리와 비슷한 나라다. 2021년 기준으로 일본의 에너지 자급률은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36위·18%)보다 낮은 37위(13.3%)이다. 2010년 20.2%에 이르던 자급률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발전소의 가동 중단으로 2014년에는 6.3%까지 내려갔다. 이후 태양광을 중심으로 한 재생에너지 보급을 늘리고, 단계적으로 원자력발전소를 재가동하면서 점차 에너지 자급률은 상승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 과거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화석연료 의존도는 83.5%까지 높아졌다.
일본으로서는 높아진 화석 연료 의존도 자체도 문제지만 더 우려되는 점은 중동 지역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아졌다는 점이다. 세계 4위의 원유 수입국인 일본이 수입하는 원유의 95.1%는 중동 지역에서 들어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2023년 71.9%인 것과 비교해보면 큰 차이다. 1973년 제1차 오일쇼크 당시 전체 원유의 77%를 중동에 의존하던 일본은 1987년대 중동산 의존도를 68%대까지 낮췄지만 이후 다시 높아졌다. 일본의 높은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과거 주요 원유 공급원이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의 생산량 감소에 따른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산 원유 도입 감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섬나라 특성상 해상을 통해 운송되는 화석연료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일본은 중국의 해군력 확대에 경계하고 있다. 중국은 압도적인 조선 능력을 통한 해군력 증강으로 서태평양에서 미국과 대등한 전력을 구축하고 있다. 이런 중국이 향후 일본으로 향하는 해상 운송로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경우 일본의 안보는 결정적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수송선에 대한 미 해군 잠수함의 공격으로 인해 해외로부터의 물자 도입이 차단돼 극한의 어려움을 겪었던 일본으로서는 불안한 해상 운송로는 국가적 위협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일본으로서는 해군력 강화도 필요하지만 해외로부터 수입되는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다. 해외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일본은 대규모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원자력발전소 가동이 멈췄다. 이 때문에 LNG 화력발전 비중이 대폭 확대되면서 오히려 해외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대규모 태양광발전 투자에 나섰다. 2022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 설치된 태양광발전 시설이 총 1053GW인데 이 가운데 약 7.4%에 해당하는 78GW가 일본에 있다. 일본이 중국(393GW·37.3%), 미국(113GW·10.7%)에 이어 세계 3위의 태양광발전 능력을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에서 태양광의 급속한 확대는 2012년부터 실시된 고정가격매입제도(FIT)에 따른 것이다. FIT는 월 400kW의 전력을 사용하는 평균적인 일본 가구가 매월 560엔(약 5240원)을 부담해 재생에너지 사업자에게 사전에 정해진 금액을 지불하는 형태로 시행되고 있다. FIT를 통해 재생에너지 보급은 2022년까지 연평균 15%씩 증가했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소의 재가동이 시작되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정오를 전후한 시기에 태양광 부문에서 과도한 전력이 생산되면서 전력망에 무리가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태양광발전을 일시적으로 멈추도록 하는 출력 제어를 실시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2023년 약 39만 가구의 연간 전력 소비량에 해당하는 18억kWh의 잉여 전력이 버려졌다. 올해는 잉여 전력이 24.2억kWh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남는 전기를 2차 전지를 활용한 전력저장장치(ESS)에 저장할 수 있다면 잉여 전력 문제는 최소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재생에너지 연계 ESS 보급률은 재생에너지 생산량의 2%만을 저장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비용을 들여 ESS를 설치하더라도 얻는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충전 시설과 재생에너지를 함께 설치하는 사업자에 대해서는 출력 제어 대상에서 제외하는 제도를 시행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또한 2024년 이후 신설되는 화력발전소는 저출력 운전을 의무화함으로서 원전 재가동에 따라 신규 투자를 망설이는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도입했다.
일본 정부는 이런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 2030년 이전까지 재생에너지 생산량의 25%를 저장하는 ESS를 설치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재생에너지에서 생산된 전력을 ESS에 저장했다가 공급할 경우 높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를 실시했다. 하지만 과도한 ESS 사용에 따라 화재가 빈발하는 등의 부작용으로 인해 2021년 1월부터는 이 제도를 폐지했고, 이후 ESS 보급은 대폭 축소됐다. 과연 일본은 우리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진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일본을 과거에 머무르는 국가로 여기고 배울 것이 없다고 여기게 됐다. 하지만 에너지 빈국이라는 공동의 문제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시도와 경험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한·일 양국이 대등한 관계에서 에너지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양국 공동의 미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길일 것이다.
日 “재생 에너지도 전력시장서 경쟁하라” 마냥 수익을 보장해 주던 시절은 끝났다
2000년대 초반 일본의 재생에너지는 가격 경쟁력이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재생에너지를 장기간에 걸쳐 일정한 가격으로 매입해주는 FIT(Feed in Tariff)이다. FIT를 통해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안정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면서 민간 투자가 증가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도 늘었다.
문제는 고정 가격으로 재생에너지를 사줄 재원을 어디서 확보할 것인가에 있다. 일본의 경우 FIT에 필요한 비용을 전기 요금에 ‘재생에너지 발전 촉진 부과금’으로 가산해 확보한 다음 사업자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문제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증가할수록 부과금도 증가하고, 결국은 전력 요금 인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이었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2017년부터 일정 용량 이상의 재생에너지 시설에 대해 입찰제를 실시하였다. kWh당 상한 가격을 설정하고 이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응찰한 순서대로 생산 전력을 매입해주는 개념이다. 재생에너지 사업자들로서는 원가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여기에 더해 2022년부터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전력 가격에 프리미엄을 더해주는 FIP(Feed in Premium)로 변화했다. FIP 도입에 따라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도 전력 판매 시장에 참여해 경쟁을 통해 전력을 판매하게 되었다. 재생에너지에서 생산된 전력이 판매될 경우에 한해 사전에 설정한 프리미엄을 추가로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일본의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은 효율화 및 비용 절감을 통해 재생에너지 가격을 낮춰야만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기술 발전과 제도 변화가 재생에너지를 경쟁의 틀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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