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한 황실 자손,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가 되다" [역사&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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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7일, 대한제국의 황손 이우가 사망했다.
이우는 일제에 반항적이었고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워 일본에서는 그를 골치 아픈 존재로 여겼다.
1945년 일본군에 강제 징집된 이우는 본토 결전을 위해 일본으로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일본을 싫어하고 조선의 독립을 열망했던 이우의 이야기가 재조명되고 있으며, 그를 추모하는 다양한 행사들도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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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45년 8월 7일, 대한제국의 황손 이우가 사망했다. 전날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피폭돼 치명상을 입고 고열 속에 숨을 거뒀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손 이우는 비운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의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망 없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는 뛰어난 외모와 총명함을 갖췄지만, 그의 재능은 시대의 비극 앞에서 빛을 잃고 말았다.
이우는 일제에 반항적이었고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워 일본에서는 그를 골치 아픈 존재로 여겼다. 일본은 강압적인 간섭 속에서 그를 일본 황족 여자와 결혼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일본인을 아내로 맞기를 극도로 싫어했던 그는 선수를 쳐서 박영효의 둘째 서자 박일서의 딸 박찬주와 결혼했다.
1945년 일본군에 강제 징집된 이우는 본토 결전을 위해 일본으로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일본의 패망을 예감하고 조선에 남아 전역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이우는 1945년 8월 7일 부임지인 히로시마로 갔다가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슬픔을 안겼으며, 시대의 비극과 대한제국의 몰락을 상징하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
해방 후 이우는 잊힌 존재가 됐다. 대한제국 황실은 몰락했고, 그의 삶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최근 이우의 삶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일본을 싫어하고 조선의 독립을 열망했던 이우의 이야기가 재조명되고 있으며, 그를 추모하는 다양한 행사들도 열리고 있다.
이우에 대한 친일 논란도 존재한다. 그가 일본 제국 육군에 복무했고, 일본 황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9년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서 그의 이름은 제외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그가 사실상 볼모의 처지였다는 사실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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