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까지 팔아가며 ‘시조문학’誌 간행”… 평생 한국 시조 부흥에 헌신[그립습니다]
아버지는 1913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셨다. 화천댐이 생기면서 고향이 수몰되자 춘천으로 나와서 거주하다가 해방 후 서울로 와 동대문구 숭인동에 집을 마련하셨다. 나는 그 집에서 태어났다. 양철로 지붕을 얹은 집이어서 비가 오면 빗방울 튕기는 소리가 났고 장마철에는 천장 여기저기서 비가 샜다. 그때 아버지가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로 계셨는데, 물려받은 재산 없이 빈손으로 시작한 서울 생활이라 경제 사정은 좋지 않았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마흔셋, 어머니가 마흔넷이었으니 지금으로 보아도 노산이다. 위로 누이를 셋 두고 셋째 누이와 9년 차이로 아들을 얻었으니, 아버지의 기쁨은 아주 컸다. 어릴 때 아버지와 걷다가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 나를 번쩍 가슴에 안고는 팔을 위아래로 흔들며 “뚜노니, 뚜노니” 하고 걸으셨다. ‘뚜노니’는 내가 어려서 ‘숭원이’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뚜노니’라고 한 것을 흉내 내신 것이다. 아버지는 성격이 불같은 데가 있어서 식구들에게 화를 잘 내고 호통을 잘 치셨다. 그러나 나에게는 야단을 치지 않으셨다. 딱 한 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이유로 나를 혼내신 적이 있었다. 그때에도 내게 매를 대지는 못하고, 방 안에 눕혀 놓고 “이놈 뭘 잘했다고 그래” 하며 몸을 뱅글뱅글 돌리기만 하셨다.
내가 일곱 살 때 아버지는 숭인동 집을 팔고 근처 창신동으로 이사를 했다. 숭인동의 양철 지붕 집과는 비교가 안 되는 멋진 이층 벽돌집이었다. 마당이 넓고 온갖 식물이 즐비했다. 나는 신이 나서 날뛰었는데, 어머니께서 이 집에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다. 그 집은 전세로 얻은 집이고 주인이 일부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시조 전문지 ‘시조문학’이 창간되었는데 출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숭인동 집과 근교의 농지를 팔고 전셋집으로 이사한 것이다. 이 일을 두고 은사이신 이희승 선생께서 이 교수는 주택을 팔아서 시조 책을 간행한 사람이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고 한다.
창신동에서 2년을 살고 서대문구 충정로 산꼭대기 집으로 이사했다가 4년 후에는 남가좌동 하천 변의 미장원이 딸린 집으로 옮겨갔다. 미장원은 아버지가 직접 경영했는데, 그것은 순전히 ‘시조문학’ 출판비를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미장원 경영은 ‘시조문학’ 간행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실패했고 아버지는 다시 충정로 집으로 돌아왔다가 나중에 부암동으로 이사했다. 11년 동안 다섯 번의 이사를 했는데, 이 모든 것이 ‘시조문학’ 간행 비용을 얻으려는 아버지의 궁여지책이었다.
문학지를 낸다고 하지만 편집실이 있는 것도 아니요 사무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작품을 모으고 편집을 해서 조판소에 넘기고 교정지가 나오면 교정을 봐서 인쇄소에 넘겼다. 책이 나오면 방에 쌓아 놓았다가 봉투에 담고 상자에 넣어서 우체국에 들고 가 발송을 했다.
무거운 책을 나를 때는 시조 시인들이 와서 도와주기도 했는데 그분들이 늘 올 수는 없는 일이니까 아버지 혼자서 택시나 용달차에 싣고 우체국에 가실 때가 많았다. 여학교에 계셔서 힘센 제자를 구할 수 없음을 늘 개탄하셨고 아들이 도와주지 않는 것을 무엇보다 서운해하셨다. 여하튼 아버지는 ‘시조문학’ 짐 나르는 일을 80세 넘어까지 하셨다.
1955년 이후의 일간지 문화면을 검색하면 아버지가 시조에 대한 논설을 많이 쓰신 것을 볼 수 있다. 이화여대 교수라는 지위가 그러한 일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시조문학’을 간행하여 작품을 모으고 시조작가협회를 결성하여 조직을 구성하니까 문단 권력을 장악한다는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그것 때문에 구설에 올라 싫은 소리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창작은 제대로 못 하면서 문단 정치나 한다고 흉보는 사람도 있었고, 너무 잘난 척하지 말라고 호통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숭원(문학평론가·서울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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