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 규제, 그 너머엔 [뉴스룸에서]
김경락 | 경제산업부장
2013년 1년 가까이 기업·자금시장을 뒤흔든 사건이 있었다. 사건의 결말은 그룹의 청산, 경영진의 사법처리였다. 이른바 ‘동양그룹 부도 사태’(동양 사태)다. 최근 티몬·위메프(이하 티메프) 사태를 마주하면서 불현듯 10년 전 그 사건이 떠올랐다. 두 사건은 여러모로 닮았지만 또 다르다.
동양 사태 핵심에 돈줄 마른 기업의 폭탄 돌리기 식 자금 조달과 운영이 있었다. 동양은 은행에선 돈을 빌리기 어려울 정도로 재무구조가 악화된 탓에 자본시장에 손을 벌렸다. 돈을 빌려준, 다시 말해 투자에 나선 쪽은 고금리 유혹에 홀린 개인투자자였다. 그 수가 4만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동양이 발행한 3개월짜리 어음(CP·전자단기사채)을 사들였고, 손바뀜은 1년 남짓 이어졌다. 동양은 폭탄 돌리기를 이어가며 자산 매각을 통한 생존 기회를 엿봤지만 실패했다. 어음은 부도 처리되고, 1조원이 넘는 손실은 ‘막차 탄’ 투자자들이 안았다.
여론은 곧장 정부로 향했다. 사태가 그 지경이 되도록 손 놓고 있었느냐란 질타였다. 당시만 해도 감독은 주로 은행 빚을 진 기업이 대상이었다. 단기어음에 기대 벼랑 끝으로 달려가는 기업은 ‘감독 사각지대’에 있었다. 대출 부실은 은행 위기로, 다시 경제 전반의 위기로 나아가지만, 단기어음 부도는 이런 위기의 확산 경로를 걷지 않는다. ‘투자자 손실’과 ‘기업 부도’에서 사태가 갈음되기 때문이다. 감독이 느슨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이 사태는 단기어음 투자자 수가 너무 많다는 점(피해자가 많다!)에서 사회적 공분이 일었고, 결국 사법 당국이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현 반부패수사부)가 칼을 잡았다. 그들은 동양의 단기어음 발행 및 판매를 ‘사기’로 판단했다. ‘부도 위험을 숨겼다’는 이유였다. 동양 부실을 처음 보도하는 등 사태 전개 과정을 깊이 들여다본 기자는 물론 금융당국도 애초 사태 본질이 금융상품(단기어음)의 부도 위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불완전 판매’에 있다고 생각했으나, 여론과 사법 당국의 판단은 달랐던 셈이다.
티메프 사태도 이와 유사하다. 이 사건에선 동양 사태 때의 단기어음 자리에 판매대금 또는 고객 지불금과 같은 ‘상거래 채권’이 터 잡고 있을 뿐, 피해자가 ‘다수’라는 점이 우선 같다. 정산 주기도 단기어음은 3개월, 판매대금은 2개월로 엇비슷하다. 정산 주기를 활용한 폭탄 돌리기형 자금 조달과 운용도 닮은꼴이다. 감독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점도, 사태가 불거진 뒤 경영진에 대한 비난 여론이 확산하자 정치권과 사법 당국이 나서고 그 결론이 ‘사기’로 내달리고 있는 양상도 동양 사태와 꼭 닮았다. 칼자루를 쥔 쪽도 특수부 후신인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다.
닮은 점은 여기까지다.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보완과 그 예상된 결과는 다를 것 같다. 동양 사태 이후 제도 보완은 비교적 시장 친화적이었다. 투자상품의 위험 고지 의무가 강화됐고 투자자들의 위험 인식도 높아졌다. 기업어음 발행 금지와 같은 사전 규제는 없었지만 동양 사태와 같은 양상은 그 뒤로는 발생하지 않았다. 성공한 제도 보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티메프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두 가지다. 정산 주기 단축과 판매대금 관리 의무화다. 필요한 조처로 보이지만 앞으로 긍정적 효과만 낳을지는 자신하기 어렵다. 두 규제는 자칫 전자상거래업의 본질을 직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업은 소규모 자본으로 온라인 장터를 만든 뒤 ‘남의 돈’(외부 투자자+판매대금 등)을 돌려가며 시장 지배력을 키운 뒤에야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사업이다. 쿠팡은 물론 미국 아마존도 장기간 적자의 늪에 빠져 있다가 과점 사업자로 올라선 뒤 수익성 제고 전략(수수료·회비 인상)에 나서거나 막대한 수익을 얻었다. 진입장벽이 낮기에 지배적 사업자가 될 때까지 출혈 경쟁(수수료 할인, 대규모 투자 등)이 불가피하며 경쟁에 낙오하면 티메프의 전철을 밟는다.
이런 까닭에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규제는 자기 자본이 풍부한 재벌 계열 전자상거래 업체나 이미 사다리 꼭대기에 올라선 전자상거래 대기업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결과를 낳을 공산이 있다. 그 시점엔 소비자와 입점업체는 좀 더 많은 비용을 들여 경쟁에 승리한 플랫폼을 이용할 것이며, 업체는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돈을 벌게 될 것이다.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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