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우 열악하지만… AI 시대, 지역언론 브랜딩화로 반등 노려볼 타이밍"
강원·경상·전라·충청 지역기자들 솔직한 이야기
지역 기자의 삶은 쉽지 않다. 수도권에 자리한 언론사들조차 생존하기 버거운 시대, 특히나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에선 언론사가 버티는 것도, 기자로서 일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요즘 같은 때, 과연 지역 기자들은 어떤 생각으로 일하고 있을까.
기자협회보는 지난달 말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서 일하고 있는 신문기자 4명을 만났다. 이들은 각각 3년차, 7년차, 11년차, 15년차 기자로, 그 연차만이 할 수 있는 다양한 고민과 생각, 목표를 갖고 있었다. 열악한 지역 언론의 처우, 점차 낮아지고 있는 영향력에 대한 우려는 공통적이었지만 그럼에도 일이 주는 보람, 나고 자란 지역에 대한 애정 또한 동일했다. 지역 기자로서 계속 일하고 싶은 마음도 같았다. 이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익명 대화 형식으로 정리했다.
-일은 적성에 잘 맞는가.
3년차: 적성에 잘 맞는다. 기사를 쓰고 나서 관계기관이 시스템을 개선할 때나 취재원들에게 감사 연락이 올 때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보람 있는 일이다. 급여만 뺀다면 만족도는 높다.
7년차: 저도 전반적으로 하는 일에 만족한다. 이 일 아니면 어떤 걸 했을까 생각해 보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다만 월급날엔 만족도가 좀 내려가는 것 같다.
11년차: 기자라는 직업 자체엔 만족한다. 다른 직업을 갖고 싶은 마음은 없다.
15년차: 일 자체에 대한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90점이다. 일 자체는 생각보다 적성에 맞고, 보람도 있다. 5점은 수도권 언론보다 낮은 급여, 나머지 5점은 기자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도 하락 때문에 점수를 뺐다.
-급여가 매우 불만족스러운가 보다.
3년차: 세금 떼고 월급이 200만원 초반인데, 하는 일에 비해 급여가 너무 적다. 이것도 최근에 조금 오른 거다. 1~2년차 때는 기자 일이 재밌고, 글 쓰는 게 마냥 좋아 급여 생각 없이 일했다. 하지만 점점 돈에 대한 문제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최근 급여가 가장 큰 고민이 됐다. 이직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나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1년차: 나도 첫 직장에서 5년여간 일하면서 한 번도 연봉이 오른 적이 없다. 매년 동결이었다. 당시엔 이곳을 계속 다니면 나는 50살이 넘어도 월급 300만원을 못 받겠구나,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결국 지역 주재기자로 이직했는데 못해도 임금이 1.5배는 오르더라.
15년차: ‘불불불불불만족’이다. 업무 강도는 물론 그 다채로움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저뿐만 아니라 편집국 데스크들이 일당백까지는 아니어도 2~3인분씩은 일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그게 당연시되는 것 같아 후배들에게 안 좋은 전례를 남기는 것 아닌지 걱정도 든다. 이런 부분이 급여로 더 충분히 보상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업무 강도가 센가.
15년차: 오전 9시 직전 출근해 오후 7시쯤 퇴근하는데, 근무 시간은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휴일에도 온전히 쉬지는 못한다. 출입처 전화와 메일 등이 쏟아지고, 행사들도 꽤 많기 때문이다. 저의 경우 약간의 일중독 성향 때문에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하는 점도 일부 있는 것 같다.
3년차: 보통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는데, 사건이 있으면 6시 이후에도 일한다. 저녁 술자리도 잦은데, 입사하고 나서 10kg이 넘게 쪘다. 최근 다이어트 때문에 술자리를 자주 잡지 않는데도 주중 2회, 많으면 5일 모두 술 마실 때가 있다.
7년차: 저는 사실 일하는 걸 좋아해서 자발적으로 업무시간을 안 지키고 있다. 일단 이번 주에도 이틀은 집에 안 들어갔다. 제 이름이 남으니까 어떻게든 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일하는 게 취미가 된 것 같다.
-일하는 게 취미라니 놀랍다. 다들 일하는 게 취미인가.
7년차: 다른 일을 했다면 이렇게 못 했을 것 같은데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넷플릭스에 ‘죽어도 선덜랜드’라는 다큐멘터리 혹시 아나. 영국 프로 축구팀 이야기인데 선덜랜드가 되게 약한데도 팬들은 엄청 극성이다. 저는 약간 그런 심정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 회사가 약하지만 언제가 한 번은 파란을 일으킬 거라는, 팬의 심정이다.
