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전용기에 템플 스테이까지…달라진 반려견 여행
(제주·증평=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반려견 동반 관광 인구가 늘면서 반려견 여행이 다변화하고 있다.
최초의 반려견 전용 비행기가 뜨는가 하면, 반려견을 동반한 템플스테이도 나왔다.
팬데믹 이후 가파르게 치솟던 해외여행의 열풍도 다소 누그러지고 국내 여행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면서 반려견 동반 여행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① 상처 많은 유기견도 마음 놓고 '댕플 스테이'
심리학 용어이기도 한 불어 라포르(rapport)는 두 객체 사이의 공감적인 관계를 뜻하는 말이다.
반려견과 견주 사이에도 라포르 형성이 중요하다.
최근 다녀온 댕플 스테이에서는 참가 반려견 사이에서 독특한 라포르가 형성된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유기견 보리의 나들이
"상처가 많은 반려견이라 행인을 피해 밤 11시가 넘어야 산책하러 나갔는데 이곳은 천국 같네요"
최근 한국관광공사가 충북 증평군의 사찰 미륵사에서 진행한 '댕플 스테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견주 임 모 씨의 말이다.
그가 반려견 보리를 입양한 것은 4년 전의 일이다. 발바닥을 딛지 못한 채 바닥이 뚫려 있는 케이지를 뜻하는 '뜬장'에서만 지내던 보리였다.
보리는 주인이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바람에 굶주린 큰 개가 작은 개를 잡아먹는 등 생지옥과 같은 환경 속에서 자란 탓에 겁이 유독 많았다.
임씨는 "매일 공포에 질려 살던 보리는 반려견 놀이터도 잘 못 가는데 이곳의 차분한 프로그램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유기견 아롱이 '기쁨의 몸부림'
또 다른 유기견인 아롱이도 겁이 많았다.
8살 아롱이는 서울 광화문에서 출발한 버스 내에서 숨죽인 채 주변 환경을 살폈다.
목적지인 미륵사에 도착했지만, 경계심을 풀지 않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 아롱이는 사찰 주변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전통 사찰 제53호로 등록된 미륵사는 주택가 주변의 산비탈에 위치해 고즈넉하면서도 드나들기 편리하다.
이곳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석조관음보살입상도 있으며 그 옆에는 300년 된 느티나무가 있어 풍광이 아름답다.
푸른 잔디밭이 신기한 듯 이곳저곳을 밟던 아롱이는 마침내 마음을 풀고 '발라당' 몸을 뒤집고 기쁨의 몸부림을 쳤다.
아롱이 견주 이 모 씨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흘렀다.
이 씨는 "아롱이는 큰 물건을 들고 돌아다니는 큰 사람들을 무서워한다"면서 "예를 들어 긴 우산을 들고 다니는 성인 남성을 보면 짖는데 이날은 무척 신기하게도 한 번도 짖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7년 전 안락사가 임박한 반려견만 데려다가 임시로 보호하는 성남의 한 강아지 카페에서 아롱이를 입양했다. 그때 데려오지 않았으면 아롱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운명이었다.
반려견 가족에 인기 높은 댕플 스테이
댕플 스테이는 미륵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반려견 프로그램이다.
주지 정각 스님은 법문에서 "인간이든 동물이든 각기 다른 탈을 쓰고 있을 뿐 모든 생명은 동등하다"고 말한다.
그가 사찰을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여는 것도 이러한 철학에 연유한다.
이날 진행된 댕플 스테이는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가 증평군, 관광벤처기업 '반려생활'과 함께 만든 '반려견 동반 템플스테이' 상품이다.
반려생활은 앱 다운로드 60만, 회원 수 12만의 반려동물 여행 플랫폼이다.
댕플 스테이는 수도권 거주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가 주요 대상으로, 1인 1견, 2인 1견, 2인 2견 등 다양한 형태로 참여가 가능하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템플스테이는 많았지만, 반려견과 함께 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는 없었기에 반려견 가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날 댕플 스테이는 5시간 30분가량 걸리는 당일형 상품이었다.
아쉽게도 1박 하면서 절에서 지내는 상품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당일형 상품도 우여곡절 끝에 마련됐다.
반려생활 이혜미 대표는 "3년 전부터 댕플 스테이 상품을 기획하며 같이 할 수 있는 사찰을 찾았지만, 연락한 곳 모두 힘들다는 답변을 받았다"면서 "다행히 미륵사 정각 스님과 증평군에서 많은 도움을 주셔서 뜻깊은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미륵사 부주지도 유기견
참가자가 사찰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첫 번째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물론 반려견도 사찰복을 착용한다.
이날 행사는 정각 스님의 1시간가량의 법문 이후 차담 시간도 마련됐다.
