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우리동네 배추가 전국 최고지요" 100년전 서울의 명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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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동아일보는 경성(京城) 10개 동(洞)·정(町)의 독자들로부터 공모한 '내 동리 명물(名物)'이란 연재를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도 물론 있었다 재미난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우리 동네 명물'을 찾아 추억여행을 계속해 본다.
개구리 소리가 '동네 명물'로 꼽힌 곳이 있다.
빈민굴(貧民窟)을 명물로 꼽은 동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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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남동(橋南洞)의 대장간, 한결같이 뚝딱 뚝딱 연지동(蓮池洞)은 개구리 천국, 우렁찬 대합창 서계동(西界洞) 편쌈, 유명한 싸움꾼이 수두룩 봉래정(蓬萊町) 빈민굴, 한 끼 밥은 꿈 밖이라
100년 전 동아일보는 경성(京城) 10개 동(洞)·정(町)의 독자들로부터 공모한 '내 동리 명물(名物)'이란 연재를 시작했다. 어느 마을, 어느 골목에 가도 '명물'은 있는 법이다. 일제강점기에도 물론 있었다 재미난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우리 동네 명물'을 찾아 추억여행을 계속해 본다.
우선 교남동(橋南洞)의 대장간이다. "교남동에 대장간 하나가 있습니다. 이 대장간은 언제 시작한 것인지 동네 노인들도 아는 이가 없답니다. 이 대장간 주인은 우리 동리에서 윤(尹)대장이라고 유명합니다. 더운 날이나 추운 날이나 조금도 구별없이 풀무 앞에 벌겋게 단 쇠에 무거운 마치를 먹인답니다. 이 노인은 15살 먹은 소년으로 대장 일을 시작하여 70세 노인이 되도록 한결같이 손에 마치 못이 빠진 적이 없답니다. 이 노인 말이 자기가 대장 일을 시작할 때 이 근처에 호수(戶數)가 얼마 아니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교남동 노인들 중에 이 대장간 시작하는 것을 본 사람이 없는 것이 괴상할 것이 없습니다. 임오년(1882년)에 구군(舊軍) 총 난리, 갑신년(1884년)에 개화당 난리, 갑오년(1894년)에 동학당 난리, 을미년(1895년)에 경복궁 난리, 을사년(1905년)에는 5조약 소동, 정미년(1907년) 7조약 소동, 경술년(1910년) 합방 소동, 1919년 기미년 만세 소동 등 세상에는 이런 난리 저런 소동이 많았건만 이 노인은 한결같이 뚝딱 뚝딱 소리로 날을 보낸답니다. 이렇게 세상을 지내온 노인이건만 세상 이야기가 나면 한숨을 쉬고 눈물까지 머금을 때가 있답니다." (1924년 8월 12일자)
여름밤 저녁의 시끄러운 개구리 소리가 그리운 요즘이다. 100년 전에는 개구리 소리가 흔했다. 개구리 소리가 '동네 명물'로 꼽힌 곳이 있다. 바로 연지동(蓮池洞)이다. "연못골(연지동)하면 명물이 무엇이냐. 개구리 소리라는 명물입니다. 요새 같은 여름철 비 지낸 저녁이나 달 밝은 밤에 한 번만 연못골 오셔서 요란한 개구리 소리를 들어 보시면 다른 것 다 제치고 명물 노릇할 만한 값을 대강 짐작하시리다. 그전에는 이 연못골에 큰 연못이 있었더라니, 그때 쯤은 '과궈놔눠' 합창 소리에 귀가 따가웠을 것입니다. 개구리 소리를 잘 들어 주기로 유명하던 사람은 진(晉)나라 필탁(畢卓)이랍니다. 술꾼이라고 천명(闡明)한 필탁은 이 개구리 소리를 삼현육각(三絃六角) 소리로 들었답니다. 그런가하면 개구리 소리를 잘 못들어 주기로 유명한 사람은 고려의 강감찬(姜邯贊)인가 합니다. 이 이인(異人) 별명을 듣는 강감찬은 개구리 소리 듣기가 성가시다고 부작(符作)으로 벙어리 개구리를 만들었답니다." (1924년 8월 9일자)
