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영의 이면]‘이재명의 민주당’, 이 지독한 균열 앞에서

구혜영 기자 2024. 8. 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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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서 다음으로 가는 길엔 균열이 있게 마련이다. 다음, 그 다음은 진화와 후퇴를 거듭해야 다다르게 된다. 진화하기 보다 때로 바닥으로 가거나 후퇴하는 경우가 더 많을 수 있다. 그러나 바닥은 뭐든 받아내고 힘이 세다. 넘어지면 바닥을 짚고 일어서야 하고, 씨앗도 바닥에서부터 자란다. 진화의 역행이라는 균열을 이겨내기 위해선 성찰이 필요하다. 이 때 성찰은 바닥의 힘을 믿는 것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시인 송기원 만큼 균열과 성찰에 한 생애를 던진 이가 있을까. 특히 시는 그 인생의 가장 뜨거운 불길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나선 이재명 후보가 지난 4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자 합동연설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춘의 한때 그의 첫 시집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를 끼고 다녔다. 1980년 서울의 봄 때 유신잔당 장례식을 주도했고, 그 때문에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던 그였다. 군부독재의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체중 30㎏를 앗아간 고문으로 생사의 기로에 선 적도 많았다. 그러나 그의 시는 김남주와 같은 투사의 언어가 아니었다. 탐미적이었다. “어머니 동이 트는 능선마다 달려오는 눈부신 새벽의 사람들을 위하여 아직은 잠들지 마세요”(‘편지’)라고 한 것처럼. 그의 동료들은 그의 절규를 굴절된 역사를 사는 사람의 도리, 어떤 순간엔 시인도 들고일어나야 한다는 걸 아는 순수함이라고 했다. 그는 격정과 섬세함 사이의 균열을 딛고 우리에게 첫 말을 건넸다.

두 번째 시집 <마음 속 붉은 꽃잎>은 낯설었다. 뒷골목 인생들과 함께 한 술 때 묻은 시가 많았다. 민중의 울타리에서조차 배제된 그들에게 말하기 보다 그들의 말을 듣는 데 집중했다. “징허제만 겔국은 여그가 바로 나를 밥 믹에 살레준 덴께. 이 나이가 된께 손님들도 모다 남 같지가 않어라우.” 남도 항구 한 늙은 성매매 여성의 말에서 그는 자신을 만났다고 했다. 세상 아랫단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찾았고, 그토록 저주했던 자기 운명도 위로받았다는 고백이다. 혐오와 화해의 균열 속에서 자기 구원의 길을 찾은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균열은 끝나지 않았다. 짦은 시어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서사 때문일지 모르겠다. 4번의 옥고, 빨갱이 아들을 뒀다는 낙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머니, 백혈병으로 먼저 떠난 딸. 그래서 그는 소설을 썼다. 그의 문학이 어머니의 무덤으로부터 시작됐음을 알린 <다시 월문리에서>, 죽은 딸의 유골을 안고 49일을 떠돌다 딸의 영혼과 화해하는 <숨>을 통해 그는 그토록 혐오했던 자신의 삶과 화해할 수 있었다.

막바지 전당대회에 이른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전 대표를 보며 균열과 성찰의 길을 생각한다. 이재명의 처음은 생존과 인정 투쟁이었다. 민주당은 ‘이재명적인 것’ 보다 ‘민주당적인 것’이 더 강했다. 하지만 총선 전후 달라졌다. 사당화, 패권주의, 팬덤 정치, 당심·민심 괴리와 같은 어두운 균열이 민주당을 휘젓고 있다. 민주당이 민주당답게 강해지려면 통합, 열린 리더십, 다원주의, 당심·민심 동행이 더 낫단 걸 이 전 대표도 민주당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정작 발길은 ‘이재명의 민주당’을 향하는 것 같다. 최근 만난 인사들의 말을 대충만 추려 봐도 당내에서 이런 징후가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처음 보는 이 전 대표 측 젊은 친구가 내 거주지를 묻더니 ‘지방선거에서 OO시장 나갈 생각 없냐’고 묻더라”(전직 고위 당직자), “지도부가 최근 총선기여도 평가위원회를 만들었다. 지방선거에 내보낼 ‘복당 결격 사유자’가 있는 것 같다”(고참 보좌관)라고 했다.

전대는 당 간판뿐 아니라 당 깃발을 확정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강령이 당 깃발이다. 예년 전대에선 신강령기초위원회 같은 기구에서 개정할 강령을 논의·확정한 뒤 지역 전대 때마다 소개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번엔 이런 절차를 생략하고 논란이 가라앉지 않은 이재명 어젠다를 막판에 부랴부랴 강령으로 채택했다.

성공한 야당 대표들은 미래를 말하면서 국민과 함께 갔고, 국민은 야당 대표의 이런 리더십을 보며 차기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4대 강국 안보 통일외교론을 설파하며 수권 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 전 대표는‘이재명의 민주당’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서민과 중산층 정당의 품을 얼마나 넓힐 건지, 민주당답게 강해지는 길이 무엇인지, 이를 위해 스스로 어떻게 변할 건지 제대로 말하지 않고 있다. 최고위원 후보군 낙점에서 보듯 오히려 당권 강화에 신경 쓰고 있다. 일부에선 이 전 대표를 “대통령이 되면 잘할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유력 대선주자인 이상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잘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이 전 대표는 헤아려야 한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결코 민주당의 균열을 치유하는 성찰이 될 수 없다. 대선에 특화된 국민의힘을 이길 수도 없다.

송기원은 격동의 시대를 서정의 힘으로 견뎠고 가장 낮은 사람들을 품으며 고통스런 개인사를 치유했다. 생전 입버릇처럼 ‘아직 가깝고도 먼 세상길을 헤맨다’고 했지만 스스로를 괴롭혔던 균열의 본질을 알았고, 성찰의 노력을 다했기에 ‘지상의 마지막 인간’으로 설 수 있었다. 이 춥고 긴 겨울을 뒤척이는 정치의 균열을, 언살이 터지도록 성찰한 이재명과 민주당의 다음을 기다린다.

구혜영 정치부문장

구혜영 정치부문장 koo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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