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궤적을 그리는 드로잉 [크리틱]

한겨레 2024. 8. 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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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로 밥벌이를 한다.

사실 미술작품은 삶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로잉, 삶의 철학을 그리다'란 제목의 전시였다.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 예술을 한다"는 안규철 작가는 고희를 앞둔 나이에도 여전히 드로잉북에 글과 그림을 끼적이며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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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숙, ‘작가 만다라’, 2013~2019, 종이 위에 드로잉, 소마미술관. 윗줄 왼쪽부터 비트겐슈타인, 케테 콜비츠, 미켈란젤로 등의 초상이다. 사진 강혜승

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미술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로 밥벌이를 한다. 24회차 크리틱 칼럼을 쓰는 지금에서야 밝히자면 전직은 언론인이었다. 주로 사회부 기자로 10여 년 현장을 누비다 미술사로 석박사 학위를 받고 전업한 뒤로 “왜?”라는 질문이 따라다녔다. 신문기자와 미술사학자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기 어렵다는 반응들이었는데, 살아가는 양태에 대한 관심이 현실 세계의 사건 사고에서 미술 현상으로 옮겨갔을 뿐이었다. 사실 미술작품은 삶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서울 송파구의 소마미술관에서 안규철, 유근택, 황인기, 강미선, 김명숙, 이배 작가의 드로잉 작품들을 만났다. ‘드로잉, 삶의 철학을 그리다’란 제목의 전시였다. 드로잉은 선을 긋는 행위로 신체와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 하나의 몸짓이 드로잉으로 불려 예술로 의미된다는 건 소위 천재적인 찰나의 번뜩임 때문이 아니다. 여기 6인의 작가들은 최소 30년 이상 무수히 선을 그렸다. 그려왔다는 건 살아왔다는 속뜻의 다른 말이다.

종이나 캔버스 표면에 긋는 선에는 행위자의 의식과 무의식이 담긴다. 그래서 6인의 드로잉은 한 데 묶을 수 없는 저마다의 여섯 색을 띤다. 그런 이들이 예술 철학으로 이구동성 생성의 의지를 말한다. 아침마다 금강경을 읽고 먹을 갈아 붓을 드는 강미선 작가는 “알아주는 이 없어도 손을 놓지 않고 가야 한다”고 했다. 숯을 주재료로 작업하는 이배 작가는 “매일이 쌓여 과정이 된다”고 했다. 미술계에서 이름 높은 작가들도 반복되는 일상을 견뎌내는 태도를 철학에 견준다.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가 전한 현자의 지혜에 따르면 최선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라 할 정도로 삶은 고통스럽다. 예술은 그런 삶을 견뎌내게 한다. 독일 출신 화가 루시안 프로이드(1922~2011)는 고통(pain)에 티(T)를 더한 것이 그림(paint)이라고 했다. 이때 T는 치유(therapy)로 이해된다. 김명숙 작가는 크래프트 종이 위에 손가락으로 수없이 선을 그어 앞서 살다 간 예술가들의 고통을 반추한다. 그러다 손끝 살이 쓸리면 수세미를 들고 종이에 상처를 내듯 드로잉을 반복하는데 최종 결과물은 초상의 형태다. 그렇게 그린 ‘작가 만다라’ 연작에는 니체의 얼굴도 있다.

말년이 고통스러웠던 니체의 철학에서 정수를 꼽자면 창조하는 삶에의 의지다. 인간은 낙타와 사자 그리고 어린아이의 영혼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낙타 마냥 ‘너는 해야만 한다’는 명령에 순종할지, ‘내가 하고자 한다’는 사자의 의지를 취할지, 어린아이처럼 놀이하듯 생을 긍정할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노는 것을 목표로 한 삶”이었다면서도 50년 넘는 세월 작업을 쉬지 않았던 홍인기 작가의 궤적은 니체의 철학을 관통한다.

소마미술관 측이 제작한 안규철 작가의 인터뷰 영상 중 한 장면.

창조란 예술가만의 특별한 능력치가 아닌 스스로 되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 예술을 한다”는 안규철 작가는 고희를 앞둔 나이에도 여전히 드로잉북에 글과 그림을 끼적이며 하루를 시작한다. “해도 해도 부족하고 배고픈 허기로 그림을 그린다”는 유근택 작가는 자기 삶에서 이미 예술가일지도 모르는 관객에게 묻는다. 여러분의 삶의 철학은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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