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정치 참여 허용해야” vs “학생에 편향적 교육 우려” [심층기획]

김유나 2024. 8. 7.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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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활동 제한 해제’ 놓고 논란
교사 정당 가입·기부 등 엄격하게 규제
선거 게시물 ‘좋아요’ 눌러도 처벌 받아
“우린 정치적 금치산자” 자조적 인식도
야권 중심 ‘교사 정치권 보장’ 법안 발의
정부 “전면 허용 우려 … 신중 검토 필요”
교원단체선 입법지원·ILO제소 등 나서

“‘좋아요’만 눌러도 큰일 난다고 하니까… 정치 기사 자체를 잘 안 보게 되더라고요.”

5년 차 중학교 교사 A씨는 교사가 된 후 언론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정치 관련 게시물을 보는 빈도가 줄었다. 초임 교사일 때 선배들은 “정치 관련 글에 어떤 반응도 남겨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A씨는 “정치 관련 글이 부담스럽게 느껴져 점점 피하게 됐다”며 “정치적 중립이 아니라 정치적 무관심 상태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7월16일 국회 앞에서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앞줄 오른쪽 네번째), 김문수 민주당 의원(다섯번째),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여섯번째)과 5개 교원 단체가 교사의 정치 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교사노동조합연맹 제공
‘정치적 금치산자’. 교사들이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공무원법이 정당가입 등 적극적인 활동은 물론 개인 SNS 등을 통한 정치 참여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어서다. 이 같은 법이 시민으로서의 기본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최근 교사의 정치 참여를 열어주는 법이 발의되는 등 제도 개선 움직임이 일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우려도 여전해 실제 법 개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무심코 누른 ‘좋아요’로 처벌 가능

6일 공무원법에 따르면 교사 등 공무원은 정당가입이나 정치자금 기부는 물론 개인의 정치적 표현도 금지된다. 또 휴직 후 출마할 수 있는 대학교수와 달리 교사는 후보자가 되기 위해선 선거일 90일 전까지 직을 그만둬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 찾기 어려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규정은 관권선거로 불린 ‘이승만 3·15 부정선거’에 대한 반성에서 나와 60년 넘게 이어졌다.

이에 따라 교사들은 퇴근 후 SNS에 정치 관련 글을 쓰거나 다른 게시물에 반응을 남기는 것도 제한된다. 행정안전부는 선거 관련 글을 SNS, 모바일 메신저 등으로 전송하거나 ‘좋아요’를 클릭하는 행위도 금지 행위로 꼽고 있다.

실제 올해 4월 인천시선거관리위원회는 SNS에 특정 후보자의 공약·사진이 포함된 이미지 등을 반복 게시한 교사 2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2018년에는 서울시교육감 후보 글에 ‘좋아요’를 누른 교사도 검찰에 고발당했다. 2016년 총선에서도 보수단체가 정치 관련 게시물을 SNS에 공유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 70여명을 선관위·검찰에 고발해 4명이 견책 처분을 받았다.
적발 사례는 대부분 지속적으로 반응을 남긴 경우지만, 1∼2번의 ‘좋아요’로도 구두 경고 등의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충청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습관적으로 누른 ‘좋아요’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교사들 사이에선 이런 제한이 과도하다는 불만이 많다. 시민으로서의 기본권을 침해해 반헌법적일 뿐만 아니라 수업시간에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등 교육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중앙연구원이 교사 1만1409명을 조사한 결과 ‘정치적 중립 의무 때문에 수업시간 행동·말을 조심하려 한 적 있다’는 응답은 96%에 달했다. 경기의 한 고교 교사는 “학생은 만 16세부터 정당가입이 되고 만 18세는 피선거권도 있는데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며 “정치 얘기를 했다가 신고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고, 학생들과 투표 등에 대해 심도 있게 대화하기도 어렵다. 상당히 비교육적”이라고 토로했다.
교사들이 정치적으로 ‘묶여 있는’ 상황이다 보니 교육 정책에 교사 목소리가 잘 반영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교사노동조합연맹과 전교조 등 5개 교원단체가 지난달 전국 교사 9026명을 조사한 결과 ‘정치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아 교사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응답자의 98.2%가 동의했다. ‘교사가 교육 정책에 대한 의견을 밝힐 수 없어 정책이 학교 현장과 괴리돼 있다’는 주장에도 97.8%가 동의했다.

◆교사 정치 보장법 통과될까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법안은 과거 수차례 발의된 바 있다. 이번 국회에서도 더불어민주당 김문수 의원이 교사·공무원이 지위를 이용하지 않는 선에서 국민으로서의 정치권 권리를 행사하도록 보장하는 ‘교사·공무원 정치적 기본권 보장 4법(국가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 정당법일부개정법률안, 정치자금법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교사는 선거운동, 정당가입, 정당·정치인 후원 등이 가능해진다. 김 의원은 “현행법은 직무와 관계없는 정치적 표현까지 광범위하게 제약해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를 침해한다”고 강조했다.

교직 사회에선 이번엔 법이 통과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다. 국회에 교사 출신인 백승아(민주당), 정성국(국민의힘) 의원 등이 입성한 데다 지난해 ‘서이초 사건’으로 교권회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다.
지난 7월16일 전희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왼쪽)이 16일 오전 국회 앞에서 열린 5개 교원단체 '교원의 기본권 설문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교원의 정치참여 보장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교사가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교사의 정치활동이 활발해지면 직간접적으로 학생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에서 중학생 자녀를 기르는 B씨는 “아이들은 교사 말을 그대로 흡수하는 경향이 있어서 수업시간에 정치적인 발언은 사소한 것이어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도 “현재 제약이 일종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며 “SNS 활동 등에 제한이 없으면 수업시간에도 지금보다 더 편하게 정치 이야기를 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의 조사에서도 학부모(2186명 조사) 2명 중 1명(46.7%)은 ‘교사의 정치 기본권이 제한되지 않으면 정치 편향적인 교육을 할 것 같다’고 답했다.

정부도 “전면적인 정치활동 허용은 우려된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법 통과를 둘러싸고 이견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2021년 국제노동기구(ILO) 전문가위원회는 한국 교사의 정치 참여 제한에 대해 “고용·직업상 차별철폐를 규정한 ILO 협약 위반”이라고 밝혔고, 국가인권위원회도 2019년 교사·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법 개정을 정부에 권고했으나 지금껏 변화가 없었던 것도 정부가 제도 변화에 소극적이어서다.

교원단체는 입법을 지원하는 한편 ILO 제소 등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전교조가 가입된 국제교육연맹(EI)은 최근 ‘한국 교사들의 정치 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EI는 178개국 383개 교원단체, 3200만명의 교사를 대표하는 세계 최대 교원 조직이다. 전희영 전교조 위원장은 “EI 집행위원회와 한국 정부에 대한 ILO 제소, 조사단 파견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교사 정치 기본권 보장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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