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은 예상했을까?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김태훈 2024. 8. 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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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까지도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에는 '건설국'이란 이름의 국(局) 단위 조직이 있었다.

대법원을 비롯한 전국 법원의 시설 관리를 담당하는 곳이었다.

법원행정처 간부들과 출입기자들 간의 회식 자리에서 건설국장은 "대학 전공이 법학 말고 건축학이나 토목공학이냐"는 기자의 짓궂은 질문을 받곤 했다.

1998년 대전에 들어선 국내 유일의 특허법원은 이름 그대로 지식재산권 분쟁 해결에 특화한 전문 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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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까지도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에는 ‘건설국’이란 이름의 국(局) 단위 조직이 있었다. 대법원을 비롯한 전국 법원의 시설 관리를 담당하는 곳이었다. 국장은 지방법원 부장판사급 법관이 맡았다. 부서 이름만 들으면 마치 법원 청사를 직접 설계하고 짓는 일까지 하는 것 같으니 법원을 담당하는 취재진의 호기심을 샀다. 법원행정처 간부들과 출입기자들 간의 회식 자리에서 건설국장은 “대학 전공이 법학 말고 건축학이나 토목공학이냐”는 기자의 짓궂은 질문을 받곤 했다. 훗날 건설국은 ‘사법시설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숙연 대법관이 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1991년 포항공대(포스텍)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최초의 이공계 출신 대법관이다. 연합뉴스
‘사법부는 이공계와는 거리가 멀 것’이란 선입관과 달리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특허법원을 운영하고 있다. 1998년 대전에 들어선 국내 유일의 특허법원은 이름 그대로 지식재산권 분쟁 해결에 특화한 전문 법원이다. 개원 당시부터 이공계 출신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판사 등을 우선적으로 특허법원 전문 법관으로 선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유럽의 경우 특허법원 판사 대부분이 기계공학, 전기공학, 화학, 약학, 물리학, 생명공학 등 전문가라고 한다. 우리 특허법원은 아직은 역사가 짧아서인지 이공계 출신 법관 비율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노태우정부 시절인 1991년 봄 전국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극성을 부렸다. 그해 포항공대(포스텍)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모 대기업 생산관리부에 입사한 이숙연(당시 23세)씨는 우연히 대학생들의 가두집회에 합류했다가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곧바로 소송을 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아내기까지 2년이 걸렸다. 이는 고교생 시절부터 그저 휼륭한 엔지니어가 되는 게 꿈이었던 이씨의 인생 항로를 바꿨다. 1993년 고려대 법대에 편입한 그는 이듬해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1997년 사법연수원 수료와 동시에 법관으로 임용됐다.

경북 포항에 있는 포항공대(포스텍) 정문 모습. 포스텍은 1986년 당시 박태준 포항종합제철(포스코) 회장의 뜻에 따라 국내 최초의 ‘연구 중심 대학’을 표방하며 설립됐다. 포스텍 제공
“최초의 이공계 출신 대법관으로서 최고 법원의 판결 속에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에 걸맞은 규범들을 녹여내고 (…) 지식재산권 보호에 힘쓰겠습니다.” 이숙연 대법관이 6일 사법부 구성원들을 상대로 행한 취임 연설의 일부다. 33년 전 해고 무효 소송의 원고로 처음 법조계와 인연을 맺은 그가 특허법원 판사를 거쳐 마침내 대법관에 올랐다. ‘최초의 이공계 출신 대법관’이란 표현에서 과학기술자로서 자부심이 묻어난다. 포스텍 졸업생 중에서 대법관이 배출되리라고는 그 설립자인 고(故)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조차 예상하지 못 했을 것만 같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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