지금이야 서울 시내에 배추밭이 있을 리 없지만 당시에는 배추밭으로 유명한 곳이 있었다. 바로 충신동(忠信洞)의 백채포(白菜圃)다. "배채, 변명(變名)으로 배추는 원래가 중국 북방에서 나던 물건인데 우리 조선으로 들어오고 또 일본으로 건너가서 오늘날까지 동양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이랍니다. 중국 땅에서 나는 종류로는 산동(山東)배추, 만주(滿洲)배추, 금주(金州)배추 같은 등속이 있는데, 그 중에 산동배추가 가장 유명하고 우리 조선 것으로는 송도배추, 일본 것으로는 나가사키(長崎)배추가 각기 제일 간답니다. 배추는 채소 중에 제일 좋은 것인데 그전 서울 안 배추밭으로는 방아다리와 훈련원 안이 유명한 곳입니다. 훈련원 밭은 지금 거의 없어지다시피 되고 방아다리만 남은 모양인데, 방아다리 배추밭이 다른 것이 아니라 곧 이 충신동 명물입니다." (1924년 8월 6일자)
그런가 하면 지금은 상상도 못할 명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서계동(西界洞) 편쌈(편을 갈라서 하는 싸움)터'라는 곳이다. "서계동에는 굴개라는 유명한 편쌈터가 있습니다. 서울에서 편쌈터로 유명하기는 이 남대문 밖 굴개 이외에 서소문 밖에 녹개천이 있고, 새문 밖에 모화관이 있고 동대문 밖에 무당 개울이 있고 공덕리도 있고 또 동대문 안 조산도 있습니다. 종친부 개천가 편쌈터는 폐(廢)한 지가 오래라 아는 사람도 지금은 드뭅니다. 이제는 유명한 편쌈군 이야기를 해 보겠는데 편쌈은 예전 전쟁 실습이라. 이 아래 나오는 사람은 말하자면 명장(名將)감 들입니다. 인사동 사람으로 이호보(李虎甫), 문성문(文聖汶), 김수동(金壽同), 사직골 사람으로 손개똥, 서석길(徐石吉), 김만쇠, 홍진흥(洪鎭興), 우대 사람으로 태곰보, 최명길(崔命吉), 윤희영(尹熙永), 송천만(宋千萬)이고, 강태진(姜泰鎭)이는 왕십리 사람, 박산흥(朴山興)이는 남대문 밖 사람이더랍니다. 하도일(河道一)은 편쌈꾼 대접 잘하기로 유명하였고 길한영(吉漢永)은 편쌈 붙이길 잘하기로 유명하였답니다. 이 역시 편쌈 역사에 잊지 못할 사람들입니다." (1924년 8월 5일자)
빈민굴(貧民窟)을 명물로 꼽은 동네도 있었다. 바로 봉래정(蓬萊町) 빈민굴이다. "염천교 건너서 똑같은 20여 채 집에 월세는 3원씩이요 지어 놓은 주인은 경성부요 세 든 사람은 대개 빈민이니 이것이 무엇인가 알지요, 봉래정의 빈민굴하니까 다 빈민으로 알지 마십시오. 여기 세 든 사람으로 월수입 70~80원 되는 분도 있답니다. 다시 생각하니 70~80원이 무엇이 많습니까. 그도 빈민이지요. 그러나 간신히 9원 수입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빈민이란 칭호가 이 사람을 안고 도니까 70~80원 수입하는 사람을 끌어오기가 어렵습니다. 9원을 벌어 가지고 세 식구가 한 달을 살았는데 10여 전이 남았더란 소문을 들으셨겠지요. 어떻게 살았는지 암만 생각하여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더러 물어보면 '우리야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라'할 것입니다. 한 끼 밥은 꿈 밖이라, 중국 밀가루 두어 줌이면 냄비 아래 연기가 일어납니다. 이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노력은 제일 많이 한답니다. 고생이야 고생이지요 마는 그들은 하늘을 우러러보아도 부끄럼이 없고 땅을 굽어보아도 부끄럼이 없을 것입니다." (1924년 7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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