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 금값, 왜 떨어졌나…‘검은 월요일’ 이후 위험회피 무색

남지현 기자 2024. 8. 7.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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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 추락, 말레이 링깃 상승
‘검은 월요일’의 이색 풍경들
미 경기침체에 대한 공포로 대폭락했던 일본 닛케이지수가 회복세로 반전한 지난 4일 도쿄 시내에 있는 닛케이지수 전광판 앞으로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AP/연합뉴스

미국 경기 침체 공포 등이 글로벌 증시를 ‘깜짝’ 강타한 지난 5일, 증시 너머 시장 곳곳에서 이례적 장면이 연출됐다. 전통적 안전자산인 금 값이 달러와 나란히 미끄러지는가 하면, 위험자산인 신흥국 통화 말레이시아 링깃은 역대급 랠리를 펼쳤다. 위험회피 심리가 득세한 가운데 안전자산 가격이 내리고 위험자산 가격이 튀어 오른 셈이다.

지난 5일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12월 인도분 금 선물 가격(종가 기준)은 트로이온스당 2444.40달러로 전 거래일 대비 1.03% 하락했다. 미국 경기 침체 공포에 불을 댕긴 7월 미국의 제조업·고용지표가 발표되기 전날인 지난 1일과 견줘서는 1.47% 내렸다. 같은 기간 스탠다드앤푸어스(S&P)500지수는 4.84% 하락했다.

금은 대표적인 안전자산이다. 통상 완화적 통화정책이 펼쳐질 때 달러 가치 하락에 맞서 자산 가치를 보전(헷지)할 목적으로 금에 투자하는 이들이 늘며 금 값이 오른다. 올해 들어서는 미국의 연내 정책금리 인하 기대감과 중동에서의 분쟁 격화에 힘입어 연초 대비 20% 가까이 오르는 등 역대급 랠리를 펼쳐온 터다.

시장에서는 금 값이 돌연 약세인 이유를 증시 폭락에서 찾는다. 주요 자산이 큰 폭으로 하락하자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투자자들이 보유 중인 금 처분에 나섰다는 것이다. 선물 시장 투자자들이 마진콜에 대응하기 위해 금 선물을 급처분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과 아시아 증시가 큰 폭으로 하락하고, 최근 엔-달러 환율마저 급등하면서 관련 선물 시장에 투자했던 투자자의 손실 규모가 불어나자 강제청산을 막기 위해 금 선물 포지션부터 청산했다는 설명이다. 귀금속 거래 플랫폼인 불리온볼트 등은 “다른 자산에서의 손실을 메우거나, 주식 시장 헷지용으로 금을 보유했던 투자자들이 마진 콜에 대비해 현금을 확보하려 금 포지션을 청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마진콜은 선물 거래 투자자 거래 잔고가 유지증거금 아래로 내려갔을 때 금융사가 추가 입금을 요구하는 걸 말한다. 금 값은 6일까지 내림세를 이어가다가 7일에는 소폭 오르고 있다.

또다른 안전자산인 달러 가치도 ‘검은 월요일’을 피해가지 못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지수)는 지난 5일 전 거래일 대비 0.34 하락한 102.87을 기록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9월 큰 폭의 금리 인하(빅 컷)를 단행할 거란 기대가 급등한 데 더해 엔-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면서 일시적으로 달러 공급이 시장에서 크게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엔-달러 환율은 이날 144.17엔(종가 기준)으로 전 거래일 대비 2.37엔 내렸다.

구리를 비롯한 대부분 원자재도 이날 증시 급락세에 휘말려 약세였다. 구리 선물은 파운드당 3.999달러로 전일 대비 2.53%(0.104달러) 하락했고, 서부텍사스유(WTI) 선물도 배럴당 72.94달러로 0.79% 내렸다. 한 때 ‘디지털 금’으로도 불렸던 비트코인은 5일 하루에만 6만1498.33달러에서 5만4018.33달러로 12% 넘게 하락했다.

이 가운데 ‘나홀로 랠리’를 펼친 위험자산이 있다. 말레이시아 통화 링깃이 그 주인공이다. 링깃은 5일 2015년 이래 최고의 하루를 보냈다. 이날 링깃-달러 환율은 4.4272링깃으로 0.0698링깃(1.55%) 올랐다. 통화 가치인 환율이 하루에 1% 넘게 오르는 건 드문 일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2분기 경제성장률을 보여준 말레이시아 경제에 투자자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깜짝’ 랠리 배경을 설명했다. 위험회피 심리가 높아지더라도 반드시 안전자산에 돈이 몰리지는 않으며, 동시에 위험자산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도 아니라는 금융시장의 또다른 진실이 지난 5일에도 확인된 셈이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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