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마음치유] 애도의 시간에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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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주어진 휴가를 다 쓰지도 못하고 장례식만 끝내고 바로 출근했어요. 중요한 사업 계약 때문에 바이어를 만나야 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뒤에 바로 일상으로 돌아와야만 했던 이들은 "꾸역꾸역 밥을 먹고, 아무렇지 않게 일하고 있는 나 자신이 싫어요.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져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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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삶을 집어삼키도록 내버려둬선 안 돼
“장마철만 되면 우울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내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중년 남자는 여름만 되면 우울증이 도졌다. 몇 년이 흘렀는데도 슬픔은 잦아들지 않았다. 자녀를 위해서라도 마음 단단히 먹고 일에 전념하다가도 후두득 후두득 비가 떨어지면 그의 가슴에선 또다시 눈물이 맺혔다.
아직도 남편의 부재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중년 여성은 밤이 되면 무섭다고 했다. 혼자 사는 인생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그녀는 반년 전 어느 날 밤 남편이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 “오늘 밤은 또 어떻게 넘겨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며 불안에 빠졌다.
“괜찮아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석 달 전 고등학생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씩씩해지려고 애쓰는 중이다. 사춘기 딸이 조금이라도 덜 상처 받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게 지금 그녀에게는 가장 중요한 소명이다. 아들 생각만 하면 눈물이 쏟아지지만 가족 앞에서는 어떻게든 참는다. 하지만 남편이 출근하고 딸도 등교하고 나면 와르르 무너지는 가슴을 도저히 추스를 수가 없다고 했다.
삼 년을 진료한 사십 대 사장님은 요즘 들어 근력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무게를 치면 슬픈 생각이 사라지고 머리도 맑아져요.” 오래 키웠던 반려견이 죽은 뒤에 발병한 우울증으로 치료받고 있다. 강아지가 끙끙거리며 고통스러워 하던 이미지가 자꾸 떠올랐고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 치료해주지 못했다며 자신을 탓했다. 그런데 격렬하게 몸을 쓰면서 자책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상담 중에 이런 이야기도 가끔 듣는다. “주어진 휴가를 다 쓰지도 못하고 장례식만 끝내고 바로 출근했어요. 중요한 사업 계약 때문에 바이어를 만나야 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뒤에 바로 일상으로 돌아와야만 했던 이들은 “꾸역꾸역 밥을 먹고, 아무렇지 않게 일하고 있는 나 자신이 싫어요.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져요”라고 말했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난 뒤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려면 시간이 충분히 흘러야 한다. 슬픔을 시간이 희석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애도로 인한 우울은 대개 6개월 정도 지속한다고 의학 교과서에 쓰여 있지만 실제는 완전히 다르다. 1년, 2년 아니 5년, 10년이 지나도 슬픔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억지로 슬픔을 떼어낼 순 없지만 그렇다고 슬픔이 삶을 집어삼키도록 내버려둬서도 안 된다. 그린란드의 전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이 저승에 갔더니 반쯤 썩은 채 누워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놀라서 왜 이렇게 된 것인지 물었다. “유족으로부터 너무 심한 애도를 받으면 망자는 그들이 더 이상 울지 않을 때까지 이렇게 누워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이승으로 돌아가면 부디 그들에게 말해주십시오. 죽은 이를 애도하되 너무 정신없이 울지는 말아 달라고.”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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