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표류하는 사격계...한화그룹 사격계 철수, 타이밍이 나빴다
2024 파리올림픽에서 유례 없는 성공을 거둔 한국 사격. 선수단의 �T나는 성과에도 불구, 한화가 떠난 후원사 문제가 또 다시 불거졌다.
한국 사격 대표팀은 이번 올림픽에서 금빛 질주를 펼쳤다. 역대 올림픽 최다인 금3은3을 수확하면서 한국 선수단의 메달 레이스를 '하드캐리' 했다.
도쿄올림픽에서 은메달 단 1개에 그쳤던 아픔을 씻어냈다. 지난 대회 부진을 만회하고자 절치부심한 선수단의 전체의 사기와 자긍심을 다시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던 성과였다.
이를 바라보는 한화그룹의 시선은 복잡 미묘할 수밖에 없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20년 넘게 한국 사격의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했다. 지난 20년 간 무려 200억의 통 큰 투자로 사격 발전에 이바지 했다.
하지만 타이밍이 문제였다. 정작 풍성한 결실을 맺기 직전에 손을 떼면서 '20년 노력'의 과실을 수확하지 못했다. 타 종목을 후원하는 타 대기업들의 잔칫집 분위기를 감안하면 더욱 속이 쓰리다.
무려 40년 세월 동안 변함 없이 양궁을 물심양면 지원해 온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 부부는 파리올림픽 선전으로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SK그룹 역시 지난 20년 비 인기 종목 펜싱 지원으로 결실을 맺으며 그룹 이미지를 상당히 제고하는 효과를 얻었다.
재계 안팎에선 한화가 올림픽 직전에 사격에서 손을 뗀 것은 뼈아픈 실기 (失期)였다는 시선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화가 지난 20년 간 한국 사격 발전에 이바지한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연맹, 대표 선수 지원 뿐만 아니라 각종 국내외 대회를 개최하면서 사격 저변을 크게 넓히고 발전시켰다. 이런 한화의 저변 확대 노력 속에 '황제' 진종오가 탄생했고, 한국 사격은 오랜 기간 세계 정상급의 실력을 이어올 수 있었다.
한화가 지난해 11월 연맹 회장사 자리를 내놓은 뒤, 사격계는 일대 혼돈 상태에 빠졌다.
대한사격연맹은 재정적 어려움 속에 표류했다. 이번 파리올림픽 대표팀 지원을 위해 잉여금 활용, 운영 체계 개편 등 허리띠를 바짝 졸라 맬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오랜 후원사였던 한화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사격연맹 관계자는 "지난 20년 간 한화의 투자와 헌신이 있었기에 한국 사격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올림픽 사격은 월드컵, 세계선수권과는 차원이 다른 위상을 갖는다.
세계 정상급 실력을 자랑하는 한국 사격이기에 매 대회마다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특히 이번 대회는 메달 성과 뿐 아니라 풍성한 스토리로 전 세계적 화제가 됐다. 금메달리스트 오예진 반효진 양지인 뿐 아니라 은메달리스트 김예지는 총을 쏘고난 뒤 영화배우 뺨치는 시크한 표정으로 X(이전 트위터)에서 일론 머스크의 찬사를 이끌어내는 등 화제의 중심이 됐다. 감동과 화제의 스토리가 곧 글로벌 기업의 이미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한화로선 두고 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사격연맹은 한화가 떠난 뒤 5개월여 간 회장 없이 운영되는 파행을 겪었다. 진통 끝에 신명주 명주병원장이 새 회장으로 당선됐고, 지난달 취임식을 가졌다. 그러나 취임 한 달을 갓 넘긴 신 회장은 자신의 병원에서 임금체불 논란이 빚어지자 곧바로 사임 의사를 밝혔다.
6일 선수단 귀국을 앞두고 환영 행사 준비에 한창이던 사격연맹은 황망해 하는 분위기. 연맹 관계자는 "임원들이 파리 현지에 머물고 있는데, (신 회장 측으로부터) 어떻게 의사 전달이 됐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며 "경사스런 분위기였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려움을 가까스로 수습하고 새로운 걸음을 옮기려던 사격연맹. 파리에서의 환희를 즐길 새도 없이 다시 표류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병원 임금체불 문제가 불거진 이상, 신 회장이 사격연맹 회장직을 수행하기는 힘든 상황. 당연히 향후 의미 있는 재정적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사격연맹은 또다시 회장 공백 속에 다시 재정적 압박 속에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야 할 지 모른다는 어두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방산 기업' 한화가 그룹 이미지에 딱 맞는 한국 사격의 '키다리 아저씨'로 남아 있었더라면?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그간의 투자와 헌신 스토리가 더해져 그 어떤 기업보다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 어디에서도 한화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사격계는 환희를 느낄 새도 없이 다시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화도, 사격계도 모두 아쉬운 새드 엔딩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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