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비수기 '젊은 전시'로 틈새 공략
사회 폭력 파고든 노예주
서울시립미술관 주최展
일본 카쿠타니·최민혜는
서정아트부산서 신작 펼쳐
박보나, 갤러리조선 전시
8월 국내 미술관과 갤러리들은 죄다 '전시 준비 중'이다. 9월 첫 주 프리즈위크를 앞두고 전시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휴가철을 맞아 방문객도 뜸해지는 이 시기, 젊은 작가들은 부지런히 '틈새 전시'를 열고 있다. 노예주 변웅필 황규민 박보나 최민혜 등 한국 미술을 이끌 기대주들을 만날 기회다.
서울시립미술관 주최로 합정지구는 노예주(28)의 '거친 모래가 뱀의 머리에 닿지 않도록'을 8월 18일까지 연다. 메두사와 페르세우스의 대립을 모호하게 만드는 구절에서 제목을 딴 전시로, 사회의 구조적 폭력에 문제 제기를 한다. 21점의 회화는 동물권 활동인 '비질(Vigil)' 현장, 명동 재개발 2지구 농성장 등 작가가 그간 활동한 현장을 담아냈다. 화사한 색채의 그림 속에는 단일대오를 형성한 전투경찰들, 운동화 끈을 묶는 시위 참가자 등의 표정이 생생하다. 미술관은 "미세하지만 예민한 감각을 향하는 노예주의 시선을 통해 오늘날의 거대한 현실세계의 폭력 앞에서 작가가 취하고자 하는 태도를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갤러리조선에서는 8월 2일부터 9월 22일까지 박보나(47) 개인전 '휘슬러스(Whistlers)'를 열고 있다. 예술과 삶, 노동 사이의 경계에서 글을 쓰고 작업을 해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여성의 우정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탈성매매여성 지원단체 '윙'과의 오랜 인연을 바탕으로 영상 작업을 제작했다. '휘슬러스'는 2023년 워크숍에서 '윙'의 여성 12명이 서로의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옆 사람의 휘파람을 이어 부는 퍼포먼스 영상이다. 서로 숨을 보태주는 마음은 시가 되어 작가의 지인들이 기부한 티셔츠에 '휘파람 부는 법'으로 새겨진다.
'휘휘파파'는 여성들이 자신의 친구에게 쓴 손편지 여섯 통을 두 명의 배우가 읽는 영상 작업으로, 언어와 논리를 넘어서는 감정적 친밀함을 속삭인다. 그 친밀함은 2023년 '윙'의 워크숍에서 했던 좋아하는 것을 손에 쥔 마음을 그린 '산'으로 이어진다. 배은아 독립 큐레이터는 "박보나는 미술이 되어버린 타자의 삶을 타자의 삶 속에 살아 있는 진실로 되돌려 보내는 우정 어린 선언을 시작한다"고 평했다.
바다의 도시 부산에서도 특별한 2인전이 열린다. 8월 25일까지 서정아트 부산에서 키쇼 카쿠타니(31), 최민혜(31)의 'Un certain regard'가 열린다. 해수욕을 즐기는 인파가 가득한 바다가 캔버스에 펼쳐진다. 커튼이 드리운 것처럼 시선이 가려진 이 그림의 작가는 카쿠타니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현실의 장면을 작품의 모티브로 활용했다. 이 '필터'는 작품과 관람객이 만나는 통로이자 캔버스 너머로 확장되는 세상의 이미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최민혜의 화폭에는 고전주의 조각상과 울창한 자연이 함께 등장한다. 이집트 신화의 죽음의 신 아누비스에서 영감을 받은 회색 생명체 '이미지 헌터'가 붓을 들고 현대미술의 오브제를 사냥하는 흥미로운 모습이 펼쳐진다.
8월 23일까지 황규민(32)의 개인전 'ㅂㄷ'도 서울 망원동 얼터사이드에서 열리고 있다. 갤러리띠오가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전시다. 작가는 예술에서의 '반달리즘'을 해체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도전에 나섰다. 반달리즘은 일반적으로 문화재나 예술 작품의 의도적인 파괴를 의미하지만, 황규민 작가는 이를 창작 과정에 비유한다. 창작을 위해 재료를 분해하고 변형시키며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VD 시리즈'는 자신의 전작 '미의 도상'(2022)에서 영감을 받아 비너스상을 재해석한다. 전통적인 미의 기준에 도전하고, 고의로 이미지를 변형해 새로운 미적 기준을 탐구한다. 'BD 시리즈'는 변태 중인 번데기 형태의 설치 작업으로 창작 과정의 부산물이 만든 새로운 미학을 제시한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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