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고립은둔 자녀들에게 필요한 건 '기다림'… "억지로 바꾸려 하거나 자책하지 마세요"
단순 강의식보다 참여형 실습으로
"상담·일자리 등 패키지 지원 필요"
“고립은둔 청년들이 부모님들에게 꼭 전해달라는 말이 뭔지 아세요? '냅둬'예요.”
지난달 23일 오후 7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삼경교육센터. 서울시가 주관하는 '고립은둔 청년 부모교육' 강의를 찾은 수강생 30여 명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부모도 있었지만 지친 부모를 대신해 나온 고립은둔 청년의 형제자매도 있었다. 사정은 각기 달랐지만 강의가 진행되는 3시간이 언제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수강생들의 집중도는 높았다.
수업 중 질문을 쏟아내거나, 자녀를 밖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했던 노력까지 일일이 열거하며 답답함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 수강생은 "아이와 대화의 물꼬조차 트기가 어려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강의를 찾았다"며 "여러 가지 조언을 들을 수 있는 만큼, 강의 내내 메모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대 고립은둔 자녀를 둔 한 부모는 "컴퓨터를 좋아하는 것 같아 수백만 원어치 컴퓨터 장비를 사주기도 했는데, 상황이 나아지기보다 더 움츠러드는 것 같아 걱정이 많다. 인터넷 중독으로 빠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조언을 한답시고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이날 강의 주제는 '고립은둔 자녀와의 소통법'. 우선 부모 자신이 살아온 삶과 인생에 대해 되돌아보면서 스스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마주하는 단계부터 시작했다. 강의를 맡은 김명진(49) 파이나다운청년들 사업지원팀 매니저는 "내가 누구인지, 어떤 상태인지를 먼저 알아야 자녀를 올곧게 마주할 힘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강생들에게 A4 용지를 건네며 지금껏 인생을 살면서 스스로에게 상처가 됐던 말이나 상황은 어떤 게 있었는지 적은 뒤, 옆 사람과 종이를 교환해 하고 싶은 위로의 말을 나눠보자고 했다. 부모들은 오랜 세월 묻어둔 감정을 꺼내기 쉽지 않은 듯 깊은 생각에 잠겼지만 종이는 금세 빽빽해졌다. 기자도 함께 참여했다. 숨기고 싶은 상처를 끄집어내는 것만큼이나 상대방에게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할지 망설여졌다. 이내 교실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눈물바다가 됐다.
"부모가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물론 기다림은 쉽지 않은 과정이죠. 그렇지만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 자녀를 지지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해요.”
고립은둔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들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자신 때문에 자녀가 은둔하는 것은 아닌지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고립은둔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은 ①부정 ②분노 ③타협 ④우울 ⑤수용 등 5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20대 은둔 자녀를 둔 한 부모는 "부모 된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가장 크다"며 "이제는 그저 아이가 정서적으로 행복하고, 말 한마디라도 나눌 수 있길 바랄 뿐"이라고 털어놨다. 이에 김 매니저는 "자꾸 뭔가 해주려고 하기보단 자녀가 스스로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마음처럼 따라오지 않는다고 해서 자책하거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는 '상호 조력자' 관계 형성이 문제해결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고립은둔 청년 54만... 부모 교육은 걸음마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9∼34세 청년 중 5%가량인 약 54만 명이 고립은둔 상태인 것으로 추산된다. 더 이상 개인이 아닌 사회문제로 보는 움직임도 늘어나고 있는데, 현재 전국 57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를 제정해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하지만 부모 교육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서울시는 올해 처음으로 부모교육 1기 수업을 시작했다. 매주 3시간씩 8주간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 △부모의 자기 탐색 △고립은둔 자녀 소통법 △인지행동 치유 프로그램 △사례발표 등으로 구성됐다.
서울시는 이 밖에도 최근 고립은둔 청년들의 사회 복귀를 위해 종로구에 '서울청년기지개센터'를 열었는데 특성에 맞는 각종 참여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상호응원과 지지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부모 교육 역시 그 일환이다. 박세희 서울시 청년활력팀 주무관은 "비슷한 처지의 부모가 모여 공감대를 형성하고 경험도 나눌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통합지원 모델 필요... 사회 인식 바뀌어야
고립은둔 청년을 향한 외부 시선은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가족들을 향해서도 "자식 교육 제대로 못한 부모"라는 '낙인'을 스스럼없이 찍는 경우도 허다하다. 김 매니저는 "고립은둔 청년 문제는 고도성장이라는 그늘 아래 회피하고 싶었던 사회 군상 중 하나였을 것"이라며 "인식 개선과 함께 법률, 상담, 일자리 등 통합 패키지형 지원 모델을 통해 무너진 가족의 일상이 회복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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