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오늘]‘한국의 나오시마’가 나오려면
둘레 16㎞에 불과한 일본 세토(瀨戶) 내해의 작은 섬 ‘나오시마’(直島)는 1990년까지만 해도 폐기물로 뒤덮인 쓰레기 섬이었다. 구리제련소가 배출하는 아황산가스를 피해 주민들조차 떠나가던 황무지였다. 그런 그곳에 1987년부터 ‘예술’이라는 옷을 입혔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세계 최초의 지하미술관인 지추(地中)미술관을 비롯해 독특하고도 자연친화적인 미술관을 섬 곳곳에 세웠고 클로드 모네, 이우환, 쿠사마 야요이, 제임스 터렐, 카렐 아펠, 데이비드 호크니와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앉혔다. 모두 장소 특정적인 건축물과 미술이었다.
이후 나오시마는 전 세계에서 매해 수십만명이 방문하는 ‘예술의 성지’가 됐다. 빈집을 개조해 마을과 주민의 역사가 작품의 일부이도록 하고, 다양한 기획전과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을 통한 지속 가능의 예술의 섬으로 탈바꿈시키자 200명에 불과했던 인구는 현재 약 40배 가까이 불어났다. 나오시마를 거느린 가가와현의 경제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세도우치 트리엔날레(3년마다 개최되는 국제예술제)가 처음 열린 2010년부터 2022년까지의 경제효과만도 매회 1000억원 이상에 달했다.
오늘의 나오시마를 일군 주역은 정부나 지자체가 아니라 문화예술의 힘을 믿는 기업과 주민이다. 일본의 출판·교육 기업 ‘베네세 홀딩스’(Benesse Holdings)의 후쿠다케 소이치로(福武總一郞) 회장의 ‘공익적 자본주의’라는 경영이념과, 상생을 전제로 한 주민들과 예술가들의 협치가 지금의 나오시마를 만들었다. 특히 소이치로 회장은 죽어가는 땅에 헛돈을 쓴다는 주변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30여년에 걸쳐 섬을 구입하고 수천억원을 나오시마에 투입하며 공공의 이익증진을 위해 헌신했다. 주민들은 삶의 터전이 곧 예술이 되도록 하면서 지역의 미래를 견인했다. 이들이 없었다면 작금의 나오시마 역시 없었을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며 나오시마의 성공 사례는 세계에 알려졌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도시재생을 말할 때마다 단골처럼 소환된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의한 공동체 붕괴 현실에 처한 지자체들에 나오시마 개발 사례는 흥미로운 모델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자지단체장들과 의회의원들이 나오시마를 찾는다.
하지만 성과는 불분명하다. 재생과 혁신을 외치며 숱하게 드나들지만 결국은 이렇다 할 결실 없이 혈세만 축낸다. 당연하다.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자체장은 임기가 정해져 있기에 나오시마처럼 수십년에 걸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어렵다. 실무를 담당할 공무원들도 1~2년 내 부서를 옮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전임 지자체장의 과업을 뒤집고 폐기시키는 일이 빈번하다. 이는 지속 가능한 정책이 이뤄질 수 없는 결정적 요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한결같이 ‘한국의 나오시마’를 꿈꾼다. 물론 대개는 불가능하다. 한국의 지자체들이 나오시마 사례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장기적 종합계획을 세우고 그 플랜에 따라 인내와 뚝심을 바탕으로 하나하나 조립하듯 완성해나가는 철저함과 섬세함이다. 프로젝트 전체를 관통하는 분명한 주제의식과 함께 전문가와 재정을 담당하는 행정의 명확한 역할 분담, 예술이라는 특별한 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오시마의 기적’은 민간 주도의 길고 긴 투자와 인내의 산물이지 정치적 성과에 급급한 이들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단기적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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