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대 6’ 또 보지 않으려면…프로야구에도 기후방학이 필요해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한겨레 2024. 8. 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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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기아(KIA) 타이거즈의 경기. KBO 역대 최다득점을 기록하며 30-6으로 기아를 누른 두산 선수들이 승리 세리머니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종영 |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30 대 6.

지난달 31일 광주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BO리그에서 선두인 기아타이거즈는 두산베어스에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역대 최다 실점 패배였고, 미국 메이저리그 기록과도 타이를 이뤘다. 팬들은 ‘다음날 경기 시각(6:30)을 알려주는 것이냐’며 재밌어했지만, 기아 선수들은 한밤까지 지속된 무더위 속에서 피가 말랐을 것이다. 며칠 뒤, 실내경기장인 서울 고척스카이돔을 사용하는 키움 히어로즈 홍원기 감독의 언론 인터뷰가 눈에 띄었다. “우리 팀은 돔에서 하다가 야외에서 경기하면 두 배로 힘들다 (…) 아마 기아가 주말에 쾌적한 돔에서 우리와 경기를 하다가 광주로 갔으니 두 배로 힘들었을 것이다.”

난 무릎을 쳤다. 기아가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날, 광주는 섭씨 34.2도를 찍었다. 31일 기준 올해 최고기온이었다. 기아의 패배에 기후변화가 작용했을까? 야구와 기후변화를 다룬 논문을 찾아보았다. 지난해 4월 ‘미국기상학회보’에는 2010년 이후 나온 홈런 500개 이상이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기온이 올라가면 대기 밀도가 줄어들면서 타구가 더 멀리 날아간다. 일반적으로 기온이 높으면 타자가 투수보다 유리하다. 점수도 많이 날 수밖에 없다.

심판도 영향을 받는다. 섭씨 21~27도의 쾌적한 날씨와 달리 35도 이상의 찜통더위에서는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 오류율이 5.5% 늘어난다는 것이다. 미국 ‘남부경제학저널’에 2021년 실린 연구 결과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더위에도 심판의 오심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올해부터 ‘자동투구 판정 시스템’(ABS)을 도입해 인공지능이 스트라이크와 볼을 판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일이었다. 30 대 6의 충격 탓인지 기아는 연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한화를 맞은 기아는 1회부터 3점을 내줬다. 사건이 일어난 건 2회말이었다. 갑자기 중계방송이 꺼지더니, 캐스터와 해설위원의 목소리도 함께 사라졌다. 기술적 오류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여름철 전력 과부하로 야구장에 전기가 나갔고 중계방송 또한 불가능해진 것이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자동투구 판정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이른 저녁이어서 조명탑 없이 경기를 계속할 수 있었지만, 심판진은 여러 상황을 고려해 경기 중단을 선언했다. 그날 대전은 그날 기준 올해 최고기온 35.6도를 찍었다.

기후변화는 선수의 건강을 해치고 경기력을 저하한다. 팬들도 고통스러워진다. 지난 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관중 4명이 온열질환으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지면의 복사열로 잠실구장의 온도계는 48도를 찍었다. 같은 날 울산 문수야구장에서 열린 경기에서는 엘지의 박동원, 문보경이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구토 증세를 보였다. 인조 잔디인 문수야구장은 햇빛에 달궈진 지표면 열기가 쉽게 빠지지 않는다.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 야구 선수들은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올해 선수들은 올스타전이 낀 휴식 기간을 나흘밖에 받지 못했다. 지난해까지는 일주일이었지만 그마저도 더위가 본격화되기 전인 7월 초중순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손쉬운 대응책으로 돔구장을 생각한다. 하지만 돔구장은 ‘돈구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막대한 건설비와 운영비가 들어 인구가 적은 지자체는 수지타산을 맞추기 힘들다. 게다가 운영 과정에서 막대한 전기를 쓰고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돔구장을 짓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경기 시간을 저녁 7시로 늦추고(지상파 텔레비전 중계 때문에 오후 2시에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폭염으로 인한 경기 취소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푹푹 찌는 7월 말~8월 초에 최소 보름 이상 프로야구를 쉬어야 한다. 돈만 가지고 기후위기는 헤쳐나갈 수 없다. 야구에 대한 열정, 재미에 대한 추구 그리고 우리의 라이프스타일도 조금은 양보해야 한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폭염으로 경기가 취소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올해 들어서 벌써 세 번이나 취소됐다. 이제 선수들에게 긴 ‘기후 방학’을 줘야 할 때다. 우리도 한여름에는 야구를 잠깐 내려놓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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