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 난 선생님은 없어요... 서서히 선생님이 되어 갈 뿐"
나는 특수학교에서 첫 교직을 시작했다. 내가 근무한 특수학교는 유치부만 있는 시골의 작은 특수학교였다. 만 3~5세까지의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다니고 있었다. 학급에는 두어명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 앉아 있었고, 나머지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발달장애아이들이었다.
사실, 발달장애아이들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지원서를 내지 않았다. 시각장애 학교, 청각장애 사립 특수학교 위주로 지원서를 냈으나 생각한 것 만큼 나를 환영해주지는 않았다. 최종 나는 발달장애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특수학교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나의 첫 아이들은 '선생님'이라고 소리내 부르는 것조차 어려운 아이들이었다.
한 명의 교사가 다섯 명의 아이들을 보기는 쉽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자율성을 주려고 해도 안전이 늘 우선하다보니 본의아닌 구속과 압박이 이어졌다. 특수학교에서 근무할때에는 잘못된 행동인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아이들과 만났다. 발달이 느린 아이들의 피드백은 느렸고, 나는 아이들에게서 무언가를 읽으려는 노력보다 내가 아이들에게 제공해주고 싶은 '교육'에 집중했다. 어차피 아이들은 내가 기대하는 반응은 보여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당시 우리학교는 인근의 어린이집과 같이 월1회 정도 통합교육을 실시했다. 워낙 중증아이들이기도 했었고, 마땅히 함께할만한 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그 월 1회마저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월1회였기에, 나는 통합교육날이 되기전에 그 어린이집으로 찾아가 어떤 수업을 어떻게 함께 할지를 의논하고 수업을 진행했다. 보육교사 선생님들에게 '통합교육'은 낯선 활동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수업을 내가 진행했던 기억이 있다. 때로 우리는 특별활동시간에 수업을 함께 하기도 했고, 점심 식사 후 놀이터에서 만나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어느 날이었다.
그 날은 내가 썩 좋은 선생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날이기도 했다. 아이들을 실외 활동장소로 데려가려고 손을 잡았다. 우리반 아이가 먼저 어린이집 선생님의 손을 잡고 앞장서 가는 흐믓한 광경을 지켜보면서 맨 마지막에 우리반 아이 한명과 비장애아의 손을 잡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런데 내 손을 잡은 아이가 빼액 소리를 지른다.
"선생님! 너무 아프잖아요. 왜 나를 아프게 해요?"
나는 깜짝 놀라 잡았던 아이의 얼른 손을 놓았다.
"아팠니? 선생님은 잘 몰랐어."
나는 정말 몰랐다. 유난히 우리반 아이들이 내 말을 잘 들었던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내 손의 힘은 아이들의 여린 손이 감당하기에는 힘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부드럽게 잡으면 어느 새 내 손을 비집고 달아나버리는 발달장애아이들과 한 시간이 꽤 오래 지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아귀 힘은 엄청 세져 있었다. 한번 잡은 손은 놓치지 않아야 했고, 내가 원하는대로 암묵적인 수용을 끌어내기 위해서 내 손아귀의 힘을 키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의 새초롬한 비명소리는 한동안 내 마음을 어지렵혔다. 조금더 인간적인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나는 특수학교에 몇 년 근무하지 않아 손아귀의 힘만 세진, 힘으로 아이들을 통솔하는 능력자가 되어 있었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어쩌면 잘 통제하는 선생님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한동안 나를 힘들게 했다. 다시 교실로 돌아가면 별 수 없이 손아귀에 힘을 발휘해 아이들을 앉히고, 체육관으로 이동시키고, 밥을 먹였다.
그 뒤로 달라질 것은 사실 없었다. 다만 내 마음이 내 눈빛이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빼면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통합어린이집을 하면서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몸에 익은 손아귀의 힘은 '원장님'의 권력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힘으로 아이들을 억누를 일은 거의 없다. 다만 손의 힘이 센 한번 손을 잡으면 다소 꽉 잡는 선생님. 정도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이야기하면 얼른 손에 힘을 빼곤했으나 습관에 베여버린 힘껏 손잡기를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내 손의 힘이 세다는 것을 아이들이 이야기해줘서 알고 있고, 아이들은 이 손아귀 힘이 센 선생님의 손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그리고 아이들이 '부드럽게' 잡길 원하면 손에 힘을 빼줄 수 있는 정도의 여유가 생긴 것.