11년차: 저는 그냥 제 삶을 즐기고 있다(웃음). 위에서 강하게 요구하지 않아서 정말 큰 사건이 터지지 않고서야 주말이나 저녁 시간엔 일하지 않는다.
3년차: 저도 잠을 많이 잔다. 음식과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15년차: 등산, 자전거, 걷기 등 아무 생각 없이 땀을 낸 후 그 주에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찾아가 반주와 함께 먹는 게 취미다. 그렇게 하고 나면 스트레스는 대부분 해소되는 듯하다. 물론 주말에 일정이 있어서 오롯이 일에 바쳐야 하는 경우는 예외다.
-회사 인력은 여유로운 편인가.
3년차: 너무 적다. 처우가 열악하니 허리 연차가 많이 떠나가서 기자 생활 얼마 안 한 친구가 ‘캡’을 하는 경우도 많다.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회사는 인력을 뽑으려고 해도 지원자가 거의 없다. 요즘엔 필기나 실기 시험도 안 보고 서류와 면접으로만 뽑는다.
15년차: 기자 수가 상당히 많은 편인데도 인력이 충분하다고 얘기하는 부서는 없다. 저도 기획 취재와 더 자유로운 연차 사용 등을 위해선 부서별로 1명씩은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는 그런 인력을 뽑으면 잉여 자원이 될까, 우려하는 것 같다. 타이트한 인력 구조를 원하는 회사와 조금 여유를 두고 부서 운용을 원하는 부서장과의 견해차가 크다.
11년차: 지역 주재기자도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 종합편성채널 같은 경우 주재기자가 다른 지역 기사를 쓰거나 국제부 기사를 쓸 때가 많다. 중앙일간지도 다들 주재기자를 줄이고 있어 인력난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광고 시장이 줄어드니 본사도 여력이 없어지는 것 같다.
7년차: 아직까진 인력이 부족하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향후 베이비부머 세대 정년퇴직자가 많이 나온 후 퇴직금 문제 때문에 감소분만큼 채우지 못할까, 걱정이긴 하다. 게다가 우리 회사는 젊은 기자들은 많은데 허리 연차가 없다. 위, 아래는 각자 소통이 잘 되는데 허리 연차가 없다 보니 소통이 분절돼 버렸다.
-허리 연차는 왜 없나.
3년차: 임금 때문에 떠나간다고 생각한다. 지역 MBC나 KBS 정도를 빼면 민영방송조차 업무 강도가 높고 급여 수준이 낮아 기자들의 이탈이 잦다. 임금을 인상하면 어느 정도 기자 이탈을 막을 수 있을 거라 본다.
11년차: 저는 결국 퇴사해서 지역 주재기자로 이직했다. 선배들도 당시엔 다 이직했던 상황이라 회사에 애착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역에선 일 좀 잘한다 싶은 에이스들은 허리 연차쯤 되면 다 빠져나간다. 일반 기업 수준으로 여건이 좋아지면 저 같은 사람은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15년차: 개인적 사유들이야 다양하겠으나 경제적 이유, 업무 부담 등으로 상당히 많이 빠져나갔다. 그래서 저를 포함해 아직 현장을 한참 더 뛸 수 있는 기자들이 부서 운영과 책임을 맡는 경우들이 늘고 있다. 다만 기자 이탈을 막기 위해선 임금 현실화뿐만 아니라 언론계 전체의 변화, 사회적 인식 개선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할 듯하다.
-지역 언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현재 어떤 수준인가.
3년차: 입사 초기와 비교하면 낮아지면 낮아졌지 높아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일 시작하기 전엔 우리 회사의 존재 자체도 몰랐다. 주변 지인들도 저를 통해 겨우 알고 있다. 인지도가 적어서인지 취재원이 저를 대하는 태도나 말투에서 무시가 느껴질 때도 가끔 있다. 그래서 만약 이직한다면 CP사(포털과 콘텐츠 제휴계약을 맺은 언론사)나 인지도 있는 매체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 크다.
