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XY염색체 논란’ 보도, 혐오를 보여줬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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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올림픽 여자 복싱 경기에서 이마네 칼리프(알제리)가 거둔 기권승을 놓고 국내 다수 언론은 이 선수가 'XY염색체'를 가지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는 보도를 앞다투어 내놓았다.
논란은 파리올림픽 여자 복싱 4강전에서 칼리프 선수가 이탈리아 선수를 상대로 40여초 만에 기권승을 거두며 시작됐다.
칼리프 선수 당사자가 자신의 염색체 관련해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으니, 섣부른 판단을 자제해야 할 것이 분명했음에도 언론은 마치 "성전환 수술"을 한 것마냥 보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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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민 | 성소수자 프리랜서 미디어 활동가
2024 파리올림픽 여자 복싱 경기에서 이마네 칼리프(알제리)가 거둔 기권승을 놓고 국내 다수 언론은 이 선수가 ‘XY염색체’를 가지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는 보도를 앞다투어 내놓았다. 이런 보도가 스포츠 선수의 실력이 아닌 비과학적 우생학에 기반을 둔 혐오적 관점임을 지적하고, 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 심각한 우려와 실망을 표한다.
논란은 파리올림픽 여자 복싱 4강전에서 칼리프 선수가 이탈리아 선수를 상대로 40여초 만에 기권승을 거두며 시작됐다. 언론은 국제복싱협회(IBA)가 주최한 202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칼리프가 여자 대회 출전 자격을 박탈당했다는 데 주목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칼리프는 러시아 선수를 이기고 며칠 뒤, 대회 중반에 출전 자격을 잃었다. 국제복싱협회는 당시 테스토스테론(주요 남성호르몬 중 하나로 고환에서 만들어짐) 검사를 하진 않았으나 별도의 공인된, 그러나 세부 사항을 밝힐 수 없는 검사를 한 결과 칼리프가 XY염색체를 갖고 있어 출전 자격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건 XY 염색체를 가지고 있더라도 여성일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안드로겐(남성호르몬) 무감각 증후군이 있는 경우 XY염색체를 가졌기에 남성호르몬이 분비되긴 하지만 안드로겐 수용체의 기능에 결함이 있어 표적 세포에 적용하지 못해 남성으로 분화·발달이 되지 않아 여성의 외형으로 태어난다. 국내에서 성소수자를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순천향대 서울병원 젠더클리닉 이은실 교수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XY염색체를 가진 안드로겐 무감각 증후군(완전형)을 가진 여성인 경우 남성호르몬 수치가 높지만 작용하지 않으므로 의미가 없다”라며 “남성호르몬이 근육량과 운동 능력의 발달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데, 이 경우에는 남성호르몬을 수용할 수 없으므로 남성호르몬이 제 기능을 못 하는 상태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칼리프 선수 당사자가 자신의 염색체 관련해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으니, 섣부른 판단을 자제해야 할 것이 분명했음에도 언론은 마치 “성전환 수술”을 한 것마냥 보도한 것이다.
국제복싱협회도 비판의 대상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국제복싱협회가 지배구조, 재정, 윤리 등 여러 항목에서 개혁에 실패했다며 국제기구 자격을 박탈한 상태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칼리프에 대한 실격 결정을 한 것 역시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보았다. 국제복싱협회는 러시아 국영 가스 회사가 메인 스폰서이고, 러시아의 우마르 크렘레프가 회장을 맡고 있다. 트랜스젠더나 성소수자를 탄압하고 심지어 처벌까지 하는 핵심적인 국가가 협회의 입장이나 정책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실정임을 고려해야 한다.
국제복싱협회뿐 아니라 그간 지속적으로 반 트랜스젠더 성향을 노출해 온 조앤 케이(K) 롤링이나 일론 머스크 같은 유명 인사들 역시 ‘생물학적 남성이 여성을 이겼다’는 식으로 논란을 부채질했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보도는 인터섹스(성염색체나 성호르몬, 성호르몬 수용체 등에 비전형적인 발생이 생겨 생식기 분화가 전형적인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아 여성과 남성 생식기를 불완전하게 가지고 있는 상태), 트랜스젠더(태어날 때 지정된 성별과 스스로를 인식하는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 젠더퀴어(출생 때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고, 그 성별 정체성이 남성도 여성도 아닌 사람) 같은 다양한 성소수자들에 대한 몰이해와 가십성 혐오를 부추긴다. 사회적 소수자에 관해선 더욱 세심하고 정확한 사실 검증을 통한 보도가 우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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