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시대극이자 치열한 법정극…‘행복의 나라’의 의미 있는 성취[리뷰]

이승미 기자 2024. 8. 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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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과 '서울의 봄'을 잇는 또 하나의 웰메이드 근현대사 시대극이 탄생했다.

10·26과 12·12, 두 거대한 역사적 사건 사이.

앞선 두 영화가 10·26과 12·12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것과 달리 가상의 인물인 변호사 박인후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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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NEW
‘남산의 부장들’과 ‘서울의 봄’을 잇는 또 하나의 웰메이드 근현대사 시대극이 탄생했다. 10·26과 12·12, 두 거대한 역사적 사건 사이. 단 16일 만에 최종 선거가 내려진 최악의 정치 재판과 그로 인해 영향을 받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을 조명하며 역사의 묵직함과 가슴 뭉클한 휴머니즘을 균형 있게 담아낸 영화 ‘행복의 나라’(감독 추창민)다.

14일 개봉하는 영화는 격동의 근현대사를 담아낸 시대극이자 10˙26 대통령 암살 사건에 대한 재판을 다룬 법정 드라마이다. 고 이선균과 조정석이 각각 상관의 지시로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는 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태주와 그를 살리기 위해 재판에 뛰어들든 변호사 정인후 역을 맡았고 여기에 부정 재판을 주도하며 위험한 야욕을 위해 군사 반란을 일으키는 거대 권력의 중심인 합수단장 전상두 역을 맡은 유재명이 합세했다. 이 세 사람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인물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촘촘히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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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영화는 10·26과 12·12 사건 사이에 이뤄진 재판을 다룬다는 점에서 각각 10·26과 12·12 사건을 집중 조명한 ‘남산의 부장들’과 ‘서울의 봄’을 잇는 ‘마지막 퍼즐’ 같은 작품으로 일찍이 주목받았다. 하지만 정작 영화가 당시 시대를 다루는 방식은 앞선 두 영화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앞선 두 영화가 10·26과 12·12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것과 달리 가상의 인물인 변호사 박인후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기 때문이다. 박인후가 변호를 맡는 10˙26 대통령 암살 사건의 연루자 역시 대통령을 직접 시해했던 김재규 중앙정부부장이 아닌, 김재규의 부하였던 박흥주 대령을 모티브로 한 박태주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이러한 설정은 어떠한 선택권 없이 대한민국 역사를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희생되어야 했던 ‘보통의 사람들’을 대변하기에 관객의 몰입감을 더욱 높여준다. 영화를 끌고 가는 가상의 인물 변호사 정인후가 적당히 세속적이고 적당히 정의로운 평범한 인물로 설정되고, 극 중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전상두 역시 특정 악인이 아닌 불합리했던 거대한 시대의 배경처럼 묘사된 것도 이러한 영화의 장점을 더욱 끌어올린다. 이러한 섬세한 설정이 극 후반 정인후가 사형이 목 끝까지 다가온 상황에서도 끝까지 군인으로서의 신의와 충직함을 지키려는 박태주에게 “어차피 역사는 김 부장(김재규)만 기억할 거다”라는 외치는 대사의 의미를 더욱 곱씹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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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영화는 시대극이면서 잘 만든 법정 드라마라는 점도 흥미를 잡아끈다. 의견 불일치로 인해 변호인과 의뢰인이 갈등과 여러 변호인이 머리를 모아 전략을 짜는 과정, 사건의 중요 증인을 재판장에 앉히기 위한 변호사의 치열한 노력 등을 생생하게 담는다.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각종 역사적 자료에 근거해 변호인단과 방청객의 위치, 피고인들의 인원수까지 완벽하게 맞춰 당대의 법정 모습을 완벽 구현한 미술 역시 돋보인다.

배우들의 연기도 흠잡을 곳이 없다. 조정석은 현재 상영 중인 코미디 영화 ‘파일럿’과는 180도 다른 진지한 얼굴로 시대의 대변자 같은 캐릭터를 완벽히 연기했고, 실제 머리를 미는 등 외형적 변화까지 주저하지 않았던 유재명은 ‘서울의 봄’ 황정민과는 또 다른 서늘하고 날 선 전두환 캐릭터를 완성했다. 무엇보다 시종일관 의연한 얼굴로 자신의 최후를 기다리는 고 이선균의 표정은 그의 비극적인 죽음을 어쩔 수 없게 떠올리게 만들어 관객을 더욱 먹먹하게 만든다.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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