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차세대발사체 계약서에 ‘조정’ 선택지 없다…항우연·한화 지재권 갈등 소송으로 가나
국가계약분쟁조정위 갔지만 조정 성립 안 할 듯
소송 가면 2032년 달 착륙선 발사 차질 불가피
한국의 달 탐사를 책임질 차세대발사체 개발에 빨간 불이 켜졌다. 차세대발사체 개발을 맡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지식재산권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국가계약분쟁조정위원회 조정 신청이 이뤄졌지만, 분쟁조정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이 날 가능성이 있다. 조정이 무산되고 소송으로 이어지면 차세대발사체 개발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5월 차세대발사체 개발 체계종합기업 계약을 체결했다. 2030년부터 2032년까지 총 3회에 걸쳐 발사할 예정인 차세대발사체는 첫 달 착륙선 발사 임무도 맡고 있다. 개발에 투입되는 총 사업비만 2조 132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국책 사업이다.
◇분쟁조정 대상 아니라는 결론 날 가능성 커
7일 우주항공청과 항우연 등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차세대발사체 개발 사업과 관련해 제기한 지식재산권 분쟁이 지난달 9일 국가계약분쟁조정위원회에 청구됐다. 국가계약분쟁조정위원회는 기획재정부 산하 위원회로 국가 계약과 관련한 분쟁이 있을 때 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분쟁의 당사자인 항우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모두 국가계약분쟁조정위원회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 지켜보는 상황이다. 항우연을 산하 기관으로 두고 있는 우주항공청도 “국가계약분쟁조정위원회 심사가 진행 중이지만 결론에 이르기까지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선비즈 취재 결과 항우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재권 분쟁은 조정 대상 자체가 아니라는 결론이 날 가능성도 있다. 계약서 조항 때문이다.
항우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작성한 계약서는 ‘이견이 있을 때 판결 또는 중재로 한다’고 명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서에 조정이라는 선택지 자체가 없다. 국가계약분쟁조정위원회는 ‘중재’가 아닌 ‘조정’만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분쟁조정을 진행하더라도 효력에 대한 법적인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계약서 문구를 보면 대한상사중재원에 중재를 맡길 수는 있겠지만 국가계약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을 받는 게 성립하는지 법적인 논란이 있다”며 “아직 결론이 난 건 아니지만 분쟁조정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자체를 따져보고 있다”고 말했다.
분쟁조정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면 각하된다. 계약에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국가계약분쟁조정위원회의 심사 대상 자체가 아니라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항우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모두 헛심만 뺀 셈이 된다.
◇차세대발사체 지재권 두고 입장 평행선
항우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갈등은 차세대발사체 지재권을 누가 가질 것인지에 대한 이견에서 시작됐다. 항우연은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으로 개발하는 만큼 지재권은 주관 연구개발기관인 항우연이 가지는 게 맞는다고 주장했다.
항우연은 “차세대발사체개발사업 발사체 총괄 주관 제작 계약은 구매 요구 단계에서부터 일관되게 물품 제작 계약으로 진행됐다”며 “연구개발혁신법 제16조와 관련 시행령 제32조 등에 따라 계약을 통해 새롭게 발생하는 모든 지재권은 항우연이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물품 제작 계약이라는 건 실제 연구개발은 항우연이 진행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항우연이 준 설계대로 물품을 사서 조립하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역할이 미미하기 때문에 지재권을 줄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반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막대한 투자를 하는데 정작 아무런 지재권은 가질 수 없다면 사업 참여가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사업제안서에 지재권 공동 소유에 대해서도 명시돼 있다고 주장했다. 항우연은 국가안전보장이나 국방 등과 관련이 없고, 공헌도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공동으로 지재권을 가질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만약 국가계약분쟁조정위원회가 조정에 나서면 어떤 결론이 날까. 항우연은 국가 R&D 예산으로 확보한 지재권은 주관연구개발기관이 전부 소유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지만, 기획재정부의 계약 예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밝히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소프트웨어의 경우 발주기관이 지재권을 모두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업체도 활용할 수 있도록 공동 소유를 인정한 바 있다”며 “이런 연혁과 특약의 성질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소송 가면 2032년 달 착륙선 발사도 장담 못해
분쟁조정이 각하되거나 어느 한 쪽이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차세대발사체 지재권 갈등은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소송은 항우연이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모두 부담이 크다.
항우연은 민간 기업 중심의 우주개발이라는 뉴스페이스 시대가 열리자 마자 정부 연구기관이 국내 최대 우주 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소송전을 벌인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갓 출범한 우주항공청 산하 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야 하는 것은 부담이 크다. 기업이 정부와 싸우는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두 기관의 반목과 불신 속에 차세대발사체 개발 자체가 공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항우연은 지난달 25일 차세대발사체 체계 요구조건검토회의(SRR)를 개최하고 차세대발사체 1단 엔진을 5기에서 7기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했다. 설계 자체가 바뀌는 중요한 회의였지만, 정작 차세대발사체 개발 체계종합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참석하지 못했다. 항우연이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우연은 SRR에 체계종합기업이 참여할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관련 전문가들은 황당한 이야기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미 지재권 갈등이 두 기관의 정상적인 협력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SRR 자체도 작년 12월에 열렸어야 했지만, 체계종합기업 선정이 늦어지면서 반 년 이상 늦춰졌다.
국내 우주 분야 한 전문가는 “차세대발사체 사업에 관여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항우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불협화음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2030년 1차 발사는 물론이고 2032년 달 착륙선 발사도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우주항공청을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우주항공청이 지난 5월 출범했지만, 산하 기관인 항우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재권 갈등이 불거지는 동안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우주 기업 관계자는 “차라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시절이 더 나았다는 이야기도 업계에서 나온다”며 “아무런 역할이나 존재감을 보여주지 않을 거면 없느니만 못하다”고 말했다.
우주항공청은 “항우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가 참여하는 고위급 회의를 주관하는 등 지재권 문제 해결을 위해 중재 노력을 펼쳐 왔다”며 “양측과 충분히 논의해 미래 우주항공 기술력과 산업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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