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삭 감독 "이 거대한 규모가 두려워서 선택한 거죠"
전작 '미나리'는 제작비 200만 달러 불과
"이 영화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1990년대 스필버그 영화로 연출 공부"
지난달 북미 개봉 매출액 3800억원 기록
"정 감독이 적임자…결과로도 증명해내"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미나리'를 보면 농장으로 이사 간 뒤 며칠만에 토네이도가 불어닥치는 장면이 있죠. 그건 실제 제 경험입니다. 저희 가족이 아칸소로 이사를 간 뒤 2~3주만에 토네이도가 왔어요. 저흰 토네이도가 물러갈 때까지 도망 다녀야 했죠. 그런 제게 토네이도는 너무 익숙한 재해였습니다."
◇"두려웠기 때문에 하고 싶었다"
영화 '미나리'(2020)의 정이삭(46) 감독이 4년만에 새 영화로 돌아왔다. 재난액션블록버스터 '트위스터스'(8월14일 공개)다. 제작비 200만 달러에 불과한 '미나리'는 드라마를 강조한 조용한 영화였다. 반면 약 2억 달러를 쏟아부은 '트위스터스'는 스펙터클을 내세우는 요란한 작품이다. 정이삭이라는 이름을 떼고 보면 도저히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고 볼 수 없는 간극이다. 하지만 정 감독의 얘기를 들어보면 '트위스터스' 역시 그의 영화다.
정 감독이 '트위스터스' 홍보 차 한국에 왔다. 7일 오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이렇게 규모가 큰 영화를 제안 받고 두려웠다. 하지만 그 두려움 때문에 이 영화가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걸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두려움이 영감을 주는 것일지도 몰라요. 제가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게 될지 아직 모릅니다. 다만 어떤 걸 하더라도 도전적인 걸 하게 될 거란 건 확실해요."
◇"스필버그 영화 다시 공부했어요"
'트위스터스'는 오클라호마 벌판에서 토네이도를 추적하며 분석하는 기상학자 케이트의 이야기다. 5년 전 토네이도에 대한 판단 착오로 동료 3명을 잃은 그는 이제 오클라호마를 떠나 뉴욕 기상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5년 전 자신과 함께 살아남은 친구 '하비'가 딱 일주일만 오클라호마에 와서 토네이도 추적을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케이트는 고민 끝에 응하게 된다. 그곳에서 일명 '토네이도 카우보이'로 불리는 타일러를 만난 케이트는 봉인해놓은 야성을 다시 찾기 시작한다.
'트위스터스'는 1996년에 나온 '트위스터' 후속작이다. 이 영화는 당시 전 세계에서 4억945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그 해 전 세계 흥행 2위에 오른 히트작. 정 감독은 1990년대를 대표하는 액션블록버스터 영화들을 다시 공부하며 후속작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다고 했다. 그는 "특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영화 영향을 받았다"며 "그의 영화가 극 중 대형 이벤트를 어떻게 담아내는지 면밀히 살펴봤다"고 했다.
"전작은 실제로 오클라호마 캔자스에 가서 찍었어요. 물론 이젠 블루스크린을 활용해 실내에서 촬영을 할 수도 있죠. 하지만 이번 영화 역시 토네이도의 생동감을 최대한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가능하면 야외에서 촬영을 해 관객이 액션의 한가운데 있길 바랐던 거죠. 한 장면 한 장면 최대한 에너지를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매출액 3800억원 넘겨 흥행 대성공
이날 자리엔 총괄 프로듀서인 애슐리 제이 샌드버그(Ashley Jay Sandberg)와 주인공 케이트를 연기한 배우 데이지 에드가 존스(Daisy Edgar-Jones·26)도 참석했다. 샌드버그 프로듀서는 이번 프로젝트에 정 감독이 적임자였고, 결과로도 그걸 증명했다고 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건 지역적 특성을 이해하는 감독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루카스필름에 있는 내 친구들이 정 감독을 칭찬하며 추천했고, 그가 스크립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미나리'를 끝낸 뒤 '스타워즈' 시리즈 중 하나인 '만달로리안' 시즌3를 연출한 적이 있다.
샌드버그 프로듀서가 결과로도 증명했다는 건 흥행 성적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트위스터스'는 지난달 19일 북미에서 최초 공개된 뒤 지난 5일까지 전 세계에서 2억7780만 달러(약 3800억원)을 벌어들이며 올해 전 세계 흥행 순위 9위에 올라 있다(8위 '혹성탈출:새로운 시대' 3억9720만 달러). 북미 공개 4주차에도 박스오피스 2위에 올라 있어 흥행세는 이어질 거로 예상된다.
정 감독은 "기쁘고 감사하다"며 "특히 내가 자란 곳 아칸소 사람들은 극장에 잘 가지를 않는데, 그 분들도 이 영화를 보고 연락을 줬다"고 했다. "이런 게 저한테는 정말 큰 의미가 있어요. 특정 지역을 넘어서 한국에서도 개봉하게 됐으니까요." 전작 '미나리'의 매출액은 1520만 달러였다.
◇만듦새 긍정 평가…기후 변화 관련 비판도
북미 현지 언론은 '트위스터스'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재난 영화 특유의 긴장감과 스펙터클을 생생하게 구현하면서도 액션영화 클리셰를 조금씩 비틀어 새로운 감각을 주고 있다는 게 공통된 평이다. 미국 비평 사이트인 메타크리틱에서 '트위스터스'는 65점을 기록했는데, 이런 종류 영화로는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이기도 하다.
다만 일각에선 '트위스터스'가 기후 변화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데 소홀하다고 지적한다. 전 세계적인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 재해 피해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대중에 큰 영향을 주는 작품에 이에 관한 코멘트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 감독은 "영화에 그런 부분까지 자세히 다루기엔 너무 복잡했다"고 했다.
"저 역시 이 작품을 시작할 땐 기후 변화에 대한 내용을 많이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들과 이야기하면서 조금 생각이 바뀌었죠. 특히 토네이도는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았어요. 명확한 게 없는 소재에 대해 영화에서 단정적인 코멘트를 주기엔 무리가 있었던 겁니다. 일부 미국 언론에선 제가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싫어했다는 것처럼 보도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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