그리고 장애를 가진 아이들 역시 비 장애아이들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는 것이다. 친밀감이 쌓이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손에 힘을 빼고, 몸에 힘을 빼고, 눈에 힘을 빼도, 아이들은 여전히 나를 따르고 있었고, 어느 날은 먼저 손을 내밀어 내 억센 손을 잡아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일테다.
어느 날 교무실로 걸려온 전화 한통은 길고 깊은 한숨으로 시작되었다.
어느 어린이집의 원장이라고 소개한 차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전해졌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에 대한 상담이었다. 아무리 가르치려고 해도 되지 않고, 그동안 사랑으로 품어주기만 했는데 이제는 모든 선생님들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불통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사랑으로 품을 아이가 아니라 전문가에게 맡겨야 할 것 같아 연락을 했다고 했다. 등하원시간, 차량이용,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등 특수학교에 대한 정보를 꼼꼼하게 확인하는 모습에서 그간 아이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고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반 아이가 되었다. 제 또래보다 머리하나가 더 있는 뽀얀 피부를 가진 남자 아이였다. 발음은 어눌해 대부분의 말은 알아 듣지 못했다. 목청은 어찌나 큰지 한번 울기 시작하면 학교가 떠나가라 울었다. 어린이집에서 가장 난처해 하는 부분이 식습관이었다. 어린이집에 등원하면 주방으로 달려가 냉장고에 있는 우유 한 상자를 다 까서 먹는다고 했다. 200ml 우유 20개씩 먹는다고 원장님은 혀를 내둘렀다. 다른 음식은 일절 입에 대지 않는다 했다.
그래서인지 고래는 아직 대소변을 완벽하게 가리지도 못했는데, 우유만 먹고 살아서 그런지 신생아처럼 하얗고 묽은변을 잔뜩 보곤 했다. 식습관 지도도 시급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학교가 떠나가라 울어대는 것도 아주 큰일이었다. 기본생활습관은 하나도 익히지 못해 아비뇽의 소년이 있으면 이랬을까 하는 생각마져 들었다.
하나 하나 가르쳐야 했다.
버스에서 내리면 가방을 아무곳에나 집어 던지고 교실로, 때로는 다른반 교실로 걸어 들어갔다. 가방을 메고 교실까지 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차가 오기전부터 밖에서 기다렸다. 고래는 나를 보자 마자 가방을 잔디밭을 향해 집어던졌다. 아이의 손을 잡고 가방있는 곳으로 가 손모양을 만들어 가방을 들게 시켰다. "고래야, 가방 메고 교실에 가는거야. 가방 다시 메보자." 가방을 다시멜 생각이 없는 고래의 손을 잡고 가방을 들어 등에 메어주고 발버둥 치는 고래의 손을 꽉 잡고 교실로 들어가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고래는 가방을 메고 교실로 들어올수 있었다. 식습관도 마찬가지였다. "고래야, 먹어보자. 맛있어." 포기하지 않고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먹여 나갔고 조금씩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생겨나고 스스로 수저질 하는 것 까지 밀어부쳤다. 엄청난 성장이었다. 여전히 말은 많이 늘지 않았지만, 기저귀를 뗐고, 밥을 먹기 시작했으며, 교실을 스스로 찾아 올 수 있었다. 주변에서 선생님들의 칭찬도 이어졌다. 사실 그때만 해도 유능한 선생님이 된 것 만 같은 기분이었다.
학년이 바뀌어 고래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큰 머리와 뽀얀 피부 멀리서 봐도 알아볼 수 있는 내 아이 였다. 실외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고래의 담임선생님은 젊은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상냥하고 친절했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내가 볼때는 저렇게 유약해서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부르는 선생님.
고래의 선생님이 초등학생이 들을 데리고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고래가 보이자, 나는 반가운 마음에 "고래야!" 하고 외쳤다.
한껏 웃으면서.
그런데 고래의 반응이 사뭇 이상했다. 고래를 지켜보던 고래의 담임선생님은 빵터져서 웃었다. 나는 그제야 고래가 나한테 보이지 않기 위해서 미끄럼틀의 가느다란 기둥에 사시눈을 하고는 몸을 숨긴 것을 알게 되었다. 제 딴에는 나에게 잡히면 지금의 여유는 끝이라고 생각한 듯이 말이다.
