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풀과 울버린’ 북미에선 구세주, 한국에선 급락주가 된 이유

허진무 기자 2024. 8. 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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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스튜디오 신작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은 북미(미국·캐나다)에선 역대 R등급(만 17세 미만 관람불가) 영화 흥행 1위를 달성했지만 한국에선 박스오피스 3위로 떨어졌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내가 구세주야. 내가 바로… 마블의 예수님이야.” 마블 스튜디오 신작 <데드풀과 울버린>에서 주인공 데드풀은 이렇게 말한다. 최근 작품마다 혹평을 받아 위기에 빠진 미국 영화사 마블 스튜디오의 ‘구세주’가 되리라고 선언한 것이다. 극장 개봉하자 북미(미국·캐나다)에선 역대 R등급(만 17세 미만 관람불가) 영화사상 최고 흥행을 달성했지만, 한국에선 초반 흥행 기세가 ‘급락’하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렇게 결과가 갈린 이유는 무엇일까.

<데드풀과 울버린>은 한국에서 미국보다 이틀 빠른 지난달 24일 개봉했다. 개봉하자마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40% 이상의 높은 상영점유율(전체 영화 상영횟수에서 해당 영화 상영횟수의 비율)에 힘입어 개봉 5일 만에 관객 100만명을 넘겼다. 하지만 7일차에 미국 애니메이션 <슈퍼배드 4>에 2위로 밀렸고, 8일차에 한국 코미디 영화 <파일럿>이 개봉하자 3위로 떨어졌다. <파일럿>은 개봉 7일차인 지난 6일 관객 200만명을 돌파하며 <데드풀과 울버린>(172만명)을 멀찍이 따돌렸다.

북미에선 데드풀의 대사대로 ‘마블의 구세주’가 된 분위기다. 극장 개봉 1주차 수익이 2억 달러를 돌파했다. 2024년 개봉 영화 전체를 봐도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사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 2>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를 달리고 있다. 관객의 연령대를 폭넓게 확보할 수 없는 R등급 영화임을 감안하면 만족스러운 성적이다.

마블 스튜디오는 오랜 침체기를 겪었다. <아이언맨>부터 10년 넘게 구축한 ‘어벤져스’ 시리즈에 비견할 만한 콘텐츠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토르: 러브 앤 썬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더 마블스> 등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했다. 마블의 모회사인 월트디즈니컴퍼니는 영화사 20세기폭스를 인수하면서 인기 캐릭터였던 ‘데드풀’ ‘엑스맨’의 판권을 가져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서 부활시켰다. 데드풀 특유의 잔혹한 액션과 성적 코미디 대사도 그대로 유지해 ‘마블 최초의 R등급 영화’라는 모험을 택했다. 마블의 모험은 일단 최대 시장인 북미 지역에선 성공을 거뒀다.

마블 스튜디오 신작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은 북미(미국·캐나다)에선 역대 R등급(만 17세 미만 관람불가) 영화 흥행 1위를 달성했지만 한국에선 박스오피스 3위로 떨어졌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한국과 북미의 흥행 차이는 관객의 ‘추억’에 따른 진입장벽의 유무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엑스맨’ 시리즈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성장한 한국 관객은 북미 관객에 비해 훨씬 적다. 죽음에서 부활한 울버린에 정서적으로 공감하려면 <엑스맨> <더 울버린> <로건> 으로 이어지는 영화적 추억을 쌓아야 한다. 울버린이 편입된 마블 세계관은 설정이 방대하고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기존 ‘데드풀’ ‘엑스맨’ ‘어벤져스’를 모르는 신규 관객에게는 진입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데드풀과 울버린>에서 데드풀은 20세기폭스 인수 과정과 마블 세계관을 직접 대사로 설명하며 진입장벽을 낮추려고 노력한다. 관객의 피로감을 의식해 “시리즈 세 번째에 또 설정 추가야?” “멀티버스(다중우주) 같은 설정 지겹지 않아?”라며 짐짓 역정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신성한 시간선’을 수호하는 시간 변동 관리국(TVA) 등의 설정은 설명을 압축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데드풀이 자꾸 영화 속에서 빠져나와 영화를 해설하니 몰입감이 깨지는 부작용도 있다.

<데드풀과 울버린>은 20세기폭스 인수와 판권 문제, 마블 관계자들의 발언, 주연 배우들의 사생활을 다양한 코미디 소재로 변주한다. <매드 맥스>를 비롯한 다른 영화들을 패러디하기도 한다. 할리우드나 마블을 잘 모르는 한국 관객에겐 ‘타율’이 나쁘다. 예를 들어 데드풀은 “케빈 파이기가 코카인만은 절대 안 된댔어”라고 농담을 던진다. 마블 스튜디오 사장인 케빈 파이기와 <아이언맨> 주연 배우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마약 전과를 모르면 웃을 수 없는 농담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데드풀의 농담을 온전히 즐기려면 마블 세계를 이해해야 하지만 일반 관객은 굳이 마블을 공부해가며 영화를 보고 싶어하진 않을 것”이라며 “마블이 탄생한 북미 지역에서 멀어질수록 관객이 소비하기 어려운 콘텐츠”라고 말했다.

마블 스튜디오 신작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은 북미(미국·캐나다)에선 역대 R등급(만 17세 미만 관람불가) 영화 흥행 1위를 달성했지만 한국에선 박스오피스 3위로 떨어졌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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