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터클은 울고, 코미디는 웃었다…2024년 여름 한국영화 결산
'핸섬가이즈', '파일럿' 등 코미디 영화는 호조
"블록버스터 시대 저물었다" 평가도
잔인할 정도의 폭염을 지나는 가운데 여름의 하반기에 접어들었다. 여름은 블록버스터의 전통이 시작된 계절이다. 더위를 피해 극장으로 모이는 관객을 타깃으로 스펙터클과 눈요기를 강조하는 오락영화를 전략적으로 개봉한 것이 그 시작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가 이러한 전통을 만들어 낸 첫 블록버스터 영화이다 [관련 칼럼 보기]). 한국에서도 여름은 설, 추석, 크리스마스와 함께 큰 영화들이 포진하는 메이저 시장 중 하나다. 한국 영화의 불황이 길어지는 가운데에도 올해 역시 블록버스터를 포함한 메이저 제작사의 ‘히든카드’들이 여름 시장을 겨냥해 개봉되었다.
올여름에 개봉한 총 5편 중 가장 먼저 포문을 열었던 영화는 <하이재킹> (6월 21일 개봉)이다. <하이재킹>은 1971년에 있었던 비행기 테러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총제작비 140억원가량이 투입되었다. 70년대라는 시대 배경과 비행기 추락 씬 등 영화는 블록버스터의 자질을 갖추고 있지만 손익분기점 300만에 훨씬 못 미치는 177만명을 기록하며 흥행에 실패했다.
이어 개봉한 코미디 영화 <핸섬가이즈> (6월 26일 개봉)는 현재까지 극장에서 상영관을 지키고 있을 정도로 롱런 하고 있는 작품이다. 험한 외모로 세상으로부터 차별받는 두 남자의 소동극을 그린 오컬트 코미디 <핸섬가이즈>는 총제작비 49억으로 만들어진 저예산 (상업영화 기준) 프로젝트이다. 개봉 초반에는 흥행순위 2위로 시작했으나 높은 관객 평과 입소문으로 손익분기 110만명을 넘긴 177만명을 기록하며 여름 개봉 영화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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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섬가이즈>의 개봉 다음 주에 공개된 <탈주> (7월 3일 개봉)는 북한을 배경으로 하는 ‘탈주극’이다. 북한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주인공 ‘규남’이 갖가지 위기와 고비를 넘기며 남한으로의 탈주에 성공하는 과정을 그린다. <탈주>는 총제작비 100억대의 (현재 기준으로는) 고예산 영화로 손익분기점 200만을 넘긴 248만명의 관객을 모음으로써 안정적인 성적을 냈다. 다만, <하이재킹>과 <핸섬가이즈>가 극장에 걸려있는 상황에서 시장에 진입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개봉일이 그 이후였으면 조금 더 높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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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2일에 개봉한 <탈출: 사일런스 프로젝트>는 올여름 프로젝트들 중 가장 높은 제작비 (총제작비 200억대)가 투여된 블록버스터이자 텐트폴 영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장 처참하게 실패했다. 공항대교 붕괴와 암살견의 습격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스토리의 빈약함과 어설픈 CG 등으로 평단과 관객의 혹평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손익분기점인 400만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68만명을 기록함으로써 올여름의 가장 큰 ‘재난영화'가 아닌 ‘재난’ 그 자체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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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7월 31일에 개봉한 <파일럿>은 뜻하지 않은 일로 해고된 파일럿이 여장을 하고 구직을 해야 하는 상황을 그리는 코미디 영화다. 공효진, 김래원 주연의 <가장 보통의 연애>를 연출한 김한결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상업영화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탈주>와 비슷한 100억 정도의 총제작비, 200만 손익분기점을 가진 <파일럿>은 현재 (개봉 1주차) 기준 174만을 기록하며 원만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영화의 단순한 컨셉과 장르를 고려하면 너무 길다는 느낌을 주지만 전반적으로 영화는 '웃긴다’는 전제에 충실하다. 대부분 만족스러운 관객 평을 고려하건대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무난히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결과적으로 <탈주>를 제외하면 올여름 제전은 코미디의 승리다. 동시에 스펙터클과 스케일을 강조한 영화들 (<탈출: 사일런스 프로젝트>, <하이재킹>)은 모두 흥행에서 참패했다. 이는 한국 영화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개봉한 할리우드 대작들, 예를 들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데드풀과 울버린>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 (한국을 제외한 전제 시장에서는 예산의 4배를 넘어서는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과 <퓨리오사>의 국내 흥행 실패 등으로도 증명된 바 있다. OTT의 부상 이후로 전문가들은 극장용 영화가 더욱더 스펙터클과 특수효과 위주의 작품들로 천편일률화 될 것이라고 진단했지만 최근 한국 극장가에서 사랑받았던 영화들은 스펙터클이나 블록버스터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장르적 색채가 분명한 영화들 - <파묘>, <핸섬가이즈> 등 -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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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이 영화들은 작가주의적 성향이 지배적인 작품들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적어도 상반기의 흥행 성적으로 조심스럽게 진단해 보자면 블록버스터의 시대가 저물고 작가주의와 퀄리티 시네마의 시대가 도래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줄줄이 망하는 한국 영화의 현실이 안타깝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난세에) 새로운 작가와 감독이 탄생했다는 사실이 다소 위안이 된다. 전후에 텔레비전이 부상하면서 스튜디오 시스템이 붕괴하고 뉴 할리우드가 탄생했듯, 한국에서도 뉴 웨이브가 일고 있다. 위기가 기회가 된다는 구태의연한 옛말을 매우 간절하게 믿고 싶은 때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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