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은 ‘초등 의대반’ 법률로 막아야 한다 [왜냐면]
홍민정 | 변호사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러니까 바야흐로 1990년대 중반, 5학년 8반 교실에서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쉬는 시간에도 ‘문제은행’이라는 문제집을 풀고 있는 친구를 발견했다. 기억이 온전치 않지만 6학년 또는 중학교 1학년 과정의 문제집을 풀고 있었던 것 같다. 너무 의아한 나머지 그 친구에게 물었다. “너 이렇게 어려운 걸 왜 쉬는 시간에 풀어?”, 친구는 너무 담담하게 대답했다. “해야 하니까, 너도 나중에는 알게 될 거야”,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당시 1~2년을 선행하는 문제집을 쉬지 않고 풀고 있었던 친구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1~2년 정도의 선행은 너무 당연한 풍경이 되어버린 듯하다. 더군다나 과거에 비하면 지금의 선행 속도는 무척이나 빨라졌다. 특히 사교육 과열 지구를 중심으로 ‘초등 의대반’이 개설되어 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보도자료를 보면, 초등 의대반에서는 고등학교의 교과 내용을 가르치는 교습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6년까지 당겨서 가르치는 곳도 있다고 하니 그 속진은 가히 빛의 속도다. 6년을 앞당겨 배우는 학생들은 그 내용을 과연 이해하고 있을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사교육에서 의대 준비를 위해 초등학생들에게 최대 6년을 앞당겨 교습하는 현실을 막고자 ‘초등 의대반 방지법’ 제정에 나섰다. 초등 의대반 방지법은 학교급을 넘어서는 과도한 선행 교습에 대해서는 법률로써 이를 금지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일부에서는 사인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약하는 것이 아니냐며 반대하고 있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2000년에 내린 ‘과외 금지 위헌 결정’(헌법재판소 2000년 4월27일 선고 98헌가16, 98헌마429)을 반대의 근거로 들고 있는데, 이는 해당 판례에 대한 심각한 오해다.
헌법재판소는 해당 결정에서 사교육의 영역에 관한 한, 우리 사회가 불행하게도 이미 자정능력이나 자기조절능력을 현저히 상실했고, 이로 말미암아 국가가 부득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므로 이와 같이 사회가 자율성을 상실한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과외 금지 규정이 의도하는 입법목적도 입법자가 ‘잠정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정당한 공익이며 수단도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문제가 되었던 것은 기본권 침해의 최소성 원칙 위반 여부였다. 헌법재판소는 “고액 과외교습을 금지하는 것 자체가 위헌이라는 것이 아니라, 고액 과외교습을 억제하기 위한 방법의 선택이 잘못되어 고액 과외교습의 위험성이 없는 과외교습까지도 광범위하게 금지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데 위헌성이 있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즉 사회적 폐단 및 고액 과외교습의 위험성이 없는 과외까지도 원칙적으로 광범위하게 금지하였기 때문에 침해의 최소성 원칙을 위반하여 위헌이라고 판단하였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결정으로 사교육 및 과외교습에 대하여 규제하면 위헌이라고 생각할까 염려되어 “입법자는 중대한 사회적 폐단이 우려되는 경우에는 이를 규제할 수 있는 입법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문구를 결정문에 덧붙였다. 즉 사교육의 영역이라 하더라도 반사회적이고 병리적 위험성이 존재한다면 법률로써 이를 금지할 수 있음을 명시하였다.
초등 의대반 방지법의 경우는 어떨까? 학생들의 발달권 보장 및 학교 교육의 정상화, 과열된 경쟁 교육 해소 등의 공익은 매우 중대하다. 또한 예습이나 심화 학습 및 자발적 학습 등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허용하지만 학교급을 넘어서는 과도한 선행 교습의 경우에만 이를 제한하는 입법은 침해의 최소성 원칙을 넘어서지 않는다. 나아가 해당 법률이 제정될 경우에 학교급을 넘어서는 교습 과정을 운영할 자유 또는 교습받을 자유의 금지라는, 매우 제한적인 범위의 불이익이 발생하는 데에 불과한 반면 위에서 언급한 공익의 가치는 사교육에 관한 한 자정능력을 상실한 우리 사회에 매우 절실하다. 따라서 학교급을 넘어서는 선행 교습을 제한하는 입법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
초등학생이 왜 쉬는 시간까지 반납하여 몇 년을 앞선 선행 문제를 해결하는데 몰두해야 하는가? 초극의 경쟁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또는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도, 정상적이지도 않다. 다 같이 비정상적으로 질주하는 경쟁 열차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이제는 마련하여야 한다. 입법자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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