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소송’, 한동훈 자기 돈이어도 그랬겠나 [권태호 칼럼]

권태호 기자 2024. 8. 7.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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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18일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ISDS 중재판정부의 엘리엇 배상 판정에 대해 취소 소송을 내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지난 1일(현지시각) 한국 정부가 영국 상사법원에 낸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에 1389억원(법률비용 포함)을 배상하라는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 판정에 대한 취소 소송에서 패소했다. 애초부터 승소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지적했음에도, 지난해 7월 법무부는 취소소송을 강행했다. 이로 인해 우리 정부가 엘리엇에 물어야 할 이자와 변호사 비용이 더 늘어났다. 최소 수십억원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뉴스는 주말에 전해졌고, 예상을 깨지 않은데다, 내용도 복잡한 탓인지 언론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그대로 휘발됐다.

다소 긴 설명이 필요하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한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대주주다. 그런데 당시 이재용 회장의 제일모직 지분은 23.23%, 삼성물산 주식은 없었다. 두 회사를 합병해 이재용의 삼성물산 지분을 늘리는 게 삼성 경영권 승계의 마침표가 된다. 합병 때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 가치는 높게, 지분이 적은 삼성물산 가치는 낮게 책정하는 게 이재용에게 유리했다. 2015년 5월 결의한 합병비율은 제일모직 1주에 삼성물산 0.35주였다. 삼성물산 주식 7.1%를 보유한 엘리엇이 반대했다. 그러나 1대 주주 국민연금공단(11.21%)이 찬성해 통과됐다. 이로써 이 회장을 포함한 삼성 일가의 삼성물산 지분은 1.4%에서 30.4%로 늘어나 삼성전자를 안정적으로 지배하게 됐다. 국민연금이 평가한 적정 합병비율은 0.46이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국민연금이 이 합병 결정으로 최소 1138억원에서 최대 1658억원의 손해를 입었다는 보고서를 지난해 발표했다.

장부상 계산인 이득·손실을 실제화할 순 없다. 그러나 어쨌든 삼성 총수 일가엔 유리하고, 국민연금엔 불리한 결정을 국민연금 스스로 내렸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지시했고, 이 지시는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게 전달됐다. 이재용은 박근혜와 최순실에게 433억원을 건넸다. 박근혜는 뇌물·국고손실·직권남용 혐의로 징역 22년형, 이재용은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징역 5년형, 문형표와 홍완선은 직권남용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각각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는 국정농단 특검 재판 결과다.

엘리엇은 2018년 7월,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상설중재재판소에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 판정을 신청했다. 지난해 6월20일, 한국 정부가 패소했다. 한달 뒤, 법무부는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승소 가능성이 희박하다’, ‘차라리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구상권 행사,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게 낫다’고 했다.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를 무시했다. 50분가량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그는 “승소 가능성이 있다. 국민 세금을 낭비할 수 없다”고 했다. 그가 내건 주요한 이유는 “삼성물산 소수 주주의 한 명에 불과한 국민연금이 자신의 상업적 의결권 행사를 이유로, 다른 소수 주주인 엘리엇에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는 건 자본주의 상법상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한 가지가 빠졌다. 국민연금이 그 결정을 온전히 스스로의 경영적 판단에 의해서 했느냐는 점이다. 한 장관은 ‘승소 가능성이 낮지 않으냐’는 기자들 질문에 “충분히 저는 해볼 만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최선을 다할 거란 말씀드립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엘리엇 배상 판정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검사 시절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수사한 국정농단 사건 재판 결과를 반영한 것이다. 위치가 달라졌다고, 판단마저 달라지는 건가. 당시 회견에서 ‘구상권 논란을 피하기 위해 소송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있었다. 이에 한 장관은 “제가 왜 그래야 하죠?”라고 되물었다. 예상대로 패소한 지금, 법무부는 또 “항소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국민들이 묻는다. “국민들이 왜 리스크를 계속 져야 하죠?”

왜 결정을 내린 이들, 이득을 본 이들에 대한 책임은 애써 외면하는가. 왜 자기 확신을 국민 돈으로 확인하려 하는가. 한 장관과 법무부는 자기 돈으로 감당해야 하는 재판이었어도 이런 결정을 내렸을지 의문이다. 만일, 진다는 걸 알고도 소송을 냈다면 ‘배임’이다.

삼성한테 별도로 돈을 받은 엘리엇이 소송을 낸 것, 중재재판소가 엘리엇 손을 들어준 것, 그리고 거액의 돈을 국민 세금으로 치러야 하는 것, 모두 다 마뜩잖다. 그러나 관할권을 이유로 중재재판소 판정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내봐야 뒤집힐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건 당시에도 현실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한 대표는 입만 열면 “유능하자”고 말한다. 이게 유능의 결과인가. 엘리엇 소송에 관한 한, 한 대표는 ‘바보’ 아니면, ‘사기꾼’이다.

논설위원실장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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