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도 견디는 안전한 배터리, 대기업만 만든다는 편견 깰 것" [스케일업리포트]
국내 유일 고성능 LTO 제조
영하 35도 혹한서도 방전 안돼
급속충전·긴 수명·안전성 강점
국내·외 고객사 20곳 확보
中 의존 줄이려는 선진국들 관심
연말 年200만셀 규모 공장 완공
최근 인천 지역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로 배터리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극한의 환경에서도 터지지 않는 배터리가 주목받고 있다. 바로 리튬티탄산화물(LTO) 배터리로 기존 2차전지에 비해 150도 가량 더 높은 온도에서도 폭발하지 않는 제품이다. 방전 가능성이 높은 극한의 추운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어 선박, 철도,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다양한 시장에서 활용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스타트업 그리너지는 고성능 LTO 배터리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제조하는 기업으로 대량생산 체계 구축과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방성용(사진) 그리너지 대표는 7일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에 위치한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2022년 충주 공장에서 LTO 배터리를 소량 생산하는 데 성공한 후 현재 여주에 연 생산능력 200만셀 규모의 대형 공장을 짓고 있다”면서 “안전성, 빠른 급속 충전, 긴 수명을 갖춘 배터리 기술력을 갖춘 덕에 국내외 고객사 20곳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그리너지는 글로벌 기업에서 전기차나 2차전지 분야를 연구하던 엔지니어들이 모여 2017년 2월 설립한 배터리 전문 스타트업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등 국내외 여러 투자자들로부터 현재까지 총 340억 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임직원으로는 총 55명을 두고 있다. 방 대표 역시 테슬라와 애플 등에서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 20년 넘게 몸담은 전문가다.
그가 LTO 배터리에 주목한 것은 무엇보다 안전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배터리는 기존에 음극으로 사용되던 흑연을 티탄산화물로 대체한 것으로 안전성, 빠른 급속충전, 긴 수명 등 성능을 구현했다. 방 대표는 “기존 2차전지가 200도 초반 이상의 환경에서 열폭주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반면 LTO 배터리는 400도까지 견디는 폭발 안전성을 갖추고 있다”면서 “영하에서 쉽게 방전되는 기존 배터리와 달리 영하 35도에서도 배터리가 꺼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열폭주란 배터리가 과도하게 충전되거나 내부 온도가 특정 수준 이상으로 오를 때 분리막이 붕괴하면서 순식간에 1000도 이상으로 온도가 치솟는 현상을 말한다. 이달 1일 인천 청라에 위치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건의 원인도 중국산 배터리의 열폭주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방 대표는 “그리너지의 LTO 배터리는 총알 관통시험 등 미국 국방부 안전성 시험도 통과했는데 국방부 테스트는 웬만한 완성차 업체의 인증보다 까다롭다”면서 “미 국방부 차량개발센터와 함께 군 차량용 배터리도 공동 개발하고 있으며 이미 미국의 민간 우주 업체에는 인공위성에 탑재되는 배터리를 납품했다”고 말했다.
극한의 환경에서도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어 다양한 수요처로 공급이 기대된다. 대형선박, 철도, ESS는 물론 방산, 중장비 시장에 활용될 것이란 게 방 대표의 설명이다. 실제로 그리너지는 국내 대형 조선사와 2025년 양산 시작을 목표로 자사 LTO 배터리가 탑재된 무정전전원장치(UPS)를 개발 중이다. 방 대표는 “LTO 배터리는 출력이 우수하기 때문에 선박, 철도, 중장비 등 전동화 전환이 어려웠던 산업에도 쓰일 수 있다”면서 “해외 주요국에서 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LTO 배터리가 납축전지를 점차 대체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이어 “대형선박의 경우 LTO 배터리가 디젤엔진 대신 탑재될 수 있다”면서 “기존 지하철에 들어가는 니켈카드뮴 배터리를 대체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라고 부연했다.
특히 흑연을 대체할 수 있다는 특성 덕분에 그리너지 배터리는 지난해부터 부쩍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방 대표는 “흑연과 관련한 밸류체인은 이미 중국이 장악한 상태라 기존 리튬이온배터리를 쓰게 되면 중국산 소재 공급망에 의존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면서 “중국산 소재 의존도를 낮추려는 선진국에서 LTO 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전 세계에서 LTO 배터리를 제조할 수 있는 기업은 그리너지 외 4곳 정도 안팎에 불과하다. 일본 도시바가 처음으로 상용화에 성공했지만 도시바 제품보다 성능을 개선했다는 것이 방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도시바의 배터리에 비해 에너지 밀도가 5~10% 높다”면서 “다른 경쟁사인 중국 업체들의 경우 품질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그리너지가 7년 간 출원한 특허는 22개이며 이중 11개가 등록 완료됐다.
방 대표의 목표는 대기업 위주의 국내 배터리 시장에서 스타트업의 존재감을 키우는 것이다. 방 대표는 “해외에선 퀀텀스케이프 같은 스타트업이 전고체 배터리 분야 기술력으로 선두주자로 평가받고 있는데 한국에선 LG, 삼성, SK 등 대형 배터리 기업이 시장을 주도한다는 인식이 크다”면서 “스타트업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2차전지 시장에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시장의 편견을 깨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주 내 2만6870㎡ 규모 부지에 들어설 대형 공장에는 2024년 12월까지 약 1000억 원이 투입된다”면서 “이 공장이 가동을 시작하는 2025년부터 매출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리너지는 2028년 기준 37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국내에 이어 해외에도 생산 거점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실제로 영국 친환경에너지 기업인 스냅패스트와 함께 영국 연구혁신청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영국에서 LTO 배터리 현지 생산을 위한 합작회사(JV)를 설립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기술력와 사업성을 인정받은 그리너지는 지난 6월 중소벤처기업부 주관 2024년 예비유니콘 기업으로 최종 선정됐다. 이 프로그램에 선정되는 스타트업은 매년 15개사에 불과하다. 예비 유니콘 기업으로 선정될 경우 기술보증기금으로부터 최대 200억원의 특별보증, 한국거래소 기술특례상장 자문 서비스, 글로벌 진출을 위한 컨설팅 서비스 등 다양한 지원을 받게 된다. 방 대표는 “현재 2차전지 단점의 대안을 제시하고 높은 시장성이 있다는 게 공식적으로 인정 받았다”면서 “스타트업으로서 신속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이점을 살려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리튬티탄산화물(LTO) 배터리
=리튬티탄산화물(LTO) 배터리란 기존 리튬이온배터리 내 음극에 들어가는 흑연 대신 티탄산화물로 대체한 제품이다. 티탄산화물(TiO2)은 티타늄과 산소로 이뤄진 무기물질로 플라스틱·도료·고무·제지 등 실생활에 널리 적용된다. 이를 통해 400도까지 폭발하지 않는 안전성, 고출력, 장수명 등 기능을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선박·철도·에너지저장장치(ESS)에 주로 탑재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김기혁 기자 coldmetal@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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