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연속 흑자인데 GDP 역성장 이유 : 낙수효과의 '종언'

한정연 기자 2024. 8. 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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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수출 온기 내수로 퍼져야”
자동화 끝낸 제조업 수출 대기업
고용 없는 성장에 실질임금 감소
노무라 “韓, 나쁜 유형의 경상 흑자”

정부는 수출이 증가해 경상수지 흑자가 늘어나면 경제가 좋아진다고 말해왔다. 6월 수출은 9개월 연속 늘었고,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6년 9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그런데 2분기 경제성장률은 -0.2%였다. 수출의 온기가 민생까지 퍼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유를 알아봤다.

수출 증가에 힘입어 6월 경상수지 흑자가 6년 9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사진=뉴시스]

"올해 수출이 일본을 앞지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수출의 활력이 더 크게 살아나고 내수 시장으로 온기가 골고루 퍼지도록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30일 국무회의에서 언급한 말이다.

실제로 수출 증가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은 9개월 연속 1년 전보다 증가했고, 경상수지 중에서 상품수지는 15개월 연속 늘어났다. 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6월 국제수지 잠정치에 따르면 경상수지는 6년 9개월 만에 최대인 122억6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2%로 전 분기보다 역성장했다. 수출의 활력은 왜 내수로 이어지지 못했을까. 먼저 경상수지 흑자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경상수지가 흑자라는 말은 우리나라가 해외국가들과의 상품 수출입, 무형의 서비스 거래, 이자나 배당과 같은 소득거래, 대가 없이 주고받는 이전거래를 통해서 해외로 보낸 돈보다 국내로 들여온 돈이 더 많았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의 말처럼 수출이 내수의 온기로 연결되려면, 수출 대기업들의 수익 증가가 고용 증가, 임금 상승으로 이어져 민간의 구매력이 높아져야 한다. 높은 구매력으로 여러 물건과 서비스를 구매하면 소비가 증가해 경제가 성장한다. 이른바 낙수효과의 경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낙수효과의 경로는 이미 끊겨있다. 올해 우리 수출을 주도한 반도체, 자동차, 석유제품은 모두 제조업에 속한다. 6월 반도체 수출은 1년 전보다 50.4% 늘었고, 승용차와 석유제품은 같은 기간 각각 0.5%, 8.5% 증가했다.

그런데 제조업에 속하는 수출 대기업들은 기대만큼 고용을 늘리지 않았다. 통계청의 고용동향을 보면, 제조업 고용은 올해 1월 0.5%, 2월 0.9%, 3월 1.1%, 4월 2.3%, 5월 0.8%, 6월 0.2% 증가에 머물렀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 제조업은 이미 자동화가 끝났기 때문이다. 국제로봇연맹이 지난 1월 10일 발표한 '2023 세계 로봇공학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로봇밀도는 근로자 1만명당 1012대로 압도적인 세계 1위다. 2위 싱가포르가 1만명당 산업로봇이 73대, 2위 독일이 415대다. 그런데도 우리는 2017년 이후 산업현장에 로봇을 연평균 6%씩 더 늘리고 있다.

수출이 고용 증가에 기여하지 못했다면, 임금이 상승해 구매력이 높아졌을까. 이 또한 그렇지 않다. 오히려 줄었다. 물가를 반영한 실질임금은 2022년 -0.2%, 2023년 -1.1%로 2년 연속 감소했다. 올해 1분기 실질임금도 -1.7%로 줄었다. 실질임금은 4월과 5월에는 각각 1.4%, 0.5% 증가에 그쳤다.

수출을 늘려서 경상수지 흑자가 커질수록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는 통념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개발도상국 초기였던 과거에는 맞는 말이었지만, 더는 통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상수지 흑자는 수출이 많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역으로 수요가 적어서 발생할 수도 있다. 수요가 약하면 소비가 줄고, 이는 다시 경제 규모를 쪼그라뜨린다. 지난해 세계 최대 경상수지 흑자국과 최대 경상수지 적자국을 보면 이해가 쉽다. 지난해 경상수지 최대 흑자국은 2642억 달러를 기록한 중국이었고, 최대 적자국은 미국(-8188억 달러)이었다. 공교롭게도 그해 중국은 침체기를, 미국은 호황기를 누렸다.

롭 수바라만 노무라홀딩스 글로벌 거시경제 리서치 부문 대표는 2018년 발표한 '흑자 혹은 적자: 무엇이 경상수지를 움직이나'라는 보고서에서 "한국‧중국‧일본 등 동북아시아의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는 나쁜 유형의 흑자로 장기적 성장 잠재력 측면에서 긍정적이지 않다"며 "한국은 기업의 투자 기회가 제한돼 있고, 고령 인구가 은퇴를 앞둬 저축이 증가하면서 경상수지 흑자가 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우리나라 가계저축률은 2013년 4.5%에서 2020년 12.4%, 2021년 10.6%, 2022년 9.1%로 증가 추세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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