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유튜브는 사이버 레커를 버릴 수 없다
‘백만 유튜버 죽이기’는 유튜브계의 황색 언론인인 ‘사이버 레커’가 주인공인 소설이다. 주인공은 98만 구독자를 가진 먹방 유튜버를 음해하려 거짓 선동을 한다. 곧 사이버 레커 중 한 명이 이 거짓 선동을 바탕으로 가짜 뉴스를 유포하면서 구독자와 조회 수를 쏠쏠히 챙겨간다. 이 상황을 지켜본 주인공 또한 사이버 레커가 되어 사이버 불링(bullying)에 가담하면서 본격 사건이 시작된다. 장르는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지만 극의 구성보단 철저한 현실 고증이 더 눈에 띈 책이었다. 단숨에 다 읽고 보니 문득 최근에 일어난 두 사건이 떠올랐다.
첫째는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의 재점화. 한 사이버 레커의 소행으로 시작된 사적제재였다. 둘째는 구독자 1060만 유튜버인 쯔양이 협박을 당했다는 폭로. 이 역시 사이버 레커 집단이 촉발한 사태였다.
나는 사건 자체보단 사이버 레커들의 먹고사는 방식에 더 관심이 갔다. 이들의 공격은 조직을 향하지 않는다. 설령 단체를 저격한다 해도 그 대상은 힘없는 소수자 집단이다. 철저히 개인만 공략하는 이유는 애초에 공익 제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차라리 투자자 심리에 가깝다. 간편하며 위험이 적고 돈은 많이 벌 수 있는 틈새만 노린다.
정부나 기업을 건드리려면 사실 기반 자료를 철저히 검토하는 작업이 필수. 시간도 많이 들뿐더러 전문성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잘못 건드렸다간 인생이 풍비박산날 각오도 해야 한다. 사회적 의의야 있겠지만 들인 품에 비해 ‘나한테 돌아오는 몫’ 자체는 매우 적다. 반면 개인을 향한 공격은 쉽고 보상도 확실하다. 유명인이 나쁜 놈이라는 주장과 빈약한 근거만 있으면 조회 수와 후원금은 보장이다. 증거 정황이야 끼워 맞추면 그만이고, 틀린다고 한들 죗값은 모욕죄나 명예훼손 정도로 가볍게 끝난다.
여기에 유튜브라는 플랫폼은 사이버 레커의 든든한 주유소가 되어준다. 구독자들은 자기가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콘텐츠 생산자를 찾아온 손님이다. 부창부수, 익명 뒤에 숨어서 남을 욕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유튜버는, 정확히 똑같은 성향의 구독자들을 상대로 장사하게 되어 있다. 구독자들은 이슈를 선점했을 땐 정당한 행위를 했노라며 한껏 추켜세운다. 이 뜨거운 반응에 사이버 레커는 자기 행동이 옳다고 정당화하기 쉽다.
하지만 자기 구독자들이 이슈 주도권을 빼앗기면 미련 없이 등 돌려 욕하고 떠나버릴 사람임을 안다. 그렇기에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자기 행동을 성찰할 기회는 점차 줄어드는 반면, 기만은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은, 자의나 타의로 채널을 닫지 않는 한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최근 손석희 앵커의 ‘질문들’이란 프로그램에서 유명 작가와 중앙 일간지 기자가 토론했다. 방송이 끝난 후 시청자들은 뜨거운 반응을 쏟아냈다. 대부분 기성 언론 비판이었다. 기성 언론이 신뢰를 잃은 건 자업자득이라는 논조가 많았다. 나 또한 이러한 지적이 꽤 타당하다고 생각하며 언론 개혁의 필요성에 동의한다. 부동의 산재 사망 1위인 건설업에 대한 문제 제기보단 아파트 값 기사 쓰기 바쁜 언론. 한국 경제 체계를 교란하는 재벌을 향한 비판은 없고 낯간지러울 수준의 찬양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을 볼 때마다 나도 열불 뻗친다.
하지만 사이버 레커들의 행태를 관찰하다 보면 기성 언론이 유튜브보다 확실하게 나은 부분 하나가 돋보인다. 바로 상대적으로 훨씬 안전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 전문 교육을 받은 기자가 투입되고, 데스크라는 거름망이 있으며, 오보를 내면 징계와 처벌이 뒤따른다. 유튜브엔 이러한 시스템이 없다. 정보의 신뢰성을 유튜버 개인, 혹은 팀의 역량과 양심에 맡겨야 한다.
심지어 처벌과 감시를 해야 할 유튜브는 유튜버와 손익을 공유한다. 구독자 수가 많은 유튜버를 쳐내면 유튜브 또한 손해 본다. 이 시스템 안에선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기 매우 어렵다. 유튜브는 구조상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기에 기성 언론의 완벽한 대체재가 될 수 없다. 이는 기성 언론이 무조건 우월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유튜브가 가진 온갖 장점이 있음에도 이런 취약점도 가졌으므로 사안에 따라 취사 선택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얘기다.
온갖 확증편향이 난무하는 요즘, 두 미디어를 다 활용할 수 있다면 세상 보는 눈도 훨씬 넓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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