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역 사고원인? 블박 속 엔진소리 쪼개"…국과수가 찾아낸 단서
"신발 밑창부터 블랙박스 음성까지 다 찾아내요."
지난 6일 오전 강원 원주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전우정 국과수 교통과장은 밑창에 가속 페달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신발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국과수 교통과는 파손된 차량 흔적을 분석해 사건을 재구성하고 사고 원인을 파헤치는 역할을 한다.
그는 지난달 발생했던 시청역 역주행 사고 역시 신발로 사고 원인을 분석했다. 당시 운전자가 급발진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국과수는 신발 밑창에 가속 페달 표시가 된 것을 확인했다.
전 과장은 "가속페달이나 브레이크를 꽉 밟고 있는 상태에서 정면 충돌하면 슬립이 발생해 마찰열이 발생하고 흔적이 남는다"며 "과거에는 운전자 바꿔치기 사건이 있을 때도 자주 사용한 감정 기법"이라고 말했다.
국과수에 따르면 급발진은 자동차가 정지상태 또는 매우 낮은 초기 속도에서 의도하지 않고 예상하지 않는 고출력의 가속도를 내는 사고를 말한다. 쉽게 말해 가속 페달을 살짝 밟거나 아예 밟지 않은 상태에서 차량이 튀어나가는 것이다.
국과수는 보통 사건 의뢰가 들어오면 차량 사고 내역, CCTV(폐쇄회로TV), 블랙박스 등을 살펴본다. CCTV에 보조제동등에 불이 들어왔는지, 차량 손상부위와 주 충격 방향이 일치하는지, 에어백이 터졌는지 등을 검토한다.
차량에 내장된 EDR(사고기록장치)도 함께 살펴본다. EDR은 사고가 발생하기 5초 전부터 사고 발생 후 0.3초까지 약 5.3초 동안 자동차 데이터를 기록한다. 제동 페달 작동 여부, 조향 핸들 각도, 속도변화 등 67개 항목들이 모두 기록된다.
전 과장은 "현장에서 3D(3차원) 스캐너로 주변 환경을 촬영한 뒤 EDR 데이터를 활용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사고 현장을 재구성한다"고 말했다.
신뢰성 검증을 위해 블랙박스 음향 주파수도 분석한다. 엔진이 돌면 변속기를 통해 속도가 조절되고 바퀴 역시 굴러가게 된다. 전 과장은 "자동차는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엔진 회전수가 결정되면 차속이 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국과수는 차량 블랙박스에서 차 엔진 소리를 '쪼갠다'. 프로그램을 이용해 여러 주파수를 분해한 뒤 엔진이 폭발하면서 나타나는 주파수를 걸러낸다. 해당 내용을 분석하면 회전 수 뿐만 아니라 차량 속도도 계산할 수 있다.
전 과장은 "EDR에 기록되어 있는 엔진 회전수와 전혀 별개에 있는 블랙박스 음향을 가지고 엔진 회전수를 비교한다"며 "이번 시청역 교통사고 역시 해당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해 동일한 값이 확인되면 엔진 제어기에서 EDR로 송출되는 기록들(엔진 회전수·가속페달 밟음량 등) 신뢰성이 검증된다"며 "추가로 컴퓨터 시뮬레이션 통해서 기록의 신뢰성을 한번 더 검증한다"고 말했다.
급발진이 발생할 수 있는 경우는 크게 네 가지다.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잘못 누른 경우 △가속 페달이 메트에 끼는 경우 △차량의 구조적인 결함 때문에 페달이 고장나서 복원이 안되는 경우 △ETCS(전자스로틀제어시스템) 결함에 의한 경우다.
자동차 엔진은 외부 공기를 빨아들여 연료와 혼합한 뒤 폭발을 일으키면서 동력을 발생시킨다. 이때 스로틀밸브가 개폐를 반복하며 흡입 공기량을 제어한다. ETCS는 전기적 신호에 의해 스로틀모터가 작동하는 밸브를 개폐하는 시스템이다.
2010년부터 올해 5월까지 국토교통부에 접수된 급발진 의심 신고는 모두 793건이다. 현재까지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는 없다.
미국에서는 2013년 토요타 자동차의 급발진 사고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토요타는 피해자들과 합의를 하고 리콜도 진행했지만 급발진을 공식 인정하지는 않았다. 소비자 권익을 고려해 합의한 것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전 과장은 "지금의 자동차는 설계나 생산에 있어 무조건 국제 표준을 따르고 있다"며 "주요 센서나 메인 CPU에는 소프트웨어 이중화 장치가 있어 안전성을 강화한다. 브레이크도 밟으면 무조건 멈추는 구조"라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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