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위반” 對 “거부권 중독”, 창과 방패의 대결…국회는 ‘정쟁→빈손’ 쳇바퀴

변문우 기자 2024. 8. 7.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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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25만원 지원금법’ 놓고 위헌 논쟁…정작 민생법안 실적은 ‘0건’
발등에 불 떨어진 국회, ‘여·야·정 협의체’ 꺼냈지만…서로 ‘책임 전가’ 급급해
尹대통령도 ‘패키지 거부권’ 부담 누적…“누구도 ‘대타협’ 말하는 사람이 없다”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윤석열 대통령(오른쪽)과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국회사진취재단

"정부의 행정권을 흔드는 야당이나 국회의 입법권을 흔드는 정부나 잘못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둘 다 국민의 시름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22대 국회 개원 후 두 달간 이어진 '입법독주-거부권' 정국에 대한 정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거부권 정국이 역사에서 아주 생소한 장면은 아니다. 여권의 주장대로 대통령제를 처음 도입한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대통령은 635회를, 그로버 클리블랜드 전 대통령은 414번을 행사한 바 있다.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도 초대인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임기 중 45번에 달하는 거부권을 사용했다.

문제는 거부권 정국이라는 기나긴 터널이 계속 이어지고 있음에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야권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민생'을 기치로 '노란봉투법', '25만원 지원금법', '방송4법' 통과를 밀어붙였다. 이에 대통령도 '위헌' 소지를 내세우며 기다렸다는 듯 거부권 버튼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결국 22대 국회에서 여야와 정부가 함께 처리한 민생 법안은 현재 '0건'에 그친다. 양측의 양보 없는 대결정치 전쟁 속에서 오히려 국민들만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몽골 기병' 민주당과 '헌법 수호대' 당정, 양보 없는 전쟁

"몽골 기병 같은 자세로 민생 입법과 개혁 입법 '속도전'에 나서겠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 개원 직후 주문한대로 민주당 의원들은 각종 쟁점 법안과 안건을 일사분란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당은 7월25일부터 8월5일까지 단 2주 만에 '방송4법', '25만원 지원금법', '노란봉투법'까지 굵직한 쟁점 법안들을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단독 통과시키며 정국 주도권을 가져온 분위기다.

민주당은 6개 법안들이 "민생과 무관하지 않다"고 강조하며 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에 부담을 느끼도록 압박하는 모습이다. 이재명 전 대표는 6일 SBS 주관 '전당대회 당대표 후보 TV토론회'에 출연해 "지금 정부 여당의 태도는 뭘 하자는 게 없다"며 "정부·여당이 뭔가를 주장하면 저희가 거기에 맞춰 견제도 하고 수정안과 대안도 내서 국민들의 삶을 개척하는 신선한 정치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헌법파괴 공세에 더 이상 밀릴 수 없다. 헌법 수호로 결연히 대처해야 한다.(국민의힘 핵심 관계자)" 반대로 정부·여당은 해당 법안들에 대해 각각 '불법파업조장법(노란봉투법)', '현금살포법(25만원 지원금법)', '방송장악법(방송4법)'이라고 이름 붙이며 '헌법 수호'를 고리로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명분을 찾는 모습이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4일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 거부권 건수를 늘려 탄핵 선동에 악용하려는 술책에 불과하다"며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계속 건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여기에 발맞춰 정부도 6일 국무회의를 통해 방송4법에 대한 재의요구(거부)권 행사 건의안을 의결하며 '역공' 초읽기에 돌입했다. 정부는 노란봉투법과 25만원 지원금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건의안도 다가오는 국무회의에서 속전속결로 처리할 계획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해당 법안들에 대해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여름휴가를 떠난 윤석열 대통령도 거부권 행사 시점을 고심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7월4일 국회 본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 처리 문제를 둘러싼 필리버스터 종료에 대한 표결이 시작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우원식 국회의장을 향해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권분립 선 넘었다" "사측을 범죄자로"…'위헌' 공세 높이는 당정