11년차: 본사에 중요한 지역 뉴스거리를 발제해도 거의 반영이 안 된다. 사실 지역 사람들조차 지역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크게 관심이 없다. 지역에선 사주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사를 쓰거나 지자체 눈치를 보는 곳들이 많다. 써야 할 기사가 나오지 않으니 지역민들이 신문을 보지 않고, 영향력이 낮아지니 지자체도 눈치를 보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7년차: 풀뿌리 민주주의가 견제를 받아야 하는데 견제해야 할 지역 언론이 어렵다 보니 그게 잘 안된다. 게다가 사회가 하루 동안 소화할 수 있는 뉴스 양은 한정돼 있는데 지역 의제가 전국적인 의제가 되기는 힘들어서 답답할 때가 많다. 다만 우리 회사로만 보면 영향력은 완만하게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완만하게 올라가는 것 같지만 잠재력은 있다고 본다.
15년차: 우리 회사도 포털에 입점한 덕분인지 독자들이 많아진 것 같다. 자치분권 정책 강화에 따라 지역 언론 발전을 위한 각종 정책이 계속 나오고 있는 점도 지역 언론 영향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포털이 지역 언론엔 위기이자 기회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11년차: 기회가 되려면 포털에 노출이 잘 돼야 하는데 그것부터 쉽지 않다. 지역 언론이 잘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을 일단 만들어줘야 한다. 조회 수가 늘어나면 지역 언론들도 독자를 신경 쓰면서 좀 더 의미 있는 기사를 생산할 수 있지 않을까.
15년차: 저는 100% 기회라고 생각한다. 챗GPT 등 생성형 AI와 언론계가 부딪치는 지점만 생각해 봐도 그렇다. 생성형 AI는 어디까지나 온라인에 있는 기존 보도 등 정보들로 답변을 만들어낸다. 앞으로 지역 언론이 보도한 기사들의 활용 유무에 따라 지역 현안에 대한 답변의 질과 신뢰도는 하늘과 땅 차이를 보일 것이다. 로컬에서만, 로컬이기 때문에, 로컬이어서 발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일수록 AI 시대에 더욱 절실하고 필요한 정보가 된다고 생각한다.
7년차: 저도 기회라고 본다. 요새 마케팅 트렌드를 보면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라고, 실제 팔로워 수가 4~5만 명만 돼도 작은 시장을 먹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지역 신문도 그런 식으로 이 안에서 코어 팬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중앙과 다르게 지역 신문은 독자가 누군지 정확히 알고, 신규 독자를 만들 기회도 훨씬 많다. 그래서 우리가 주제만 잘 잡는다면 사람들을 오프라인으로 끌어낼 수 있고 광고와도 연계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조건이 가능해지려면 전문적인 브랜딩 작업이 수반돼야 한다.
-앞으로도 계속 지역 기자로 살고 싶은가.
15년차: 지역 기자로 일하면 더 세밀하게 사회 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지역 사회 특성상 보도에 대한 피드백이 상당히 밀도 높고, 즉각적이고,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하다 보니 전혀 없다고 생각했던 지역에 대한 ‘찐’ 애정이 생겨난 것도 부인할 수 없겠다. 다만 계속 지역에서 일할 거냐고 묻는다면 저도 제 마음을 잘 모르겠다.
3년차: 기자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없다. 급여만 만족스럽다면 지역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 다만 3년 안에 급여를 많이 주는 언론사로 이직하고 싶은 마음은 크다.
7년차: 저는 목표가 있다. 우리 회사 티셔츠를 팔고 싶다. 프로 야구팀 유니폼을 사람들이 사서 입고 응원하듯 우리 회사 굿즈를 살 정도로 서포터들이 많이 생겨서 응원해 줬으면 좋겠다. 만년 꼴찌라고 놀렸던 LG트윈스가 지난해 우승했을 때 팬들은 짜릿함을, 다른 사람들은 많은 응원을 해주지 않았나. 저는 그렇게 우리 회사가 한 번은 우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 언론은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 티셔츠를 팔 수 있는 그날까지 이 회사에 다니고 싶다.
11년차: 내가 일했던 곳이 좀 더 좋은 여건이었다면 아마 그곳에서 계속 기자로 일했을 것이다. 주재기자가 되면서는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고 떳떳한 삶을 살아왔는지 자괴감도 들었다. 하지만 반향 있는 기사를 쓰고 싶은 욕심은 아직도 남아 있다. 오랜 기간 타성에 젖어 자신은 없지만 어쨌든 나도 해온 가락이 있으니 좋은 기사를 써서 언젠가 꼭 한 번 기자상을 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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