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 캐리 청산 충격파’ 여진…미 ‘빅컷’ 땐 어쩌나
엔화 강세에 기술주 매도 ↑
관련 자금 이탈 가속화 우려
금융시장 안팎에선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한 ‘5일 검은 월요일’의 배경 중 하나로 ‘엔화’를 꼽는다. 최근 미국의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의 급격한 주가 하락도 엔화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특히 시장을 공포로 밀어넣고 있는 것은 ‘엔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될 수 있다는 우려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싼 엔화를 빌려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고금리 통화나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엔 캐리 트레이드의 자금만 세계적으로 20조달러(약 2경6700조원)로 추산된다.
그동안 엔화는 ‘아베노믹스’로 대표되는 일본의 완화적 통화정책에 따라 초약세를 보여왔다. 그러다 지난달 31일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국채 매입량을 점진적으로 절반으로 감축하는 ‘양적긴축’에 나서며 엔화 강세가 가속화됐다. 지난 7월11일만 해도 달러당 161엔을 웃돌던 엔·달러 환율은 5일 장중 141엔 선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문제는 엔화의 가치가 오르면 엔 캐리 트레이드의 수익률이 감소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더 이상 엔화를 싸게 빌릴 수 없어서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해외 자산을 처분하고 엔화를 갚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움직임이 본격화됐다고 추정했다. 교보증권에 따르면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 이탈의 여파가 컸던 2008년엔 코스피의 하락폭이 41.3%에 달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5일 코스피 폭락’을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따른 충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은행이 조기 금리 인상과 함께 양적완화 축소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 엔 캐리 트레이드의 매력도를 약화시켰고 이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따른 유동성 충격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직접적인 영향은 적었다는 반론도 있다. 엔화 약세에 베팅하고 기술주는 매수하는 기조를 유지한 헤지펀드들이 엔화가 강세를 보이자 기술주를 처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량 자체는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앤 캐리 트레이드의 자금 흐름은 최근 2~3년 동안 많이 늘지 않았다”며 “최근 금융시장 변동은 엔 캐리 트레이드의 직접적 청산에서 비롯됐다기보단 엔·달러 환율과 연동된 추종형 펀드 자금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관건은 앞으로의 엔화 추이다. 미국이 추가적인 금리 인하에 나서거나 일본이 금리를 높이면 미·일 금리차가 축소돼 ‘엔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엔고’가 되면 엔화와 연계된 자금의 이탈이 일어나면서 국내 증시에선 외국인 매도세가 커지고 매수세가 급감해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김경민 기자 kim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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