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유누스, ‘총리 도망’ 방글라데시 과도정부 이끈다

‘마이크로파이낸싱’ 대부

방글라데시 임시 과도정부 책임자로 임명된 무함마드 유누스가 지난 1월 1일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언론과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빈민층 무담보 소액대출 운동의 대부 무함마드 유누스(84)가 방글라데시 임시 과도정부를 이끌 중책이 맡겨졌다.

방글라데시 대통령실의 공보비서 조이날 아베딘은 7일(현지시각) 모하메드 샤하부딘 대통령이 반정부시위 학생 지도자들과 군부 인사, 재계 인사,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만나 협의한 뒤 유누스를 과도정부 책임자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유누스는 빈곤퇴치 운동가로 1983년 그라민은행을 설립해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려운 빈민층에게 무담보 소액대출을 해준, 이른바 ‘마이크로파이낸싱’의 대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를 통해 방글라데시 빈민층을 구제한 공적을 인정받아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유누스는 현재 파리 올림픽 자문을 위해 파리에 머물고 있으며 곧 귀국할 예정이라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유누스는 곧 시위 지도자와 야당 인사 등과 협의를 거쳐 과도 정부를 정식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유누스 과도정부는 새로운 선거를 통해 새 정부를 구성할 때까지 활동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샤하부딘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하고 가택연금 상태에 있던 야당 지도자의 석방을 명령했다.

방글라데시는 의원내각제 나라여서 대통령이 실권이 없다. 그렇지만 지난 6월부터 독립유공자 자녀의 공직 할당제 부활에 반대하는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결국 지난 5일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전격 사임하고 인도로 도피하는 등 혼란이 이어지자 대통령이 나선 것이다.

대통령의 이런 신속한 움직임은 1971년 파키스탄에서 독립한 이후 여러 차례 군사정부를 겪은 역사적 경험에 비춰 조기 정국수습을 통해 권력 공백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이번에도 군부는 새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임시로 국정 통제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시위로 무정부 상태가 되자 힌두교도가 두려워하고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이슬람이 주류인 방글라데시에서 사회적 소수인 힌두교도들은 사회 혼란기에 폭력에 노출되고 약탈당한 아픈 경험이 있다. 힌두교도의 한 지도자는 “힌두교도들은 언제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경각심을 나타냈다. 이에 학생 시위 지도자 및 야당 지도자들은 힌두교도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보호를 촉구했다.

하시나 전 총리는 지난 5일 인도 뉴델리 근처 공군 기지에 도착한 뒤 인도 고위당국자와 만났다. 그는 조만간 영국으로 갈 계획이라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