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통 벗은 중국인들…정부도 힘준 "글로벌 축제", 외국인은 어디에[르포]

칭다오(중국)=우경희 특파원 2024. 8. 7.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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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원 600만 세계 최대규모 칭다오 맥주축제 현장 가보니…
반라 중국인들 환호하는 해방구 "내년엔 한국 맥주도 참가"
칭다오 맥주축제 전시장 앞 야외좌석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사진=우경희 기자

'맥주의 도시'

여름의 칭다오(靑島)는 이렇게 불릴 만했다. 세계 3~4대 맥주축제를 자칭하며 세계 최대 규모를 다투는 칭다오 국제맥주축제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칭다오를 지난 3일 찾았다. 해변을 따라 축구장 108개 면적에 조성된 맥주축제 현장엔 국내외 맥주 브랜드가 별도로 차린 초대형 임시 펍들이 즐비했다. 연중 최고점을 찍은 폭염 속에서도 중국인(남성)들은 반나체로 축제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비싼 맥줏값에도 중국관광객 '인산맥해'
해방구가 아니라면 무엇이라 설명하랴. 칭다오 맥주축제 칭다오맥주관 안에서 벌어진 공연에 열광하는 중국인들./영상=우경희 기자
칭다오 역에서 축제장까지는 택시로 30여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축제 기간 해변 도로의 가공할 정체로 이동엔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가뜩이나 더운 중국 여름 날씨에 습한 바닷바람이 더해지면서 늦은 밤임에도 차에서 내리자 마자 불쾌지수는 순식간에 체감한도까지 치솟았다. 그럼에도 맥주축제장은 실내뿐 아니라 실외 테이블까지 관광객들이 인산인해였다.

바다에 면한 축제장은 각종 이벤트가 진행되는 광장과 무대, 실내 공연장, 놀이공원 등을 중심에 두고 둘레로 8~9개의 초대형 아치형 포장마차가 배치된 구조였다. 거의 가건물들이지만 큰 것은 1000명은 너끈히 동시에 들어갈 만하다. 이 포장마차를 중국 국내외 각 맥주 브랜드들이 불하받아 각자 특성을 살려 꾸민다. 밤이 깊으면 대부분 여느 클럽처럼 운영된다. 손님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칭다오맥주가 직접 운영하는 맥주전시&판매장에서 사용되는 3000cc 맥주용기./사진=우경희 기자

맥주는 흔히 한국에서 맥주타워라고 불리는 탑형 용기(3000cc)에 담아 서빙됐다. 개당 200위안(약 3만8500원)으로 중국인들의 소득수준을 생각하면 싸지 않다. 게다가 첫 주문엔 용기에 대한 보증금 250위안(약 4만8000원)까지 붙는다. 매년 새로운 용기가 출시되는데, 사이즈가 꽤 커서 쉽지 않을 텐데도 기념품 격으로 집으로 가져가는 경우가 적잖아 어쩔 수 없이 보증금 제도를 도입했다고 한다.

세계 최고 맥주축제로 꼽히는 독일 옥토버페스트도 노상방뇨 등 비위생이 매년 지적받는다. 사람과 술이 모이다 보면 눈에 차지 않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칭다오 맥주축제는 '살색'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은 주의해야 할 듯 하다. 배를 드러내거나 상의를 벗는 중국 남성 복장 양태인 '베이징 비키니'는 베이징에선 상당히 사라졌는데, 외려 칭다오 축제장 에선 남성들의 기본복장인 듯 했다.

맥주의 도시 칭다오...봉지맥주의 유래는?
칭다오 시내에 위치한 칭다오맥주 1공장. 공장은 여전히 정상 운영되고 있으며 공장 내에는 맥주박물관이 조성돼 있다. 공장 반대편엔 맥주 선술집들이 즐비하다./사진=우경희 기자
1987년 칭다오에서 두 명의 독일인 선교사가 선교활동 중 죽자 명분만 찾던 독일은 즉시 일대를 점령하고 조계지(치외법권 지역. 침략 근거지 역할)를 설치했다. 칭다오가 근대도시로 데뷔한 계기다. 1903년에 세워진 칭다오맥주는 독일과 영국 기술력으로 만들어졌다. 맥주도시 칭다오의 시작이다. 개혁개방 이후 맥주산업은 칭다오의 상징이 됐다. 1991년 시작된 칭다오 세계맥주축제도 그 연장선이다.

