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기 배정해달라고" 왜 삼성은 또 한여름 포항 선택했나…이승엽의 분노, 두산은 수차례 재고 요청했다

김민경 기자 2024. 8. 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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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 ⓒ곽혜미 기자
▲ 포항야구장 ⓒ 삼성 라이온즈

[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 "문제는 8월이다. 포항이 문제인 게 아니다. 나 혼자라면 50도라도 가겠다."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은 7일 잠실 LG 트윈스전을 앞두고 한여름 제2구장 배정과 관련해 작심 발언을 했다. 두산은 지난 4월 KBO가 오는 20일부터 22일까지 포항에서 삼성 라이온즈와 3연전을 치른다고 발표했을 때부터 수차례 재고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은 KBO에 인조잔디구장인 포항에서 한여름 경기는 무리라고 꾸준히 어필했으나 지금까지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두산의 우려는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울산 문수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주말 3연전에서 현실이 됐다. 롯데의 제2구장인 울산 역시 인조잔디구장이라 더위에 취약한데, 시리즈 첫날부터 폭염 경보에 지열이 50도 이상 올라오면서 경기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결국 3연전 중에 2일과 4일 경기가 폭염으로 취소됐다.

두산은 이상 기온으로 무더위가 지속되는 가운데 2주 뒤에 열릴 포항 경기도 분명 문제가 될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만 KBO는 먼저 나서서 경기장을 다시 배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제2구장 배정은 홈팀 삼성의 권한이기 때문. KBO가 시즌 전체 일정을 발표하면 제2구장 경기는 홈팀이 신청해 날짜에 배정하게 된다. KBO보다는 삼성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KBO 관계자는 "사실 제2구장은 홈팀이 배정하는 것이기에 홈팀의 입장이 사실 제일 중요하다. 다만 앞으로 인조잔디구장에서 한여름에 경기를 치르는 것은 앞으로 좀 많이 고려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혹서기를 피해서 제2구장 일정을 잡아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은 포항시의 요청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당초 삼성은 6경기를 편성하려 했지만 올해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포항에서 열리면서 3경기로 줄였다. 경기 일정은 시즌 초반과 대통령배가 열리는 7월은 피하려 했고, 선수단 요청에 따라 홈 6연전 중 3경기를 포항에서 치르기로 결정했다. 8월에 경기가 편성된 배경에는 포항시의 요청도 있었다. 포항시는 성수기에 제2구장 경기가 치러지길 바랐다. 제2구장은 홈구장보다 더 많은 관중을 수용하는 게 불가능하기에 날이 좋을 때 배정하면 관중 수익이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구단과 지자체의 이익을 고려하다 보니 정작 선수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두산은 지난해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울산에서 롯데와 3연전을 치르고, 곧장 포항으로 이동해 7월 4일부터 7월 6일까지 또 삼성과 3연전을 치렀다. 당시 두산은 이 기간 5승1패를 기록하면서 5강 진입의 발판을 마련하긴 했지만, 그라운드와 마운드 사정이 열악한 제2구장에서 6연전을 치르게 된 일정에 아쉬움을 표했다.

이때는 더위도 더위지만 비가 문제였다. 인조잔디구장은 더위 못지않게 비에도 취약하기 때문. 당시 포항과 시리즈 첫 경기가 우천에도 강행되자 한 야구계 관계자는 "인조잔디라 비가 오면 타구도 빠르게 튀고, 선수들이 다칠 위험이 크다"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 포항야구장은 인조잔디 구장이기도 하고, 그라운드 컨디션 관리에 한계가 있어 비가 오면 물바다가 된다. ⓒ 포항, 김민경 기자
▲ 2023년에도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을 여전히 반기는 포항야구장 ⓒ 두산 베어스

실제로 선수들은 비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 두산과 삼성 투수들을 가리지 않고 투구하다 미끄러지거나 꽈당 넘어지면서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는 투수들이 적지 않았다. 디딤발이 자꾸 미끄러운 마운드를 버티지 못하자 심판진에 경기 도중 마운드 정비를 요청하기도 했다.

A 선수는 "(투수가 밟는) 플레이트가 새것이라 미끄럽기도 했고, 마운드 앞에도 진흙이 돼서 미끄러웠다. 어쨌든 던져야 하니까 상황에 맞게 던지려 노력했던 것 같다"고 했고, B 선수는 "고교야구 하는 줄 알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래서 당시에도 인조잔디를 쓰는 제2구장에서는 장마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혹서기 일정은 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5월이나 6월 초중순까지만 해도 날씨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버틸 만하다는 것. 그런데 올해도 두산은 한여름에 울산(7월 16일~7월 18일)과 포항에서 또 경기를 치르게 됐다. 이승엽 감독이 이례적으로 분노한 이유다.

이 감독은 "왜 자꾸 우리가 선택되는지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지난해 울산에 갔다가 포항을 갔는데, 올해도 울산 가고 포항이다. 우리 팀을 생각했을 때 사실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주 폭염으로 울산에서 2경기가 취소됐는데, 제일 더운 8월에 포항 경기를 잡는 것은 경기력도 문제고 선수들 체력도 문제고 이동 거리도 문제라 여러 가지로 봤을 때 납득은 가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성이 포항 경기에 2년 연속 두산을 배정한 이유는 이승엽 감독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 선수 시절 삼성 이승엽에게 포항은 약속의 땅이었기 때문. 포항은 이 감독이 KBO 최초 400홈런을 달성한 구장이다. 이 감독은 선수 시절 포항에서 39경기 타율 0.362(141타수 51안타), 15홈런, 45타점, OPS 1.167을 기록하는 등 좋은 기억이 많다.

이 감독은 이에 "내가 좋은 기억이 많은 것이지 우리 선수들이 뛰어야 하니까. 인조잔디에서 35도 이러면 진짜 힘들다. 어떻게 경기를 치를지 벌써 걱정이다. 포항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 문제는 8월이다. 날씨 좋은 5월이면 좋다. 나 혼자라면 50도라도 가겠다. 100경기가 넘어가면 선수들이 진짜 힘들다"고 강조했다.

홈팀을 이끄는 박진만 삼성 감독도 8월 포항 경기가 우려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박 감독은 "우리도 걱정이다. 포항 경기장이 인조잔디다. 8월 중순부터 더위가 한풀 꺾인다고 하더라도 날씨라는 게 워낙 변수가 많다"고 공감했다.

이어 "기온보다는 지열이 문제다. 포항 인조잔디가 조금 오래됐다. 영향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인조잔디가 평평하지 않다. 포항은 오래돼서 표면이 울퉁불퉁하다. 바운드 되는 공을 처리하는 데 어려울 것이다. 매년 우리가 포항 경기를 하지만, 그때마다 어려움이 있었다. 선수들도 그런 이야기를 해왔다"고 덧붙였다.

▲ 지난해 포항야구장의 무더위에 등목하는 데이비드 뷰캐넌(왼쪽)과 원태인 ⓒ 삼성 라이온즈
▲ 더그아웃에서 쉬는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 제2구장 딜레마는 늘 존재한다. ⓒ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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