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17] 유유히 마음 가는 대로
대자로 누워
잠이 드는 시원함
쓸쓸함이여
だいじ ね すず さび
大の字に寝て涼しさよ淋しさよ
헉헉, 더워도 너무 덥다. 밖에 나갔다가는 “여름아, 살려줘!” 소리를 지르며 집으로 달려드는 요즘이다. 들어오면 제일 먼저 냉장고를 열어 꿀꺽꿀꺽 냉수를 마신 뒤, 땀에 젖은 옷가지를 벗어던지고 찬물로 샤워한 다음, 살에 닿는 면적이 최소인 옷을 입고 까끌까끌한 이불 위에 대자로 드러눕는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풍기가 부드러운 바람을 내뿜으며 차가워진 온몸을 훑어갈 때면 그제야 찾아드는 평화. 아아, 살 것 같네.
한여름, 대자로 누워 잠이 드는 시원함에는 억만금을 준다 해도 바꾸고 싶지 않은 만족감, 여유, 무엇보다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자연스러움이 있다. 한자 대(大) 자의 모양 그대로 사람(人)이 두 팔과 두 다리를 떡하니 벌리고 누워 있을 때, 인간의 몸 어디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 계절이 가혹하니 몸에게라도 자유를 주고 싶다. 억지로 애쓰지 않고 인위적인 힘을 내려놓은 채 유유히, 마음 가는 대로. 긴장할 것이 무엇이며, 겁낼 것이 무엇인가. 맑고 고요하게, 이대로, 이대로. 그런데 잇사(一茶, 1763~1828)여, 쓸쓸함이라니?
잇사가 이 시를 쓴 것은 쉰한 살 때로 가족이라고는 제 한 몸뿐이었다. 친어머니는 어릴 때 돌아가시고 새어머니로부터 극심한 구박을 받으며 살다가 고향 시나노(오늘날 나가노)를 떠나 멀리 에도로 더부살이하러 간다. 열다섯 살 때 일이다. 잇사가 문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건 스물다섯 살 무렵부터인데, 그 십 년 동안 갖가지 고생을 겪었다고 훗날 고백했다. 이후 서른아홉 살 되던 해 시골의 유지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재산의 절반을 잇사에게 주겠다는 유언을 남겼지만, 새어머니와 이복형제가 이를 거부하면서 13년 동안이나 유산 상속 싸움을 벌이게 된다.
마침내 아버지가 남긴 집이 잇사의 소유로 돌아오면서, 평생을 집 없이 떠돌던 중년의 하이쿠 시인은 무덥던 어느 한여름날, 오직 자기만의 집 다다미방 위에서, 홀로 대자로 드러누워, 이 시를 읊었다. 옆에 아무도 없어 쓸쓸하겠지만, 쓸쓸함은 또 쓸쓸한 대로 쓸모가 있는 법. 시원함과 쓸쓸함이 리듬감 있게 중첩되는 이 시가 슬프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물려받은 집이 생긴 잇사는 더 이상 홀로 쓸쓸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이듬해 쉰두 살에 늦깎이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예나 지금이나 집 없이 결혼하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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