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혁의 극적인 순간] 칠순 앞둔 어머니의 ‘인생 사진’을 찾았더니
며칠 후면 어머니의 칠순이다. 조선일보 지면에 어머니의 환갑 기념 결혼식에 대해 쓴 것이 어제 같은데, 어느덧 칠순을 맞았다. 나는 어머니의 결혼과 칠순을 연이어서 볼 수 있는 놀라운 아들이 되어버렸다. 부랴부랴 칠순 준비를 해나갔다. 장소를 알아보고, 사회자를 섭외하고,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사회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머니의 인생을 돌아보는 사진 모음을 상영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나는 마침 집에 앨범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십 년이 지나 드디어 그 앨범이 빛을 발할 기회가 온 것이다.
세 권의 앨범을 차근차근 넘기면서 어머니의 사진을 찾아나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점점 황당해졌다. 어머니는 혼자 찍은 사진이 거의 없었다. 모든 사진에 내가 있었다. 내가 아기였을 때는 나를 업고 찍었고, 내가 초등학생때는 나를 안고 찍었고, 내가 청소년이 될 무렵에는 내 팔짱을 끼고 찍었다. 사진의 중심에 모두 내가 있었고, 어머니는 주변에 흐린 상태로 찍혀 있었다. 이대로 가면 칠순 기념 영상의 주인공은 어머니가 아니라 내가 된다. 식은땀이 났다. 앨범 세 권을 샅샅이 뒤졌지만 어머니의 독사진을 찾는 데 실패했다.
“우리 엄마는 왜 혼자 사진 한번 안 찍은 거야?”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앨범을 다시 처음부터 넘겨나갔다. 나랑 함께 찍은 사진 중에서 그나마 어머니가 잘 나온 사진을 고르려고 했다. 이번에는 내 얼굴이 점점 빨개졌다. 사진에 담겨 있는 내 얼굴 때문이었다. 아기였던 시절의 나는 어머니와 사진을 찍으며 밝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초등학생을 지나 청소년으로 향하며 내 얼굴은 점점 무표정해졌다. 청소년의 나는 보란 듯이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어머니는 그 옆에서 어색하게 팔짱을 끼며 웃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사춘기 비슷한 것이 왔던 것 같다. 친구들과는 신나게 스티커 사진을 찍고 다녔지만, 어머니와의 사진은 입학식이나 졸업식 말고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 그 당시에는 사진을 함께 찍는다는 것을 그리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언제든 찍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머니와 찍은 마지막 사진은 중학교 졸업식이었다. 그때의 표정이 가장 어두웠다. 아마도 얼른 찍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바보 같으니! 중학교 졸업식이 끝나면 너는 어머니와 한동안 떨어져 살게 된다고! 거의 십 년이 지나 어른이 되어서야 만난다고! 그러니까 다시 사진을 찍어! 활짝 웃으면서!” 중학생의 나를 만나면 저렇게 호통치며 꿀밤이라도 먹이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나는 울컥하는 마음으로 앨범을 다시 처음부터 넘겨나갔다. 사진 속 어머니는 너무나 젊고 아름다웠다. 얼마든지 사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스물여섯의 눈부시게 빛나던, 온갖 가능성으로 충만했던 한 사람이, 자신의 아이를 위해 모든 주인공을 마다하고 한 발짝 옆으로 비켜 섰다. 그렇게 사십여 년이 흘러 그 사람은 뒤늦은 주인공이 되었다. 그런데 그 주인공을 위한 제대로 된 사진 한 장이 없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한동안 말없이 어머니의 흐린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어머니가 자주 가는 절 앞에서 V포즈로 셀카를 보내왔다.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에 갈 때마다 나에게 셀카를 보내왔다. 절 앞에서, 꽃밭에서, 바닷가에서, 내가 가끔 보여주는 공연의 극장 로비에서. 가끔 새로운 아버지와 둘이 찍은 사진을 보내기도 한다. 그 사진들은 둘 다 포커스가 잘 맞춰져 있다. 두 사람 모두 사진의 주인공이다. 나는 그제야 긴 숨을 내쉬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어머니는 자신이 주인공인 삶을 천천히 살아나가고 있는 것 같다. 그나저나 어머니의 칠순용 사진마저 어머니가 스스로 보낸 셀카로 구하다니, 나는 아직 멀었다. 칠순 당일에는 어머니와 보란 듯이 사진을 많이 찍어야겠다. 십 년 내내 꼬박꼬박 사진을 찍어서, 팔순을 야심 차게 십 년간 준비해야겠다. 십 년 동안 팔순을 준비하려면, 나도 어머니도, 계속 건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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