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조사 노랠 불렀지만… 모든 게 얼렁뚱땅 총독부의 ‘무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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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인 2021년, <한겨레21> 은 그간 대가 끊긴 줄로만 알았던 독립운동가 이석영의 후손들이 사실 살아 있다는 일련의 기사(제1373호, 제1377호)를 내보냈다. 한겨레21>
분명 총독부는 이전까지 한반도를 지배한 그 어떤 정부보다 막강한 힘을 갖고, 조선의 모든 것을 알아내려는 야심 아래 의욕적으로 '조사'에 임했다.
토지조사사업의 완료와 함께 총독부가 파악한 경지면적이 급증하며, 이에 맞춰 이전 시기의 재배면적을 크게 끌어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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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인 2021년, <한겨레21>은 그간 대가 끊긴 줄로만 알았던 독립운동가 이석영의 후손들이 사실 살아 있다는 일련의 기사(제1373호, 제1377호)를 내보냈다. 일제가 원활한 통치를 위해 구축해놓은 ‘식민지 잔재’가 잊힌 독립운동가 후손을 위해 쓰이는 아이러니가 벌어진 셈이다.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이 일화는 얼핏 한국 근대의 기원은 결국 일제 식민지기라는 고전적인 설명에 부합하는 듯 보인다. 개별 인간과 사물의 특징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추상적인 숫자로 환원하며,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환원하는 힘이 ‘근대’의 핵심이라면 그 시작은 식민지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제에 맞서고자 했던 독립운동가조차 여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만일 식민지 백성 되기를 거부하며 호적을 만들지 않거나 국외로 이주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면, 일제의 호적제도를 거의 그대로 계승한 대한민국 치하에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무적자’(無籍者)로 불온시됐기 때문이다.
서호철이 쓴 <조선총독부의 조사와 통계>는 ‘근대성’과 ‘식민성’에 대한 이러한 통념을 흩트려놓는다. 분명 총독부는 이전까지 한반도를 지배한 그 어떤 정부보다 막강한 힘을 갖고, 조선의 모든 것을 알아내려는 야심 아래 의욕적으로 ‘조사’에 임했다. 하지만 당최 ‘조사’란 무엇인가? ‘조사’란 ‘research’나 ‘survey’의 번역어였지만, 이를 훌쩍 뛰어넘는 의미를 지녔다. 인구나 토지처럼 오늘날 ‘조사’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것들부터 풍속과 생활에 이르기까지, 총독부는 온갖 대상을 ‘조사’라는 이름에 욱여넣고자 했다. 조선총독부 각 부서에 ‘조사’라는 사무가 없는 과가 없을 정도였다.
모든 것에 ‘조사’ 딱지가 붙었다는 이야기는, 뒤집어 말해 그 어떤 것에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실 총독부의 ‘조사’란 대체로 주먹구구식이었고, 일관된 체계를 갖지 못했으며, 때로는 관측자의 입맛에 맞게 조작되기도 했다. 가령 총독부에 가장 중요했고, 그 어떤 ‘조사’보다 객관적이어야 했을 농업통계의 경우 1918년과 1919년 쌀 재배면적이 연거푸 크게 수정됐다. 토지조사사업의 완료와 함께 총독부가 파악한 경지면적이 급증하며, 이에 맞춰 이전 시기의 재배면적을 크게 끌어올린 것이다.
식민통치의 발전상을 과시하는 이벤트가 됐어야 마땅할 ‘국세(國勢)조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선에서 국세조사는 미루고 미루다 1925년에야, 그것도 ‘간이’로 이뤄졌다.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처럼 국세조사에 열광하기는커녕 이를 불신했다. 조선 인구가 2천만 이상인 건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인데 총독부가 이를 굳이 1700만으로 발표한 건 분명 의도가 있다는 <조선일보> 기사는, 총독부의 ‘무능’이 ‘악의’로 비칠 수밖에 없었던 당시 현실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이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간 식민지기를 보는 가장 유력한 관점이었던 ‘수탈론’과 ‘근대화론’ ‘근대성론’은 모두 총독부, 나아가 근대의 ‘전능성’을 지나치게 과신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식민지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그 ‘무능’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지도 모른다. 가장 자명하고 엄정해야 할 조사와 통계조차 실은 얼렁뚱땅 주먹구구였다는 사실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이 책은 그 시작처럼 읽힌다.
유찬근 대학원생
*역사책 달리기: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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