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작심발언 배경... 관리 미흡인가, 특혜인가
"협회에 크게 실망, 함께 가지 않을 것"
갈등 봉합 쉽지 않은 분위기
박태환 김연아 등도 겪었던 단체와 갈등
한국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28년 만에 나온 올림픽 금메달의 환희와 기쁨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금메달을 목에 건 안세영(삼성생명)이 대표팀을 운영하는 대한배드민턴협회를 향해 작심 발언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안세영은 5일(현지시간)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단식에서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획득한 뒤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대표팀에 정말 많이 실망했었다”며 “이 순간을 끝으로 계속 함께 가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곧바로 이어진 공식 메달리스트 기자회견 때도 “부상을 겪는 상황에서 너무 크게 실망했다”며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후폭풍이 거세게 일자 정부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문화체육관광부는 6일 “파리 올림픽이 끝나는 대로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적절한 개선 조치의 필요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안세영이 금메달을 따자마자 협회에 날을 세운 건 혹사 논란과 대표팀의 미흡한 선수 관리 체계에서 비롯됐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무릎을 다쳤던 안세영은 협회와 대표팀의 안일한 부상 대처 속에서도 지난해 세계대회에만 14번 출전했다. 단체전과 혼합, 국내 대회를 합치면 총 20회로 한 달에 1.6회꼴로 대회에 나간 셈이다.
안세영뿐만이 아니다. 이번 대회 복식 멤버로 나선 서승재도 1일부터 2일까지 23시간 사이에 3경기를 뛰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배드민턴 레전드인 방수현 MBC 해설위원도 “이번 대회에서 서승재, 채유정이 10경기 정도 소화했다. 선수들 보호를 위해 (협회와 대표팀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는 성적만 바라보는 금메달 지상주의가 아직도 체육계에 남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부상 관리뿐만 아니라 훈련 방식, 용품 사용, 트레이너 고용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불만이 쌓이고 쌓였다. 올해 1월 협회와 면담 때도 ‘기존 후원사 용품 신발 대신 다른 신발을 신겠다’, ‘컨디션 관리를 위해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타고 싶다’, ‘선후배 문화를 지금까지 참아왔지만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요구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협회는 안세영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대표팀은 여자 단식의 안세영뿐만 아니라 남자 복식, 여자 복식, 혼합 복식, 남자 단식 여러 종목의 선수가 있어 누구 한 명만 특별히 챙기기 힘든 상황이다. 자칫 다른 선수들 사이에서 ‘특혜’로 비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 협회 측 해명이다.
일종의 ‘슈퍼스타 딜레마’다. 슈퍼스타와 소속 단체 간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08 베이징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박태환도 훈련 방식 등을 놓고 대한수영연맹과 오랜 갈등을 겪었다. 박태환은 선수촌에서 훈련하는 다른 동료들과 달리 SK텔레콤 전담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별도로 개인 전지훈련을 자주 다녔다.
피겨스케이팅 김연아도 훈련 방식과 코칭스태프 선임 문제로 대한빙상경기연맹과 불편한 관계에 놓였고, 리듬체조 손연재 역시 대한체조협회와 국제대회 출전 여부를 두고 갈등을 빚었다. 주로 “협회의 지원 속에 성장했는데, 스타가 되니 개인 이익만 챙기려고 한다”는 입장과 “평소에 지원도 없다가 간섭하고, 결과가 나오면 숟가락을 얹으려고 한다”는 입장이 맞서기 때문이다.
안세영의 현재 분위기로는 협회와 갈등 봉합이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안세영은 대표팀을 떠나 ‘개인 자격’으로 국제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다만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은 현재 규정상 대표팀 선수만 나갈 수 있어 안세영이 투어를 뛰며 올림픽 랭킹 포인트를 쌓더라도 대한체육회, 연맹의 승인을 받아야 나갈 수 있다. 이에 안세영은 “대표팀에서 나간다고 해서 올림픽을 못 뛰는 것은 선수에게 야박하지 않나 싶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딸의 작심 발언을 들은 아버지 안정현씨는 원만하게 이번 사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안씨는 “(안)세영이가 서운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면서 “세영이가 무턱대고 그렇게 말할 아이는 아니니까 세영이와 협회가 잘 맞춰가면 또 좋은 소식이 있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협회 관계자는 “일단 안세영 선수가 얘기한 부분은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귀국 후 빠른 시일 내 면담을 나눠 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파리 =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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