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수사지휘권 내로남불

민병권 논설위원 2024. 8. 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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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 ‘지휘권 폐지’ 주장하다 ‘불구속’ 지시
김 여사 조사 ‘총장 패싱’에 논란 재점화
지휘권 문제 이중잣대 없애야 신뢰 회복
‘檢 독립성-수사권 남용 방지’ 균형 필요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 7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이틀 전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의 ‘김건희 여사 비공개 대면 조사’ 사후 보고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지금 (법무부) 장관은 커다란 착각에 빠졌습니다. 장관이 하는 생각은 옳고 중립을 보장하는 것이고, (과거 전임자들이) 그때 하던 것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2005년 10월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주호영 한나라당 의원의 질책이 비수처럼 꽂혔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내로남불’ 행태에 대한 지적이었다. 천 장관은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이었던 1996년 구체적 사건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관여를 반대하며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를 담은 검찰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랬던 그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뒤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2005년 불구속 수사를 지시하자 이중 잣대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이후 19년이 지나도록 수사지휘권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서울중앙지검 검사들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및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사건과 관련해 지난달 20일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비공개로 대면 조사했다. 조사 과정에서 이원석 검찰총장에게 사후 보고하는 ‘총장 패싱’ 논란을 일으키자 지휘권 이슈까지 재점화됐다. 이에 7월 22일 이 총장은 ‘법불아귀(法不阿貴·법은 신분이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를 인용하며 수사팀을 공개 질책해 여러 해석을 낳았다.

서울중앙지검은 검찰총장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의 수사지휘 라인에서 배제돼 사후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10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 지휘 라인에서 검찰총장을 뺐다.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 대통령이 김 여사의 배우자라는 게 배제 조치의 이유였다. 그런데 이후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바뀌어도 후임 장관들은 해당 사건에 대한 총장 지휘권을 복원하지 않았다. 이 총장도 올 7월 초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게 도이치모터스 사건 수사지휘권 회복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법무부는 ‘검찰총장 지휘권 복원도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므로 극도로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박 장관의 입장을 공개했다.

그 배경이야 어찌 됐건 의문점이 남는다. 이 총장은 2022년 9월 취임 이후 여태 무엇을 하다가 2년 임기 만료를 앞두고 지휘권 복원을 요청한 것인가. 박 장관 입장도 이해할 수 없다. 역대 법무부 장관들이 지휘권 발동을 자제한 까닭은 검찰에 대해 외압 행사를 피하려는 차원이었다. 그런 취지라면 이 총장을 수사지휘 라인에 복귀시켜 외풍에 대한 검찰의 바람막이 역할을 맡기는 게 순리였을 것이다.

다른 주요국들의 수사지휘권은 어떻게 규정돼 있을까. 프랑스는 2013년 개별 사건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을 폐지했다. 반면 미국은 연방 법무부 장관에게 구체적 사건의 지휘권을 부여했다. 독일에서는 사문화되는 듯했던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이 2015년 발동됐다. 일본은 법무대신이 검찰총장 격인 검사총장만을 지휘하도록 규정했다. 이처럼 선진국마다 제도는 다르지만 공통된 지향점은 있다. 검찰 수사 독립성 강화 및 수사권 남용 방지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제도 역시 균형점을 지향해왔다. 검찰청법은 검찰총장에게 2년 임기를 보장하고 소속 검사 지휘권을 부여했다. 또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패싱해 직접 개별 사건을 지휘할 수 없도록 했다. 검찰총장 지위를 보장해 검찰 수사에 대한 외풍을 막도록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검찰청법은 법무부 장관에게 검찰 사무에 관한 일반적 검사 지휘·감독권을 주고 총장 임명 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했다. 수사권 남용 방지를 위한 민주적 통제장치들이다.

물론 윤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를 공약했고 민주당은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을 주장해 현행 제도의 존속 여부를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의 여러 사법적 의혹 및 김 여사 관련 의혹에 대한 수사·재판이 완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야가 검찰 제도를 손질하려 든다면 역풍을 맞을 수 있으므로 입법 논의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수사 당국은 여야의 정치 논쟁을 뒤로 하고 일단 현행 제도의 틀 속에서 수사지휘권 문제를 균형감 있고 공정하게 풀어가야 한다. 그것이 천 장관 때와 같은 ‘사건 관여 내로남불’ 논란 재발을 막고 국민 신뢰를 쌓으면서 검찰 독립성을 지키는 길이다.

민병권 논설위원
민병권 논설위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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