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붉은 기와지붕이 있는 풍경

경기일보 2024. 8. 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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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짜기 계곡에서 멱감고 가재 잡으며 여름날을 보낸 나의 소년기는 하얀 물소리와 초록빛 풀벌레 소리만 들렸다.

내 마음에 담긴 누나는 당시 유행하던 클리프 리처드의 음악 얘기를 풍금 소리처럼 들려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는 마을에 온 청년과 서울로 갔다.

나는 다시 여치 소리 요란한 반석에 누워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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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짜기 계곡에서 멱감고 가재 잡으며 여름날을 보낸 나의 소년기는 하얀 물소리와 초록빛 풀벌레 소리만 들렸다. 산자락엔 산딸기와 보리뚝이 영글고 강아지풀로 물레방아를 만들어 물살에 걸며 놀았다. 가끔 반석에 누워 파란 하늘에 뜬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손소희의 창포 필 무렵을 읽었다.

그즈음의 현대문학은 동수 누나처럼 폐병을 앓는 주인공이 많았다. 우리 마을에도 동수 누나 같은 누나가 휴양차 내려왔다. 내 마음에 담긴 누나는 당시 유행하던 클리프 리처드의 음악 얘기를 풍금 소리처럼 들려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는 마을에 온 청년과 서울로 갔다. 나는 다시 여치 소리 요란한 반석에 누워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었다.

외로움을 삭히기엔 더욱 강한 적멸의 시간이 필요했다. 남수동 골목에서 발견한 붉은 기와집이 현대문학의 한 줄기 같이 내게로 왔다. 누가 살까.

오늘은 이 풍경을 수강생 천현경님이 그렸다. 요즘 현경님은 어벤져스라는 동아리까지 조직해 그림 나들이에 분주하다. 라이딩, 수영, 차박 등에 단련된 몸은 그래서 상처투성이란다. 전문용어로 독종인 그녀는 윤리라는 내면의 영역을 만들어 늘 먹이 앞의 사마귀처럼 불의의 현장을 응시하고 있다. 대학 강단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는 님에게 말조심은 필수다. 유도의 꺾기 같은 격투에도 능하다니 말이다. 모쪼록 원하는 좋은 그림을 잘 이루시길. 일급수의 쏘가리처럼 맑은 정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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