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형준]정부는 기업에 ‘믿음’을 주고 있나

박형준 산업1부장 2024. 8. 7.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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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기대치가 높지 않아서 그런지 파리 올림픽을 보는 재미가 무척 쏠쏠하다.

특히 금메달 5개를 모두 석권한 양궁, 그중에서도 여자 단체전은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했다.

5월 23일 발표된 '반도체 생태계 종합지원 방안'은 정부 차원에서 기업에 믿음을 주려 했던 것 같다.

정부가 든든하게 받쳐주겠다는 믿음을 줘야 기업도 글로벌 경쟁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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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산업1부장

애초 기대치가 높지 않아서 그런지 파리 올림픽을 보는 재미가 무척 쏠쏠하다. 특히 금메달 5개를 모두 석권한 양궁, 그중에서도 여자 단체전은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한국 국가대표 세 명 모두 올림픽에 처음 출전했고 선배들이 올림픽에서 9연속 금메달을 땄었기에 부담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컸을 것이다. 중국과의 결승전은 세트 스코어 2 대 2에서 각 선수들이 마지막 한 발씩 쏘는 슛오프까지 이어졌다. 결과는 10연속 금메달 획득.

“동료를 믿고 활 쏴야 금메달 가능”

다음 날 국내외 언론들은 한국 양궁이 왜 강한지 분석했다. 개인적으로 장영술 대한양궁협회 부회장의 분석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실력은 한국이 어느 나라보다 앞선다. 하지만 세 명 모두 항상 잘 쏠 순 없다. 누구 한 명이 실수했을 때 다른 선수가 받쳐줘야 한다. 그렇게 서로를 믿고 쏴야 금메달을 딸 수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천억, 심지어 조 단위 투자를 결정할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그때 믿는 구석이 있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한 투자를 결정할 수 있다. 5월 23일 발표된 ‘반도체 생태계 종합지원 방안’은 정부 차원에서 기업에 믿음을 주려 했던 것 같다. 정부는 반도체 금융지원, 연구개발(R&D) 및 인력 양성 등에 26조 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인센티브로서 손색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기업도 그렇게 느낄까. 지난달 19일 대한상의 제주포럼 기자간담회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처럼 말했다. “반도체 공장 하나를 지을 때 약 20조 원이 든다. 거기에 설비 투자도 해야 한다. (정부의) 세제 혜택만으로 감당이 안 된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번 돈보다 더 투자를 해야 하는 게 저희의 문제다.”

물론 기업이 정부 지원책에 의존해선 안 된다. 하지만 해외 주요국이 앞다퉈 반도체 기업을 지원해주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 정부 역시 적어도 경쟁국 수준만큼 지원해줘야 기업들이 제대로 글로벌 경쟁에 나설 수 있다. 본보는 3월 한미일 3개국의 반도체 관련 법안을 바탕으로 5년 동안 총 5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새로 지을 때 정부 지원책을 뽑아봤다. 미국에선 세액공제와 보조금을 합쳐 최대 1조7500억 원, 일본에선 최대 2조5000억 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지만 한국은 7250억 원의 세액공제에 그쳤다.

그나마 반도체 산업은 형편이 낫다. 정부보다 정치권에서 오히려 더 강력한 지원책을 발표할 정도로 반도체의 중요성에 대해 보편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반면 배터리, 철강, 석유화학 등 기업들은 위기 상황에서 거의 홀로 버텨내고 있다. 본보가 최근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1조 원을 투자해 배터리 생산공장을 지을 때 기업이 5년간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살펴봤더니 미국에선 약 3조 원을 받았지만, 한국에선 약 1200억 원 받는 데 그쳤다.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을 보여줘야

독자가 배터리 회사 사장이라면 어디에 공장을 짓겠는가. 국내에서 생산한 배터리 물량은 글로벌 생산량의 1%에 그친다는 점이 이미 답을 말해주는 것 같다. 해외에 공장을 지으면 양질의 일자리, 첨단 생산기반, 연구개발(R&D) 핵심 역량 등도 해외로 빠져나간다. 정부가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정부가 든든하게 받쳐주겠다는 믿음을 줘야 기업도 글로벌 경쟁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다. 그 믿음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손색없다”는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을 보여 줄 때 생긴다.

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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