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에서 쓴 엄마의 일기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2024. 8. 7.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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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들이 직접 선정한 이 주의 신간. 출판사 보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기자들이 꽂힌 한 문장.

주말마다 나를 고쳐 씁니다

박찬은 지음, 얼론북 펴냄

“행복은 눈에 보일 때마다 조금씩 주워 먹어야 하는 모이 같은 것이었다.”

50년 전, 장비랄 것도 없이 ‘간 큰 여자애들끼리’ 백두대간을 다니던 엄마의 사진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시커먼 한라산의 진미를 가슴에 써놓”으며 자신들을 “집시들” “등반대원들”이라고 부르던 엄마의 일기장이 저자의 손에 건네져 각별한 캠핑 일지가 됐다. 해발 800m 맹동산 위에서 펼쳐진 다과회, 아이슬란드 위스키를 곁들인 춘천호에서의 카누 캠핑, 떨어지는 유성우를 보고 허리가 작살난(?) 대마도 섬 캠핑. 시간을 들여 텐트를 세우고 똑같은 시간을 들여 다시 장비를 걷는, 이 무용한 행위의 낭만을 굽이굽이 따라 읽다 보면 남의 행복에 배 아플 새 없이 친구를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캠핑장과 장비, 곁들일 먹거리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덤이다.

 

격차

제이슨 히켈 지음, 김승진 옮김, 홍기빈 해제, 아를 펴냄

“역사적 기록은 ‘국제적 불평등’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졌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글로벌 경제의 통치자라 할 수 있는 자본주의는 이윤 극대화와 무한 축적, 성장을 최우선 목적으로 삼는 시스템이다. 각국 내에선 가난한 사람들을, 글로벌 차원에서는 가난한 나라들을 지속적으로 착취해왔고 이는 빈곤과 불평등의 확산, 기후위기 등 부정적 결과로 이어졌다.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들은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원활한 작동, 저개발국의 경제발전 등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서구 선진국의 입맛에 맞춰 광범위하고 심각한 문제점들을 별일 아닌 것처럼 치장해왔을 뿐이다. 이 책의 저자인 제이슨 히켈(유럽 그린뉴딜 자문위원)은 지난 세기들의 제국주의 시대부터 오늘날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잔혹한 모습으로 진화해온 빈곤과 불평등의 역사를 살펴본 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대담한 해법을 제시한다.

 

역사의 오류를 읽는 방법

오항녕 지음, 김영사 펴냄

“‘이동국 선수가 없었으면 현대가 우승할 수 있었을까’ 같은 질문은 역사학의 질문이 될 수 없다.”

역사가도 틀린다. 글자 해석 오류나 편견 때문에 틀릴 수 있다. 인간이라서 그렇다. 저자는 그 자신을 포함해 역사가들이 실수했던 사례를 유쾌하게 해설한다. 역사가의 실수·오류를 사실의 오류, 서술의 오류, 비판의 오류로 나누어 설명한다. 특히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의 사료 문제, 광해군과 사도세자에 대한 평가,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둘러싼 논란 등 한국 역사학의 논쟁적 이슈를 오류의 사례로 끌고 와 비평한다. 저자는 오류의 한계를 역사 공부의 출발점으로 삼자고 제안한다.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합리적으로 추론하는 능력을 키워 역사학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물리치자는 것이다. 이는 비단 역사학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닌 듯하다.

 

페이크와 팩트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 지음, 김보은 옮김, 디플롯 펴냄

“과학 정보를 더 많이 아는 사람조차 범인을 찾으려 들 수 있다.”

암 발생률 증가는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인구 절반이 평생 한 번은 암에 걸린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저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을 뿐이다. 암의 가장 큰 위험요인은 ‘나이’이며, 과거에 비해 생존율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저자는 “암 발생률의 명백한 상승은 역설적이게도 사회 보건 건강이 향상된 결과”라고 말한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팩트’는 자주 오해받으며, 우리는 ‘희생양’을 찾고 싶어 한다. 〈페이크와 팩트〉는 인간이 비합리적으로 사고하는 패턴을 파훼하는 동시에 친절하게 이해시키려 애쓰는 다정한 책이다. 인간은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지만, “특이하게도 실수를 통해 배우기도 한다”.

 

불화와 연결

김고은 지음, 북드라망 펴냄

“그러니까 삶이 엉망진창처럼 느껴져도 그냥 이런 채로 (···) 어떻게 같이 한번 살아보자.”

3년 만에 만난 진우는 다른 사람 같았다. 다부진 뼈대와 근육에, 선이 굵은 타투. 전동휠체어라는 금속 신체가 멋을 더했다. 무엇보다 무릎을 구부려 휠체어 가까이 귀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그가 하는 모든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외향적 성격임에도 방에서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내던 그는 3년 전 신학대학원에 자퇴 원서를 내고 세상으로 나왔다. 정확히는 ‘장판(장애인 운동판)’을 누비며 세상과 ‘불화’했고, 그래서 ‘연결’되었다. ‘산다’는 것이 ‘함께 산다’와 동의어임을 알게 된 저자가 서로에게 기대는 법을 고민하는 청년 5명을 인터뷰했다. 미워하지 않는 마음은 성인(聖人)의 것이겠지만,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태도는 곧 우리의 삶이다.

 

읽고 쓰고 소유하다

크리스 딕슨 지음, 김의석 옮김, 어크로스 펴냄

“다시 상상할 시간이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에 투자하는 ‘a16z 크립토’의 설립자인 저자는 인터넷의 역사를 3세대로 구분한다. ‘읽기 시대’라 불리는 1세대의 ‘프로토콜 네트워크’는 평등하게 웹사이트에 접근해 읽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2세대는 ‘읽기-쓰기 시대’로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의 글을 대중에게 보일 수 있게 되었다.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디지털 권력이 중앙화되면서 평등한 분위기는 사라졌다. 현재는 3세대로, ‘읽기-쓰기-소유하기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3세대의 핵심은 블록체인이다. 언뜻 투기나 투자를 떠올리기 쉽지만 블록체인 기술의 본질은 디지털 권력을 플랫폼 기업에서 사용자 커뮤니티로 이동시킬 수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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