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막내아들이 더 교육적" 틀에 박힌 교과서 밖 웹소설의 가치

이민우 기자 2024. 8. 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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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미디어 리터러시+
광주대 웹소설 창작연구팀 웹소설 비평
2022 교육과정에 매체 영역 신설
교과서 속 과거 소설 외면하는 청소년
현실적 문제 반영하는 웹소설에 주목
매체로서의 웹소설이 갖는 의미

교육부는 2022년 교육과정을 개정하면서 '매체 영역'을 신설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웹소설ㆍ웹툰 등을 교육의 범주에 포함하겠다는 취지였다. 이중 웹소설은 청소년 사이에서 국어교육의 관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들은 과거의 사회상을 다루고 있어 학생들의 공감을 얻기 어려웠다. 하지만 웹소설은 학생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청소년은 일제강점기나 산업화 시기를 다룬 교과서 속 소설에 잘 공감하지 못한다. 오히려 웹소설 속 사회 문제를 민감하게 수용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현행 중학교 국어교과서에는 최일남의 「노새 두 마리」가 수록돼 있다. 이 소설은 1960~1970년대를 배경으로, 노새로 연탄을 배달하는 아버지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당시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시 빈민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소설은 이들의 고단한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을 꼬집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배운 학생들 중 상당수는 시대적 배경과는 별개로 무기력한 아버지의 모습에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역사의식이 부족한 청소년 독자들에게 아버지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패배자일 뿐이었다. 이런 학생들은 소설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과 계층상승의 어려움을 확인하고, 현실에 염세적 태도를 가졌을지 모른다.

비단 「노새 두 마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교과서에 수록된 소설 중에는 일제 강점기나 한국전쟁 등을 다룬 작품이 많은데, 이 역시 학생들이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다.

물론 과거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는 것은 문학교육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그러나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는 자신과 동시대의 문제를 반영하고, 미래의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웹소설은 새로운 문학교육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웹소설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연재하는 소설로, 휴대전화만 있으면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런 접근성은 웹소설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독서에 진입장벽을 절감하는 청소년들도 웹소설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웹소설은 빠른 전개와 흥미로운 스토리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대표적으로 「전지적 독자시점」 「나 혼자만 레벨업」 「재벌집 막내아들」 등은 판타지ㆍ게임ㆍ로맨스를 비롯한 장르소설의 클리셰(clichéㆍ자주 쓰이는 전개방식)를 활용하면서도 현실과의 접점을 놓치지 않는다. 주인공은 열악한 처지에서 시작하지만 재능과 노력, 욕망으로 성공과 성취를 이뤄간다. 독자들은 이런 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영하며 대리만족을 얻는다.

특히, 「재벌집 막내아들」은 1980년대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주인공 진도준이 재벌가의 외면당한 막내아들에서 정상에 오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과거 기억을 가진 채 회귀한 진도준은 자신의 능력으로 재벌가를 장악하고 적대세력에 복수하는데,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동시에 소설은 당시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민주화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교과서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좀 더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물론 웹소설에도 한계는 있다. 상업적인 목적에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를 남용하거나, 문학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특히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한 웹소설 중에는 폭력과 선정성이 지나치게 노출돼 있는 작품도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웹소설 시장의 확대와 함께 우수한 작품들도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웹소설만의 독특한 미학을 갖춘 작품들도 나오고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매체'를 국어교과의 핵심 영역으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웹소설은 '문학' 영역이 아닌 '매체' 영역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 웹소설은 기존의 문학 이론과 잣대로는 평가하기 어려운 새로운 장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디지털 매체 환경 속에서 웹소설만의 서사 구조와 스토리텔링 방식, 독자와의 소통 방식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웹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회귀나 빙의, 레벨업 등의 설정은 게임의 서사 구조를 차용한 것으로, 이는 웹소설이 지닌 매체적 특성 중 하나다. 또한 웹소설에서는 매회 독자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통해 스토리가 전개되기도 하는데, 이는 전통적인 소설과는 다른 상호작용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웹소설을 매체의 관점에서 분석한다면 학생들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함양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동시에 웹소설은 학생들의 흥미를 바탕으로 사회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는 제재로도 활용할 수 있다. 예컨대 「재벌집 막내아들」에 등장하는 1980년대의 정경유착과 민주화 운동, 삼포세대로 불리는 청년들의 좌절 등은 당시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를 발판으로 학생들은 소설 속 인물과 사건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미래상을 말하는 의견을 나눌 수 있다.

지금까지 웹소설의 문학교육적 가치와 가능성을 살펴봤다. 웹소설은 청소년들의 일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콘텐츠로, 학생들에게 친숙하고 흥미로운 제재가 될 수 있다. 기존 문학교육이 과거 중심적이고 규범적인 잣대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데 그쳤다면, 웹소설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소통하는 열린 공간을 제공한다. 또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웹소설의 내용은 사회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고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에도 적합하다.

물론 모든 웹소설이 문학교육의 제재題材(학문이나 연구의 바탕이 되는 재료)로 적합한 것은 아니다. 아직까진 교사의 선별과 가공이 필요하다. 교사 스스로의 이해와 연구도 뒷받침돼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웹소설만을 넘어 애니메이션ㆍ영화ㆍ게임 등 청소년들의 삶과 밀접한 다양한 매체 콘텐츠를 아우르는 교육으로 발전해야 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매체' 영역은 이를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학교 교육이 학생들의 삶과 유리되지 않고,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며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지금이 출발선일지 모른다.

고영석 평동중학교 국어교사

조형래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조교수
mc2657@hanmail.net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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