그렇다면 정부·여당에서 해당 법안들을 놓고 '위헌'이라고 지적하는 쟁점은 무엇일까. 먼저 노란봉투법에선 명확하지 않은 '사용자 범위' 확대와 '노동조합 가입' 문턱을 대폭 낮춘 부분이 핵심 쟁점이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의 확대를 통해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노조와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있다. 정부와 경제계에선 "죄형법정주의(범죄와 형벌은 법률이 명확히 정하는 바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에 위반돼 사용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갈 가능성이 크다"며 위헌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노조 가입자 제한 요건 중 '근로자가 아닌 자' 문구가 삭제돼 노조 가입 문턱도 대폭 낮아졌다. 1인 자영업자나 프랜차이즈 가맹 점주에게도 권한쟁의의 길을 열어주는 셈이다. 이는 헌법을 근거로 한 노동법 속 '노조'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만큼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 당정의 입장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5일 브리핑에서 "자영업자 등 근로자가 아닌 사람도 노조에 가입해 노조의 본질이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치파업을 위한 노조의 레버리지를 극도로 높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5만원 지원금법을 두고선 '정부 예산편성권 침해'를 고리로 헌법의 기본인 '삼권분립' 위반으로 쟁점이 일파만파 커지는 분위기다. 정부·여당 측에선 예산 편성은 국가가 하고 국회는 그걸 심의하고 확정하는 역할에 그치는데 행정부가 할 일을 입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월권'이라는 입장이다. 한동훈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25만원을 입법부가 법으로 제안하는 것은 헌법에 맞지 않는다. 그러면 삼권분립이 왜 돼 있나"라고 지적했다.

특히 지원금 지급 대상에 난민을 비롯한 재한외국인까지 포함되는 것을 두고선 '형평성 논란'을 넘어 '국제법 위배'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국제법의 기본인 '상호주의 원칙'에 따르지 않고 더 많은 혜택을 베풀 경우 다른 나라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통화에서 "상대국에서 우리 국민을 대우하는 만큼 우리나라도 똑같이 대우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만 모든 재한외국인에게 25만원씩 지급하는 것은 상호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다른 나라와의 분쟁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권 일각에선 민주당이 지방선거 표심을 노리고 지원금 지급 대상에 재한외국인까지 포함시킨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하고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18세 이상의 재한외국인 중 영주권 취득 후 3년이 지난 경우 총선과 달리 지방선거 투표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관련해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의식한 '인기 영합주의' 법안을 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보 없는 싸움이 이어지면서 저출생 극복이나 연금개혁·세제개편 등 민생법안들은 본회의 테이블에 올라오지도 못하고 있다. 이에 양당은 7일 추경호 원내대표의 제안으로 임시국회의 정쟁을 중단하고 여야와 정부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여·야·정 협의체' 구성도 시사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조차 양측은 여전히 "소모적인 정쟁", "당리당락에 집착해 입법을 강행시켰다"이라며 책임 전가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루즈벨트랑 비교 불가"…尹에게 '거부권' 대신 필요한 것은?

대통령 또한 정부·여당의 '위헌 맞불' 엄호 전략에도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취임 2년 간 이미 15건의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부담이 축적된 상태다. 민주화 이후 각 정권에서 거부권을 행사한 기록(▲노태우 정부 7건 ▲노무현 정부 6건 ▲이명박 정부 1건 ▲박근혜 정부 2건)과 비교했을 때도 압도적 1위다. 특히 김영삼·김대중·문재인 전 대통령은 거부권을 단 한 차례도 사용하지 않은 부분도 비교되는 대목이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를 비롯한 야권에서도 윤 대통령을 겨냥해 '거부왕'이라고 직격하고 있다.

"루즈벨트 전 대통령이 관 뚜껑을 열고 튀어나올 일 있나." 정부·여당에서 미국 대통령들의 거부권 행사 전적을 윤 대통령과 비교한 데 대한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의 반응이다. 대통령 지지율이나 국정 의지 등 각종 지표를 놓고 볼 때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루즈벨트 전 대통령은 과거와 달리 뉴딜 정책 등 개혁 과제도 많이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반대도 굉장했다"며 "그럼에도 경제 위기를 극복해나가고 개혁 추진 성과를 냈기 때문에 국민적 지지를 받고 정치적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데 지금의 윤 대통령은 루즈벨트 전 대통령과 같지 않다"며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20%대로 거의 바닥 수준이다. 개혁적인 정책에 대해서도 오히려 저항하다가 정국 주도권을 야권에 넘겨주고 수비만 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작금의 강대강 대치 상황을 초래한 책임은 서로 소통하거나 양보하지 않는 여·야·정 모두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회의원 300명 중 누구 하나라도 '강대강 상황에 문제가 있다', '대타협을 하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나"라며 "국가의 미래와 현안 타개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들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전혀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탄핵과 대통령 거부권 도돌이표가 반복되는 사이, 경제위기는 다가오고 우리(한국)만 정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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