칭다오맥주에서 가장 유명한 건 지난해 10월 '오줌맥주' 사건이 터진 3공장이지만, 칭다오맥주의 출발은 시내에 있는 1공장이다. 공장 대부분이 이제는 칭다오맥주박물관이 돼 관광객들로 붐비지만 생산시설은 여전히 가동된다. 1공장은 유리창을 통해 관광객들에게 병입과 포장 공정이 공개된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투명하게' 만들어지는 1공장 생산 맥주는 대부분이 한국 등으로 수출되는 수출물량이다.

칭다오 맥주산업의 상징 격인 칭다오맥주 1공장 앞 길은 한 마디로 맥주문화거리다. 예전엔 마차로 맥주를 실어날랐을 도로 변에 물경 백여년은 공장과 함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선술집 수십개가 모여있다. 칭다오 명물 가리비 등 해산물을 안주로 신선한 맥주를 판다. 칭다오 최대 야시장이라는 타이둥(台東) 거리 역시 밤 늦게까지 길거리에서 맥주와 음식을 즐기는 중국인으로 북적였다.

타이둥거리에서 한 상인이 맥주를 병에 받아 판매하고 있다. 명물 봉지맥주는 이제 중심가에선 거의 사라졌다. 타이둥 거리에만 이런 맥주 노점이 줄잡아 수십개. 말 그대로 맥주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경제권이다./사진=우경희 기자

칭다오의 명물 중 하나였던 '봉지맥주' 유행을 선도한 것도 바로 이 길거리 맥주 문화다. 어느 야시장이나 번화가를 가도 맥주 노점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돼 있다. 타이둥 거리에만도 이런 맥주 노점이 줄잡아 수십개. 말 그대로 맥주경제다.

봉지맥주는 이제는 위생과 안전 문제로 페트병 맥주로 바뀌고 있다. 이 봉지맥주는 중국 경제 개혁개방 이전 배급시대 유물이다. 칭다오맥주가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은 가운데도 정작 칭다오 주민들은 맥주를 충분히 배급받지 못했다. 명절 등 특별한 날에만 가구당 5병씩 살 수 있었는데, 정작 병에 대한 규정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민들은 주전자나 비닐봉지, 심지어 세숫대야에 맥주를 받아 가기도 했다.

당당히 웃통 벗은 그들만의 리그, 진정한 국제행사 되려면
칭다오 맥주페스티벌은 칭다오맥주를 중심으로 전세계서 2200종의 맥주가 출품되는 글로벌 축제다. 하얼빈 빙등제 등과 함께 중국 정부가 가장 힘줘 홍보하는 중국 주관 글로벌 축제이기도 하다. 동행한 한 중국 현지전문가는 "내년엔 한국의 카스도 전시장을 차린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직접 찾은 맥주축제 현장엔 외국인 관광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축제가 자꾸만 안으로 향하는 이유는 뭘까. 답은 현장에서 엿보였다. 동행한 중국인들은 "중국만의 문화로 이해해달라"고 했지만 선진국 기준으로 보면 중국인들의 탈의문화는 이해할 수 있는 선을 넘을 수밖에 없다. 몇 안 되는 외국인들은 정작 맥주축제보다는 웃통을 벗은 중국인 남성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환호하는 모습을 더 진기하게 보고 연신 영상으로 담았다. 맥주축제의 구경거리가 사람들인 셈이다.

당연히 행사장의 위생문제나 바닥에 버리는 쓰레기 등은 아예 통제가 어렵다. 국제적 행사로 홍보하지만 정작 국제적 행사로 만들려는 노력은 없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독일 옥토버페스트가 코로나 이전 기준 연 700만명이 방문, 1조원가량의 경제효과를 창출하는 대형 관광이벤트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에서 가까운 칭다오 맥주축제가 '그들만의 리그'라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칭다오 관광국 관계자는 "작년엔 600만명이 현장을 찾았고, 올해는 주말 평균 관광객 수를 감안할 때 더 많은 관람객들이 맥주축제를 즐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람객 중 한국인 관광객은 거의 없고, 외국인 관광객 숫자도 별도로 집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 동향이 사실상 주요 고려 요소가 아니라는 의미다.

칭다오(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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