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추진 댐, 기후변화 시대에 안 맞아…설계범위 넘는 홍수 늘어”
문재인 정부 때 ‘물관리일원화’로 환경부 역할 왜곡 지적
“지금은 신규 댐에 투자하기보다 기존의 큰 댐이나 주요 시설들이 안전한지 검토해서 그런 쪽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할 때입니다. 옛날 정책 방향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기후변화 시대에는 맞지 않습니다.”
한국물학술단체연합회 회장을 역임하고 세계기상기구(WMO)에 아시아지역 홍수와 가뭄관리를 자문하는 수문자문관으로 활동 중인 원로 수문학자 김승(71) 박사는 5일 한겨레와 만나 환경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후대응댐’에 쓴소리를 했다.
김 박사는 국책연구기관인 건설기술연구원에서 1988년부터 30년 동안 수자원장기종합계획 수립, 댐과 제방 등 하천 구조물의 설계지침 개발 등을 수행해온, 굳이 말하자면 주로 ‘댐 건설’ 필요성을 말해온 전문가다. 1999년부터 추진된 한탄강댐을 놓고 반대가 극심했을 때는 각종 토론회는 물론 법정에까지 나가 댐의 필요성을 적극 주장해 댐이 건설되게 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 그런 그가 환경부가 추진하는 기후대응댐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밝힌 것은 주목할 만하다. 최근 환경부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며 14곳 지역에 신규 댐 건설 및 기존 댐 재개발을 하겠다고 나선 바 있다.
갑자기 가치관이 바뀌어 환경주의자나 ‘댐무용론자’로 전향한 것은 아니다. 그는 “환경부가 댐 건설을 할만 한 데다 하는구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 댐을 만들면 홍수·가뭄 때 도움은 될 것”이라 했다. 다만 ‘기후대응댐’이란 의미를 부여할 순 없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30~50년에 한 번 올 정도의 가뭄, 100~200년에 한 번 올 정도의 홍수를 막는 정도의 설계기준에 따라 안전하게 해주겠다고 내세우고 있는데, 사실 지금 걱정해야 될 것은 그 범위를 벗어난 가뭄이나 홍수가 오는 겁니다. 그럴 때는 댐이 있다고 다 안전한 것은 아니거든요.”
문제는 기후변화에 따라 해당 설계기준을 벗어나는 홍수가 실제 일어나면 아예 댐 자체가 ‘물폭탄’이 될 수도 있는 위험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1990년 한강 유역 홍수 때 충주호 수위가 설계 홍수위(댐 건설·설계 시 기준이 되는 홍수량)를 초과해 남한강 상류 일대가 침수된 것과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태풍 ‘매미’ 때 10조원이 넘는 피해를 냈던 것 등을 설계 범위를 넘어선 홍수로 일어난 피해의 사례들로 꼽았다. “설계 범위를 넘는 상황이 발생할 확률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고도 했다. 김 박사는 노트북 컴퓨터로 자신이 작성해온 자료를 보여주며 “모든 댐은 가장 많이 올 수 있는 비를 기준으로 만들어놨는데, 이론적으로 설정한 비와 실제 내리는 비가 큰 차이가 없이 근접하고 있어요. 이건 댐 자체가 안전하지 않다는 얘기니, 사실 심각하지요”라고 말했다.
가뭄도 마찬가지다. 기후변화로 닥칠 수 있는 재앙적 가뭄 앞에선 댐도 확실한 용수 공급 시설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댐 같은 수자원 사업은 시공간을 바꾸는 사업입니다. 여름에 물을 가뒀다가 봄에 쓴다든지, 여기서 물을 모아서 저기로 돌려 쓴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이처럼 시공간만 바꿔줄 뿐 절대량을 만드는 것이 아니니 극심한 가뭄이 와서 시공간 이동할 게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이젠 어떤 경우에도 국가와 도시가 유지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지금까지는 설계 범위를 벗어난 재해가 발생해도 국가가 지원해서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재해의 규모가 커지면 국가도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는 만큼,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사회기반시설을 최소화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해 피해를 위험과 노출, 취약성의 관계식으로 설명하며 “기후변화로 위험이 계속 높아지는 상황에서는 허술한 사회기반시설을 보강해 피해에 노출되는 것을 줄여나가야 하는데, 댐을 만들거나 철도와 도로 같은 멀쩡한 지상 시설을 지하화하는 것 등은 되레 피해를 키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후변화에 대비해 특히 확충하고 보강해야 할 구조물로 김 박사는 침수지역에서 물을 퍼낼 펌프장, 하천의 교량, 농업용 댐(저수지)의 물을 방류하는 여수로 등을 꼽았다. 그는 “농업용 댐들은 대부분 흙으로 쌓아놓은 댐들이어서 큰 비가 내려 다 찬 뒤에도 계속 밀려드는 물을 100% 방류하지 못하면 붕괴할 수 밖에 없다”며 “지금 이미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 그런 것들을 보강하는 것이 굉장히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기후변화 시대 수자원 정책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핵심 개념으로 회복력과 탄력성을 의미하는 ‘리질리언스’(Resilience)를 강조했다. 댐과 같은 구조물로는 재해 대비에 한계가 있으니 중요한 곳부터 우선 순위를 정해, 설계 범위를 벗어난 상황에서도 피해가 최소화되고 신속히 원상 복구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얘기다.
가뭄 대응과 관련해서도 댐 건설과 다른 접근을 강조했다. 그는 “댐을 건설해 물을 시공간적으로 이동시켜도 가뭄 대응이 안 될 가능성이 계속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하수를 처리해 쓴다든가 농업용수가 많이 필요한 농작물을 바꾼다든가 하는 여러 장기적 대안을 놓고 검토했어야 한다. 그런데 환경부에선 그런 과정에 대한 설명도 없이 댐 개발을 툭 터트렸는데, (국가 물관리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국가물관리위원회와 유역별 물관리위원회는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김 박사는 “옛날에 국토부가 댐 개발 계획을 세우면 환경부가 환경영향을 평가해 대안을 찾아보라며 제동을 걸어 쉽지 않았는데, 지금은 환경부가 그런 역할을 못하는 게 안타깝다”며 “과거에 댐 건설을 놓고 내가 환경부와 얘기를 많이 하고 대립했지만, 그때 환경부가 했던 그런 역할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부에서 이런 역할이 사실상 실종된 계기로 ‘물관리일원화’를 지목했다. 물관리일원화는 2018년 6월 문재인 정부 당시 수질 관리는 환경부, 수량 관리는 국토교통부로 나눠져 있던 물관리 기능을 환경부에 통합시킨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국토교통부의 수자원 관리 부문 조직과 인력을 넘겨받고 수자원공사까지 산하기관으로 두게 됐다. 이 일원화에는 환경부에 수자원 관리를 맡기면 4대강 사업과 같은 무모한 수자원 사업이 더 이상 이뤄지지 않고 지속가능한 수자원 관리가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 반대가 됐다는 것이 김 박사의 주장이다.
김 박사는 “한국과 같이 물관리가 중요한 나라에서 바람직한 물관리는 전문화된 여러 부처에서 참여해서 서로 견제하게 하고 그것을 잘 연계시켜 ‘종합’해 하는 것이 맞지 한 부처에 ‘통합’해 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여기서 환경부는 환경영향평가를 확실하게 해 지속가능성을 책임지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통합 이후 그런 기능이 실종돼 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처럼 이미 물관리일원화로 환경부가 주무부처가 된 상황에서 방송통신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행정위원회도 아닌, 실행력 없는 국가물관리위원회는 껍데기 조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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