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혼란 속 탄생한 왕의 초상화[김민의 영감 한 스푼]

김민 문화부 기자 2024. 8. 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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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카를로스 4세 가족’

김민 문화부 기자
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에서 프랑스의 마지막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목이 잘린 채 등장해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를 콩코르드 광장 단두대에서 처형한 프랑스 혁명. 200여 년 전인 1789년 일어난 일임에도 그 반응엔 여전히 온도 차가 남아 있는 급진적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왕과 왕비가 멀쩡히 살아 있었던 18세기 다른 국가에선 어땠을까요? 화가 난 시민들이 왕을 죽였다는 흉흉한 소식이 유럽으로 퍼지며 불안과 혼란을 조성했던 1800년, 스페인의 궁정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는 왕과 왕비 가족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이 그림에 대해 프라도 미술관 큐레이터 구드룬 마우레르와 나눈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풍자로 오해받은 그림

혁명의 그림자가 유럽에 드리운 가운데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린 스페인 왕 ‘카를로스 4세 가족’ (1800∼1801년). 가운데 왕비가 있고, 오른쪽 검은 옷을 입은 인물이 카를로스 4세, 왼쪽 푸른 옷의 남자가 그의 아들이다. 왼쪽 뒤로 캔버스를 앞에 둔 고야가 보인다. 프라도 미술관 제공
“로또 당첨된 졸부의 초상 같다.”

고야가 그린 ‘카를로스 4세 가족’에 관해 가장 유명한 한 줄 평입니다. 프랑스 시인 테오필 고티에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이 평을 인용했는데, 대부분이 고티에처럼 19세기 프랑스의 문화 예술인입니다. 마우레르는 이런 평가가 “지극히 프랑스 관점의 단편적 감상”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궁정 화가가 될 무렵 그린 고야의 자화상. 프랑스 고야 미술관 소장품.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때 고야는 그가 젊은 시절부터 꿈꿨던 직책인 최고 궁정 화가가 됩니다. 이 직책을 받은 것은 벨라스케스 이후로 고야가 처음이었죠. 그만큼 최고의 실력을 갖췄음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고야가 궁정 화가가 된 뒤 ‘고용주’인 왕과 그의 가족을 그린 첫 그림입니다. 그들을 풍자할 이유가 희박하죠.

또 연구에 따르면 초상화 속 가운데 서 있는 왕비는 실제로는 자녀 20여 명을 출산하며 건강이 나빠져 치아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림에서는 건강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죠. 그림을 직접 보면 첫인상에 ‘풍자는 아니다’라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인물들이 실제 크기로 그려진 데다 기울어진 태양 빛에 반사되는 각종 장신구가 반짝이도록 묘사된, 크고 아름다운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조화와 그렇지 않은 배경

그러나 단순히 왕족을 아름답게 그렸다고 이 작품이 프라도 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으로 남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우레르는 “가족의 중심에 선 왕비가 구심점으로서 왕족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면서도 “배경의 그림들은 왕비가 이루는 중심점과 한 박자 어긋나게 배치되어 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배경이 어긋나며 묘하게 불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은, 이 그림을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비교하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림의 왼쪽 캔버스 뒤에 서 있는 인물이 고야인데, 이는 ‘시녀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시녀들’에서는 마르가리타 공주를 가운데에 두고 다른 인물부터 뒷배경까지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안정적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안정적인 ‘시녀들’의 구도를 고야는 과감히 버렸습니다. ‘카를로스 4세’에서는 인물 그룹의 구도는 안정적이지만 엇박자를 내는 배경의 그림, 햇빛이 만들어낸 그림자와 캔버스의 기울어진 선이 무언가 아스라이 사라질 것 같은, 황혼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마우레르는 더 나아가 ‘가족들이 서 있는 공간의 옆 벽이 없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림 속 왕족들은 커다란 그림 두 점이 있는 벽 앞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이러한 모든 표현이 “왕족은 완벽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환경은 그렇지 않음을 묘사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영원한 군주 아닌 ‘지금’을 그리다

안정적이었던 왕족을 둘러싼 불안한 환경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프랑스 혁명이었습니다. 마우레르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프랑스 왕을 시민들이 죽였다는 소식은 허리케인과도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벨라스케스의 시대처럼 왕을 그릴 수는 없었죠. 왕과 왕비도 영원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 의해 폐위될 수 있는 존재임을 세계가 깨달았으니까요. 고야 역시 이 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고야의 예술 세계를 보면 궁정 화가로서 공식적인 시각은 지키되 언제나 그 이면에 있는 다른 의미도 마음속 깊은 곳에 지켜 왔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공식 초상화는 의뢰인의 마음에 쏙 들도록 그리면서, 개인적으로는 프랑스 혁명을 지지했던 스페인의 지식인, 계몽주의자들과도 가까이 지냈고 함께 책을 읽기도 했죠.

그 결과 왕족이 바라보는 세상과 도도한 시대의 흐름,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표현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마우레르는 이것을 “영원한 군주가 아닌 ‘지금’을 그린 것, 그림 속에 근대적 개념인 ‘시간’을 도입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림 속 얼굴을 돌린 여자는 왕의 아들과 결혼하기로 예정된 마리아 안토니아입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릴 시점엔 아직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고개를 돌린 모습으로 표현했죠. 어딘지 알 수 없는 그림 속 배경은 왕의 가족이 몇 시간 뒤면 어디 있을지 모른다는 느낌을 증폭시킵니다. 즉, 고야는 이 그림이 지금에만 유효하다는 일시적인 감정을 시각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완곡하지만 더 복잡하고 단단하게 남긴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 유럽의 분위기. 아름다운 환상 같은 왕족의 초상화에서 한번 감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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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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