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온열질환 사망자 17명…얼마나 더 피해 발생해야 ‘쉴 권리’ 지켜지나
이처럼 계속되는 무더위에 고용노동부는 ‘폭염 대비 노동자 건강보호 대책’을 마련했으나 야외 근로자들은 대책이 현장에서 겉돌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책에 따르면 체감온도가 31도를 넘으면 각 사업장은 물·그늘·휴식을 제공해야 하고, 33도(주의단계)가 넘으면 매시간 10분씩 휴식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
특히 이날처럼 35도(경고단계)가 넘을 경우 매시간 15분씩 휴식에 무더위 시간대(14∼17시)에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대책이 강제성 없는 권고에 그치는 탓에 실효성은 없다.
박세중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노동안전 보건국장은 “‘더워서 일을 못 하겠다’고 했을 때 사업주가 ‘근태가 불량하다’는 다른 핑계를 대서 내일부터 못 나오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휴식을 요구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제52조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고, 이를 요구한 근로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해선 안 된다고 나와 있으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소 사업장일수록 상황은 더 열악하다. 대형 건설사가 시공하는 아파트 공사 현장 등은 중대재해를 우려해 그나마 관리가 되는 편이지만, 오피스텔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공사 현장에서는 폭염 대비가 주먹구구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전해진다.
한 근로자는 휴게실과 휴게시간 여부를 묻는 기자 질문에 “큰 공사장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이처럼 근로자의 ‘쉴 권리’가 보장되지 않다 보니 온열질환에 따른 우려도 쏟아진다.
올해 5월 20일부터 8월 5일까지 ‘온열질환 사망자’는 이날까지 17명으로 집계됐는데, 올해 온열질환자는 1810명으로 2018년(3329명) 다음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은 가장 더운 여름으로 꼽힌다.
온열질환은 뜨거운 환경에 장시간 노출될 때 두통, 어지러움, 의식 저하 등이 나타나는 급성 질환이다. 열사병, 열탈진이 대표적으로 방치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노인들은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져 특히 온열질환에 취약하다. 온열질환을 막으려면 한낮에 야외 활동을 자제하고 1시간마다 물을 마시는 게 좋다.
올해 온열질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연령대는 65세 이상(32.5%)이다. 발생 장소는 실외 작업장(28.8%), 논밭(16%), 운동장(5.7%) 등이 많았다. 즉 더운 날씨에 바깥에서 작업하다 온열질환에 걸리는 경우가 많은 셈이다.
노동계에서 실효성 있는 작업 중지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여야 합쳐 작업 중지권을 강화하는 취지의 법안이 총 5건 발의됐다. 다만 법안이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영향분석’ 보고서에서 작업 중지권이 강화할 때 영향을 분석했다. 산안법 제52조의2(기후 여건에 따른 작업 중지)를 신설할 때를 가정한 분석이다. 보고서는 작업 중지권을 강화하면, 장기적으로 노동생산성 감소를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폭염특보와 같은 재난경보 기준으로 획일적인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면, 산업 현장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폭염과 한파에 따른 작업 중지가 이뤄진다고 가정하면 연간 20일의 작업 중지일이 발생할 것”이라며 “생산량 감소, 납기일 지연, 수출 경쟁력 저하 등 부작용이 심각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고용부도 경영계가 언급한 “이미 관련 규정이 있다”는 점을 들어 법 개정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법률 개정의 실익, 작업 중지 명령의 요건 등을 고려해 법 개정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폭염·폭우·태풍 특별대응 기간을 운영하는 등 폭염에 취약한 현장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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