그때는 고래의 그런 대처가 웃겼다. 커다란 몸뚱아리는 가느다란 미끄럼틀 기둥 따위로 절대 가려지지 않을테지만 고래는 눈까지 가운데로 몰아 사시눈을 만들어가며 필사적으로 미끄럼틀 기둥에 몸을 숨기고 없는 척을 하는 것이 웃겨서 담임선생님과 같이 웃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슬며시 아이에 대한 배신감이 솟아났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어떤 마음으로 너를 가르쳤는데 네가 나를 못 본 척 할 수가 있니...'
그리고 배신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미안함이 되었다. 나와 지낸 일년이 아이에게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으면 학급을 옮긴 다음에도 저리 필사적으로 나를 피해 다니는지 마음이 아팠다.
어떤 선생님이 아이에게 좋은 선생님일까.
고래로부터 시작된 내 평생에 걸친 고민이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과 아이에게 좋은 선생님은 늘 같지 않다. 잘 가르치면서도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면 참 좋으련만 모든걸 다가진 선생님이 되긴 쉽지 않다. 그 동안 내가 제일 잘 가르친다고 생각했던 모든 순간들을 되돌아 보았다. 내 기준에 좋은 선생님은 아이들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선생님이었던 듯 했다. 밤을 새서라도 수업준비를 하고 내가 준비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내야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 같은 생각이었다. 아이들에게 정한 목표는 꼭 놓치지 않고 달성해 나가려고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워 접근했고, 간혹 생기는 아이들과의 기싸움에서는 절대 진적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기도 했다. 유능함의 기준을 나는 이런 것으로 생각했었던 듯하다. 기저귀를 뗄 수 있는 아이임에도 여러 가지 이유들로 대소변 지도를 미루는 선생님들도 편식지도를 가정에서 원치 않는다며 하지 않는 선생님들도 왜 부모를 설득해 아이를 키워내는 일에 미온적인 것인지 못마땅했고, 아이들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허허 웃음으로 넘기는 품좋은 선생님들도 사실 나는 못 미더웠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고래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고래뿐만이 아니었다.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해 빈틈없이 아이를 키워냈다고 생각했음에도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기피 인물이 돼 있었다. 하루하루 아이들의 성장세를 보여주니 아이들의 부모님들만 열광하며 좋아해 주셨지만 정작 아이들의 마음은 얻지 못한 듯했다.
나와 아이들의 관계는 무언가 잘못되었다. 아무리 부모와 같이 애닳는 마음으로 키워냈다고 한들,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 교육은 아이들에게 상처만 남길 뿐이었다. 나 스스로에게도.
그제서야 학교내에 다른 선생님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기꺼이 선생님의 몸으로 미끄럼틀을 만들어 중증 아이들을 하나 하나 안아서 미끄럼을 태워주는 선생님, 계획된 수업을 하다가도 아이들의 반응이 재미있으면 방향을 바꿔 다른 놀이로 끌어내가던 선생님, 아이들의 잘못에 따끔한 훈육보다 깊은 한숨과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만 보던 선생님.
다시 바라보니 무능한 선생님이 아니었다. 그런 선생님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은 즐거웠고, 편안했다.
지금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어떤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인가.' 원장과 부모, 동료교사의 눈으로 좋은 선생님을 가려낼 수 있을까. 수업을 잘 계획하고 부적응 행동을 잘 지도하는 교사만 좋은 교사는 아니다. '어떤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냐'고 묻는 질문에는 길지만 고래의 이야기를 꺼낸다. 졸업을 하고 나서도 선생님을 만나면 환하게 웃어주는 아이의 선생님. 난 그런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인듯 하다. 미끄럼틀 기둥 뒤에 숨지 않고 말이다.
*칼럼니스트 박현주는 유아특수교육을 전공해 특수학교에서 근무했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내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어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됐다. 화성시에서 장애통합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모님들과 함께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동참해, 현재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에서 장애영유아 발달상담도 함께 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들을 키우는 일, 육아에서 시작해 아이들의 삶까지, 긴 호흡으로 함께 걸음으로 서로의 고민을 풀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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