이후 연꽃 컵 만들기, 소원지 작성하기, 법당에서 반려견과 절하는 법 배우기 등 여러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준비됐다.
이 절의 부주지는 반려견 '화엄이'다. 화엄이는 지난 2020년 정각 스님이 거둬 절에서 살고 있다.
정각 스님은 절을 찾아온 유기견 화엄이를 거둬 4년째 함께 살고 있다.
이날 스님의 법문과 차담 등이 이어지는 내내 화엄이는 스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프로그램을 모두 마치면 수료증, 기념 선물, 반려견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중생네컷'도 받을 수 있다.
댕플 스테이는 7∼8월 장마와 무더위가 끝난 9월 재개된다.
평소 짖던 강아지들도 유독 조용…깊은 유대감 형성
정각 스님은 법문 도중 "오늘 온 반려견들이 유독 조용하고 참을성이 많은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참가한 반려견 가운데 절반이 유기견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보리의 견주 임 씨는 "보리가 다른 강아지를 무척이나 겁을 내는데 한 번도 짖지 않았다"면서 "아마 참가자와 참가 반려견 사이에 보이지 않는 집단 유대관계가 형성된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반려견은 견주나 주변의 인물 또는 동물들과 정서적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동물이다.
유난히 겁을 내고 짖던 반려견들이 이날 같은 유기견과 개 주인들을 만나 짖지 않고 지낸 것은 이들 사이에 깊은 유대관계가 형성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각 스님의 말씀이 다시 한번 상기됐다.
"인간이나 동물은 각기 다른 탈을 쓰고 태어날 뿐, 다 같은 생물입니다."
② 반려견들 전용기 타고 제주도로 "멍멍∼ 신나는 여행"
"기장입니다. 반려견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들의 여행이 진심으로 부럽습니다."
LG유플러스가 띄운 제주행 반려견 동반 전용 항공편인 '포동 전용기'의 기내 방송을 통해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왔다.
승무원들도 정성스레 반려견과 승객들을 보살피는 모습이었다.
이 반려견 전용기는 LG유플러스의 반려 가구 커뮤니티 플랫폼 '포동'이 제공하는 서비스 가운데 하나다.
LG유플러스는 제주항공과 함께 올해 4월 국내 유일 반려견 동반 전용 항공편인 '포동 전용기'를 선보였다.
반려견 가족들이 2박을 한 뒤 같은 전용기로 김포공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이날 전용기에는 견주 112명과 반려견 57마리가 올랐다.
33 배열인 항공편에서 창가 좌석은 반려견 차지였다.
LG유플러스가 이런 서비스를 하는 것은 신사업의 하나로 반려동물 사업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LG유플러스는 외부에서도 집에 혼자 있는 반려동물을 확인할 수 있는 폐쇄회로(CC)TV와 원격으로 사료를 줄 수 있는 원격 급식기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수의사도 동행…승무원도 반려견 가족
탑승 게이트 앞에서는 반려견 가운데 흥분해 짖는 녀석들도 몇 마리 보였지만 다들 차분하게 탑승했다.
현재 규정상으로는 항공기 탑승 시 반려견들은 좌석 아래쪽에 둬야만 한다.
반려견 전용기의 가장 큰 장점은 기내에서 일반 승객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옆좌석에 반려견들을 데리고 탑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착륙 시에는 케이지 안에 완전히 들어가 있어야 하며, 잠깐 케이지 문을 열고 반려견을 만지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기내에서 이용할 수 있는 이 케이지도 LG유플러스가 특수 제작한 것이다.
이 항공편에는 비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수의사도 동행했다.
LG유플러스는 항공기 탑승 전 반려동물 등록증과 예방 접종 증명서도 반드시 확인한다.
이날 항공편에 탑승한 항공편의 승무원들도 모두 반려견 가족들이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 "진짜 반려견 기르는 것 맞냐"는 질문을 하자 한 승무원이 자신의 반려견 사진을 보여주며 밝은 웃음을 보여줬다.
제주에 내리자마자 반려견주들은 각자 예약한 곳으로 사라졌다.
고구미 가족들을 애월의 해변에서 다시 만났다. 그들은 갈치 전문 식당에 가는 길이었다.
이 식당에서는 반려견이 케이지나 가방 내부에 있을 경우에 식당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식당 이용객 가운데서도 반려견 동반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없었다.
갈치구이와 다양한 음식들이 배달됐지만 고구미는 큰 요동 없이 조용히 주인의 식사를 지켜봤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애월 해변을 산책했다. 짙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그들이 거닐고 있는 모습은 한폭의 그림 같았다.
LG유플러스는 전용기를 다시 띄운다고 했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8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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