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수급 사각지대 줄이려면 가입 사각지대부터 돌봐야 [왜냐면]
이은주 |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정책위원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 때 우선 고려하는 부분이 (적용)대상이다. 국민연금은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인구가 의무가입 대상인 보편적 제도다. 누구나 노후를 맞이하므로 노년기 소득보장은 보편적 욕구이며, 노후대비는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일이다. 그런데 경제활동을 하면서도 연금가입자가 되지 못해 노후를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른바 사각지대다.
가입기간에 보험료를 납부한 후 노년기에 소득을 보장받는 연금제도의 사각지대는 가입 사각지대와 수급 사각지대로 나눌 수 있다. 수급 사각지대는 연금을 받지 못하거나, 적은 연금을 받는 현재의 노인들에 해당한다. 1988년부터 연금제도가 시작되었으므로 이들은 가입기간을 충분히 채우지 못해 연금 받을 자격을 얻지 못하거나, 낮은 보험료를 납부한 결과로 저 연금자가 되어 노후소득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연금제도는 매달 경제활동인구의 보험료를 걷어서 노인들에게 분배하지만, 수급자의 입장에서는 경제활동 시기의 연금 납부 기록이 노년기 공적 이전소득에 영향을 미친다. 현재 이들은 기초연금을 받아 노후소득을 보충하고 있다.
가입 사각지대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는 소득이 없는 주부나 학업 중이어서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는 학생 등 경제활동인구 중 연금가입이 안 된 이들이다. 이들은 경제활동인구의 약 14%를 차지하지만(2020년 기준), 소득이 발생하면 가입자로 전환할 수 있다. 둘째는 가입 사각지대는 소득이 있으면 당연히 의무 가입 대상인데 가입을 못 하는 사람들로 다양한 노동형태 속에서 임금노동자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시간제 노동자나 특수고용형태의 노동자로 분류되는 비정규직 노동자, 불안정노동자가 여기에 속한다. 셋째는 연금가입했지만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소득단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둘째 사각지대와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 노동시장의 진입과 퇴출을 반복하다 보면 충분한 가입기간을 충족시키지 못할 수 있다. 개인의 고용상 지위, 노동 상황에 따른 특성이 사회보험의 자격으로 간주되어 ‘누구나’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줄지 않고 있다. 가입 사각지대 문제는 노인이 되어 수급 사각지대로 빠질 위험이 크다는데 있다.
사각지대는 경제위기 이후 일시적인 현상인 것처럼, 그래서 차츰 보완해나가면 될 것처럼 간주해 왔다. 그러나 일하면서도 임금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줄지 않고 있다. 2023년 기준 통계청 자료를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약 37%를 차지하며 이들이 사각지대에 빠질 위험이 크다. 국민연금이 노후의 주요 소득원으로 인식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이들을 소극적으로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국민연금은 공동의 노후 준비이므로 여타의 사회복지정책처럼 자격 있는 사람을 가려내고 혜택을 주고 안 주고의 문제에 천착해서는 안 된다. 연금제도는 나의 경제활동 시기에 사회적으로 노인을 부양하고, 내가 노인이 되어 다시 부양을 받는 사회의 순환구조로 작동한다. 근로활동을 시작하는 국민이라면 의무 가입이 되어 보험료를 내고, 보험료 납부를 통해 노후의 생활보장 일부를 약속받는다. 기록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노년기 소득보장을 받을 권리는 보험료 납부를 통해 시작된다. 그런데 가입조차 평등하지 못한 곳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며, 그 조건도 노동의 형태에 따라 차별이 이루어지니 타당하지도 않다.
사각지대 문제는 재정을 중시하는 연금전문가들이 소득대체율 인상보다 더 먼저 해결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궁극적으로 노동시장을 개선한다든가 임금노동자가 아닌 다양한 노동형태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가입자격을 유지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제안하지는 않는다. 또한 이들은 사각지대를 구분하지 않고 수급 사각지대만 생각해서 기초연금 강화만 강조한다. 기초연금은 보충적인 제도이다. 온 국민이 국민연금으로 자신의 노후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기반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가입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가입기간에 제대로 돌보지 않아 이들이 수급 사각지대로 쉽게 빠지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적정한 소득대체율의 보장과 다양한 소득원을 인정해서 보험료를 납부하게 하고, 국가가 적합한 시점에 지원하는 방식으로 설계가 맞춰져야 안정적인 공적 노후소득보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기대하기에는 지금 정부가 연금제도에 너무나 무관심하다는 점이 가장 안타까운 현실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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